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찰나 담은 그림·기묘한 퍼포먼스, 관람객 러브콜

서정민 2022. 12. 2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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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아티스트 전시 2제
알렉스 카츠와 마틴 마르지엘라. 나이도, 커리어도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이름만으로 관람객을 줄 세우는 아티스트라는 점이다. 내년 3월 26일까지 두 사람의 전시가 열린다. 한 사람은 구상화와 추상표현주의 경계를 오가는 매혹적인 기법의 초상화와 풍경화를, 한 사람은 이전의 미술관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퍼포먼스와 실험작을 선사한다.

레드 하우스 3, 2013.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 Alex Katz.
◆ 알렉스 카츠 전시 ‘반향(Reflection)’= 12월 9일부터 서울 청담동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루이 비통 플래그십 스토어 4층 갤러리)에서 알렉스 카츠의 전시 ‘반향(Reflection)’이 열린다.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이 소장한 1980~90년대 카츠의 대표작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카츠는 1950년대부터 꾸준히 초상화에 몰두해왔다. 대학시절부터 오가는 전철 안에서 승객들을 관찰하며 스케치를 했던 그는 57년에 아내 에이다(Ada)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아내와 주변 지인들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한다. 카츠의 초상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실제보다 몇 배는 크게 그리고, 과감하게 화면을 크롭하고, 영화 속 앵글처럼 와이드하게 표현한 화면을 즐긴다. 구상화를 작업하면서도 전통적인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기법을 개발한 결과다. 또 흥미로운 점은 초상화 속 얼굴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총 250여점이나 그렸다는 아내 에이다의 얼굴만 봐도 ‘보편적인 미국 여성의 생김이 저렇지 않을까’ 싶고, 심지어 갈색 머리를 한 여성은 한국인처럼 친근하게 느껴진다.

카츠의 풍경화 역시 보는 이의 마음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특히 그림 속 풍경 안에 내가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일단 높이 3m, 5m를 넘는 캔버스 크기가 시선을 압도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주 편하고 쉽지만 딱 잘라 표현할 수 없는’ 컬러들이 마음을 끈다. 그런데 정작 카츠는 이런 말을 했다. “사람들은 내게 컬러가 꽤 특별하다고 하는데, 실상 컬러는 중요치 않다. 빛에 따라 컬러는 얼마든지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츠의 풍경화가 초등학생 그림처럼 편안하면서도 철학적 신비함이 느껴지는 건, 바로 세상의 모든 것들과 맞부딪치는 빛의 찰나를 기록하기 때문일 것이다.

알렉스 카츠는 올해 나이 95세. 노란색 바지에 분홍색 양말을 매치할 줄 아는 멋쟁이 할아버지 화가는 여전히 몇 미터짜리 대형 캔버스와 씨름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 멋진 세계와의 조우를 놓치지 마시길. 무료.

◆ 마틴 마르지엘라 기획 전시 = 0부터 22까지의 숫자로 대신한 로고, 일본 전통신발에서 영감을 얻어 엄지 발가락 부분이 갈라진 ‘타비 부츠’ 등으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마틴 마르지엘라의 대규모 기획전시 ‘마틴 마르지엘라’가 12월 24일부터 서울 잠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린다. 회사 내 직원들에게조차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서 ‘얼굴 없는 천재’로 알려진 그는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하고 순수 예술 창작자로서 살아간다. 이번 전시는 202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연 첫 개인전 이후, 중국 베이징 다음으로 개최되는 대규모 전시다.

‘마틴 마르지엘라’ 전시 포스터. [사진 루이비통·롯데뮤지엄]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1980년대부터 탐구해온 ‘예술, 물질과 신체, 성별의 관념, 시간의 영속성, 직접 참여’에 대한 성찰을 테마로 설치·조각·영상·페인팅 등 50여 점을 선보이는데, 역시나 작품마다 ‘마르지엘라다운’ 기괴함이 가득하다. 하얀 가운(메종 마르지엘라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일할 때 입게 했던)을 입은 스태프들이 일정한 시간마다 움직이면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작품들이 일단 신선하다. 벽에 걸린 잡지의 위치를 옮긴다든가, 토르소 조각을 덮어놓은 천의 위치를 바꾼다든가, 슬라이드 롤을 올렸다 내린다든가. 방에서 방으로 옮겨가는 복도에는 무언가를 걸었던 흔적이 ‘작품’으로서 관람객을 맞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관람객이 ‘불쾌함’과 ‘진지함’ 사이에서 고민할 작품은 ‘헤어’ 시리즈일 것이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이발소에서 놀기 좋아했던 마르지엘라는 패션 디자이너가 돼서도 헤어에 대한 집착이 컸다. 패션쇼 무대 위에 서는 모델들의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붕대처럼 감아 누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는 아무도 생각 못한 방법과 아이디어로 다양한 헤어 스토리를 펼쳐 놓는다. 사람마다 두상은 고유해서 가르마의 방향이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준 ‘카토그래피’, 유년부터 노년까지 인생 전체를 머리카락 색으로 표현한 ‘바니타스’ 등은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문제는 50점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과연 그가 던지는 질문에 진지하게 몰입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특히 맨 마지막에서 만나게 될 영상은 이전의 기억을 모두 날려버릴 만큼 쇼킹하다. 1만9000원.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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