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벤치 멤버와 중꺾마

박신홍 2022. 12. 2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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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정치에디터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카타르월드컵이 숱한 뒷얘기를 남긴 채 막을 내렸다. 최고의 스타는 단연 리오넬 메시였지만 그에 못지않은 스토리로 감동과 환호를 안겨준 선수들도 적잖았다. 특히 벤치 멤버들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늘 메시 곁을 지키던 앙헬 디 마리아는 부상 여파로 16강전부터 벤치로 밀렸지만 결승전에 깜짝 선발 출전해 선제 페널티킥을 얻어내더니 직접 골까지 넣으며 아르헨티나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그는 경기 전 “진통제를 맞더라도 몸이 부서질 때까지 뛰겠다”며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중꺾마’가 비단 우리 대표팀만의 각오는 아니었던 거였다.

조규성·이강인·황희찬은 조별예선 첫 경기 땐 베스트11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조규성은 2차전에서 월드컵 역사상 한국 선수 중 첫 멀티골을 기록했고 막판 벤투호에 가까스로 탑승한 이강인도 멋진 어시스트로 팬들의 성원에 보답했다. 황희찬은 후반 추가 시간 대한민국을 16강에 진출시키는 천금의 결승골을 넣었다. 그뿐인가. 포르투갈의 신예 공격수인 곤살루 하무스는 대선배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대신 선발로 나온 첫 경기에서 해트트릭까지 기록하며 일약 깜짝 스타로 떠올랐다. 그야말로 ‘벤치의 유쾌한 반란’이었다.

「 ‘벤치의 유쾌한 반란’ 돋보였던 월드컵
정치권도 총선 앞두고 새바람 불기를

반면 4년 전 프랑스 우승의 주역이었던 뱅자맹 파바르는 이번엔 벤치에 머물게 되자 감독·동료와 잇따라 충돌하며 내부 불화의 장본인이 됐다. 포르투갈도 소속팀 맨유에서의 벤치행에 반발해 감독까지 비난한 호날두를 대표팀 선발 명단에서 제외하는 문제를 놓고 마지막까지 논란만 거듭하다 끝내 탈락하고 말았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좌절하거나 불만을 품고 팀 분위기를 망친 선수와 묵묵히 때를 기다리다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부여잡으며 팀에 공헌한 선수가 극명하게 대비된 월드컵이었던 셈이다.

세상사도 마찬가지다. 앞선 자가 뒤지고 뒤선 자가 앞서는 경우가 다반사다. ‘GOAT’로 칭송받는 메시도 늘 승승장구한 게 아니었다. 지난해 코파 아메리카 우승도 월드컵 등 국제대회에서 15년간 쓴잔만 마신 뒤 9전10기 만에 이룬 쾌거였다.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니 마침내 문이 열린 거였다. 오죽하면 “신이 나를 위해 이 순간을 아껴둔 것 같다”며 감격했겠는가.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때마다 회자되는 “들어올 땐 순번이 있지만 나갈 땐 순번이 없다”는 경구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한발 앞섰다고 끝까지 앞서는 게 아니라 결국엔 꺾이지 않는 존버의 정신이 최후의 승자를 결정지을 거란 교훈이다.

벤치 멤버들의 깜짝 등장이 기다려지는 건 한국의 정치권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총선 정국이 본격화할 내년엔 세대교체도 좋고 심지어 물갈이라 해도 상관없으니 능력과 책임감과 봉사·희생정신을 갖춘 인물이 여럿 나와서 여의도의 고인 물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나아가 젊은 세대와 서민층 등 기존 정치권이 말로만 관심 있는 척할 뿐 실제로는 눈길조차 주려 하지 않는 또 다른 벤치 멤버들에게도 마음 쓸 줄 아는 자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중꺾마가 유행하자 곧장 SNS에서는 “진짜 중요한 건 좀처럼 깎이지 않는 이자에 타들어가는 서민들의 마음”이란 ‘중깎마’의 푸념이 쏟아지는 게 현실 아니던가.

우리 사회의 벤치 멤버들도 당당하게 그라운드를 밟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버티고 인내하며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그들에게도 희망의 문이 열릴 수 있도록 인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건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자 정치권의 기본 의무다. 벤치 멤버들이 튼튼해야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도 건강하게 유지되고 치열한 국제사회 경쟁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는가. 내일은 성탄절이다. 부디 성탄의 은총이 중깎마의 현실에 고통받는 모든 이들과 함께하기를. 그리고 새해엔 이들을 보듬는 정치를 볼 수 있게 되기를. 그래서 손쉬운 배제보다 어려운 연대를 선택하는 한국의 정치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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