당신은 무엇을 감당하려는가? [동아광장/최인아]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2022. 12. 24. 03:00
지금의 하루는 과거 선택을 감당하는 시간
올 한 해 하거나 하지 않은 것들 되돌아보고
감당해야 할 것들 되새기며 새해 맞았으면
올 한 해 하거나 하지 않은 것들 되돌아보고
감당해야 할 것들 되새기며 새해 맞았으면
우리 책방에선 거의 매일 저녁 뭔가가 벌어진다. 낮엔 한산했다가도 저녁이 되면 마치 호떡집에 불난 듯 책방 이곳저곳이 수런거리고 직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손님들도 한 분 두 분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운영하지만 아무래도 책방에서 제일 많이 하는 것은 책의 저자를 초대해서 여는 저자 북토크다.
이 디지털 시대에도, 이 엄동설한에도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책방을 찾는데 그 이유를 이제 나는 안다. 사람들은 만나서 지식과 정보만 공유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부라면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북토크가 진행될 때 나는 저자와 독자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곤 하는데 그러다 알게 되었다. 저자와 독자의 이름으로 마주 앉은 사람들 사이엔 품을 들여 책을 쓴 저자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지가 있고, 바쁜 시간에도 자신을 만나러 와준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또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소감을 말하는 다른 참석자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매력적인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 ‘대면’엔 강력한 에너지의 자장이 있어서 ‘7년의 밤’과 ‘완전한 행복’을 쓴 정유정 작가는 작년 우리 책방 북토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은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독자를 만나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정현종 시인이 이미 쓴 대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인데 요즘 동네 책방에선 작가와 독자가 만나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낸다.
엊그제 우리 책방의 북토크 주제는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그의 글과 사유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추운 날에도 책방을 가득 메웠는데 진행을 본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책에서 고단한 노동과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긴 여가 시간을 확보하면 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요즘 MZ세대들은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 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일하지 않는 시간, 그 긴 여가의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 지금은 노동의 피로에 찌들어 있어 일하지 않는 여가를 갈망하지만 막상 그렇게 살아 보면 그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 그의 답을 듣는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졌다. ‘어떻게 사는가’는 결국 무엇을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로구나….
며칠 후면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온다. 나는 올해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았고,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긴 결과는 온전히 내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 어디 올 한 해뿐이랴. 지금껏 살면서 했거나 하지 않은 일, 서둘렀거나 늦어버린 일, 도전했거나 회피한 일, 좋아했거나 싫어한 것, 나의 지금 하루하루는 그것들을 감당하는 시간이다. 중년 고개를 넘으면서 몸의 여기저기가 아팠는데 병원에 가도 잘 낫지 않았다. ‘명의’를 소개받은 적도 여러 번이지만 그다지 효험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 알아차렸다. 나의 병은 대체로 만성인데 그것은 어느 날의 갑작스러운 발병이 아니라 오랜 시간 내가 그렇게 산 결과임을. 그러므로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나 스스로 사는 방식을 바꿔야 만성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쁜 짓을 하느라 그렇게 산 게 아니었다. 늘 중요한 뭔가가 내 앞에 있었고 나는 그것에 응했으며 그런 우선순위를 받아들였다. ‘공(公)’을 ‘사(私)’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일을 ‘공’으로 여겨 몰두했고 지금은 수십 년 그런 시간이 남긴 ‘내 삶의 무늬’를 감당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해의 매듭을 짓는 시간 앞에 서서 나는 내년에, 또 앞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감당하려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가끔 후배들이 내게 와 묻는다. 제각각 처한 상황을 말하곤 “제가 지금 이직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이런 건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나는 답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답 대신 질문을 돌려준다. 그래서 너는 무엇을 감당할 건데? 기회는 많지만 연봉은 좀 적은 곳, 안정적이지만 재미는 없는 회사, 가슴은 뛰나 미래는 불확실한 창업…. 이 중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감당하려 하느냐고 다시 묻는다. 당신과 나,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1년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이 디지털 시대에도, 이 엄동설한에도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책방을 찾는데 그 이유를 이제 나는 안다. 사람들은 만나서 지식과 정보만 공유하지 않는다. 그것이 전부라면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북토크가 진행될 때 나는 저자와 독자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곤 하는데 그러다 알게 되었다. 저자와 독자의 이름으로 마주 앉은 사람들 사이엔 품을 들여 책을 쓴 저자에게 보내는 응원과 지지가 있고, 바쁜 시간에도 자신을 만나러 와준 독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있다. 또 같은 책을 읽고 다른 소감을 말하는 다른 참석자에게서 새로운 영감을 얻는 매력적인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도 그 ‘대면’엔 강력한 에너지의 자장이 있어서 ‘7년의 밤’과 ‘완전한 행복’을 쓴 정유정 작가는 작년 우리 책방 북토크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자신은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독자를 만나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고. 정현종 시인이 이미 쓴 대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인데 요즘 동네 책방에선 작가와 독자가 만나 그렇게 어마어마한 시간을 보낸다.
엊그제 우리 책방의 북토크 주제는 김영민 교수의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그의 글과 사유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이 추운 날에도 책방을 가득 메웠는데 진행을 본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교수님은 책에서 고단한 노동과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혹시 긴 여가 시간을 확보하면 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요즘 MZ세대들은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이 되고자 한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하다고 물었다. 그는 뜻밖의 답을 내놓았다. 일하지 않는 시간, 그 긴 여가의 무료함과 권태로움을 견디기 어려울 거라는. 지금은 노동의 피로에 찌들어 있어 일하지 않는 여가를 갈망하지만 막상 그렇게 살아 보면 그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 그의 답을 듣는 내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졌다. ‘어떻게 사는가’는 결국 무엇을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로구나….
며칠 후면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이 온다. 나는 올해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았고,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았으며, 열심히 하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생긴 결과는 온전히 내 몫이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 어디 올 한 해뿐이랴. 지금껏 살면서 했거나 하지 않은 일, 서둘렀거나 늦어버린 일, 도전했거나 회피한 일, 좋아했거나 싫어한 것, 나의 지금 하루하루는 그것들을 감당하는 시간이다. 중년 고개를 넘으면서 몸의 여기저기가 아팠는데 병원에 가도 잘 낫지 않았다. ‘명의’를 소개받은 적도 여러 번이지만 그다지 효험이 크지 않았다. 그러다 알아차렸다. 나의 병은 대체로 만성인데 그것은 어느 날의 갑작스러운 발병이 아니라 오랜 시간 내가 그렇게 산 결과임을. 그러므로 의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나 스스로 사는 방식을 바꿔야 만성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나쁜 짓을 하느라 그렇게 산 게 아니었다. 늘 중요한 뭔가가 내 앞에 있었고 나는 그것에 응했으며 그런 우선순위를 받아들였다. ‘공(公)’을 ‘사(私)’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일을 ‘공’으로 여겨 몰두했고 지금은 수십 년 그런 시간이 남긴 ‘내 삶의 무늬’를 감당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해의 매듭을 짓는 시간 앞에 서서 나는 내년에, 또 앞으로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않음으로써 무엇을 감당하려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가끔 후배들이 내게 와 묻는다. 제각각 처한 상황을 말하곤 “제가 지금 이직을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고. 이런 건 제대로 된 질문이 아니다. 나는 답을 기다리는 그들에게 답 대신 질문을 돌려준다. 그래서 너는 무엇을 감당할 건데? 기회는 많지만 연봉은 좀 적은 곳, 안정적이지만 재미는 없는 회사, 가슴은 뛰나 미래는 불확실한 창업…. 이 중에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감당하려 하느냐고 다시 묻는다. 당신과 나, 우리가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1년을 결정할 것이다. 우리 모두의 건투를 빈다!
최인아 객원논설위원·최인아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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