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앙 초래 ‘핵 버튼'은 대통령만 누른다?
오경보 가능성·허술한 암호 확인절차 등
핵 지휘 통제·관리의 ‘불편한 진실' 고발
핵 단추 권한 전역 사령관에게도 위임
“北, 지도부 공격 땐 자동 발사 개발 중”
인류 종말 기계/대니얼 엘스버그/강미경 옮김/두레/2만3000원
“반세기 전 내가 알게 된 미국의 핵 계획 시스템과 병력 준비 상태 중 대부분의 측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며, 여느 때처럼 재앙으로 치달을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이처럼 비윤리적이고 광기로 가득 찬 정책은 일찍이 없었다. 재앙을 일으키는 이러한 사태가 어떻게 생겨났으며 그런 위기가 반세기 넘게 존속해온 이유를 둘러싼 이야기는 광기에 관한 연대기나 다름없다.”
때맞춰 나온 신간은 ‘펜타곤 문서’ 폭로로 종신형을 살 뻔했던 엘스버그가 국가기밀 공개의 엄중함을 잘 알면서도, 또 수십년을 묵힌 다음에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던 극도로 민감한 미국 핵전쟁 정책의 진실과 그 위험성을 담고 있다. 제1부에서는 미국 핵 지휘통제 및 관리의 허실을 밝힌다. 상존하는 오경보의 가능성, 복잡하면서도 허술한 암호 확인, 핵무기 사용 인가 권한의 위임, 너무도 광범위하고 불확실한 핵 공격 표적 등 절차적, 전술적 문제뿐 아니라 때로는 대통령에게까지 작전계획을 노출하려 하지 않는 군부의 지나친 비밀주의 등을 고발한다.
막강한 핵전력을 지휘하는 소령에게 긴박한 상황에서 어찌 대처할지 묻자 그는 예민한 문제여서 윗선(도쿄) 허가 없이는 대답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래서 일본 사령부와 교신을 시도하는데, 실패했다.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 묻자 핵 폭격기를 지휘하는 소령은 “하루에 한 번꼴로 일본과 연락이 두절된다”고 답했다. 이윽고 윗선 허가를 확인한 소령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부 지시 없이 출격할 수 없다는 원칙을 알면서도 막상 자신의 기지가 공격받는 상황이라면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처럼 미국의 핵 단추를 누를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한 사람이라는 공식적 입장과 다른 상황에 엘스버그는 경악한다. 실제로 핵 단추를 누르는 권한은 전쟁 임무를 수행하는 전역(戰域) 사령관에게까지도 위임되고 있었다.
2부에선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발발에도 최후까지 살아남는 1인이 되기 위해 핵무기를 경쟁적으로 확충하며 어떤 인류 종말 기계를 고안했는지 고발한다. 미·소 양국의 전쟁 계획은 기본적으로 핵 전면전을 상정한 채 서로에 대한 참수 작전을 공언했지만, 권한 위임 여부에 대해선 부정하거나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한다. 이러한 양국의 국방 정책의 결과가 핵전쟁이 발발했을 때 자동으로 핵무기가 발사되는 시스템, 즉 인류 종말 기계의 개발이다. 핵전쟁 발발을 막기 위한 지도부 제거 작전, 즉 참수 작전은 지도부가 공격당하면 자동으로 핵으로 반격하는 인류 종말 기계 개발로 이어졌고 이는 지금 북한에서도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게 핵전쟁 정책 전문가의 섬뜩한 예측이다.
박성준 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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