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신 스틸러’ 아기 천사와 도스토옙스키의 성모

2022. 12. 24.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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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의 원천]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
19세기 독일 드레스덴의 한 미술관. 한 남성 관람객이 전시실 구석에 있는 의자를 끌고 커다란 그림 앞으로 가더니 의자에 올라서서 그림 윗부분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미술관 직원들로부터 ‘이러시면 안 됩니다’하고 주의를 받았지만, 직원이 사라지자마자 다시 의자에 올라가 그림 윗부분을 정신없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내려와 일행인 자신의 아내에게 말했다. “드디어 마돈나를 봤어.”

러시아 문학자 조주관 교수의 『도스토옙스키가 사랑한 그림들』(2022) 속 이야기다. 그 관람객은 바로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였다. 그가 그토록 보고자 한 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라파엘로의 그림 ‘시스틴 마돈나’에서 마돈나, 즉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었다. 이탈리아어 ‘마돈나(Ma Donna)’는 영어의 ‘마이 레이디(My Lady)’와 같은 뜻으로 여성 영주·귀족을 공경해서 부르는 말이며, 미술작품에서 성모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성모 마리아 미소 띤 얼굴에 비애 서려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 (1512~14). [사진 독일 드레스덴 옛 거장 미술관]

도스토옙스키는 라파엘로를 최고의 예술가로 손꼽았고, 그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시스틴 마돈나’를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림이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러시아 문학자 석영중 교수의 『매핑 도스토옙스키』(2019)에 따르면 이것은 도스토옙스키 혼자의 생각이 아니라 그의 선배 러시아 문인들과 예술가들 사이에 퍼져나간 견해였다. ‘시스틴 마돈나’는 “그림이 아니라 비전(신이 보여주는 예언적 환영)”이며 “아름다움의 정수”로 여겨졌다. 석 교수에 따르면 “해외 여행길에 오른 러시아 지식인들은 으레 드레스덴에 들러 라파엘로의 그림에 경배하는 것을 일종의 순례 코스로 여겼다”고 한다.

‘시스틴 마돈나’의 무엇이 그토록 러시아 문인들과 예술가들을 매혹했을까? 이 그림은 독특하게도 양쪽에 커튼이 그려져 있다. 그 녹색 커튼 사이로 소녀 같은 청아한 얼굴의 성모 마리아가 사랑스러운 아기예수를 안아 들고 두건과 옷자락을 나부끼며 나타난다. 성모자의 뒤로는 신비로운 하얀 안개구름이 펼쳐져 있는데, 잘 보면 수많은 케루빔(cherubim), 즉 얼굴과 날개만 있는 아기천사들이 어렴풋하게 그 운무를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마치 커튼이 열리자 그 너머로 케루빔의 영묘한 합창이 울리는 천상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은, 그리고 천상의 성모자가 지상의 신자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 같은 환상을 경험하게 된다. 그야말로 “그림이 아니라 비전”인 것이다. 이제 화폭은 이 속세와 천국을 이어주는 신비로운 문이 된다.

그림 왼쪽의 성 식스투스 2세는 멀리에서 이 그림을 바라볼 신자들을 가리키고 있고, 오른쪽의 성녀 바르바라는 그림 아래 무릎 꿇을 신자들을 향해 더없이 우아한 미소를 던진다.

식스투스 2세는 고대 로마의 순교자로서, 초기교회의 교황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금빛 제의를 입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지금은 독일 드레스덴에 있지만 처음에는 이탈리아 피아첸차에 있는 식스투스 수도원의 제단화로 그려졌고 또 그곳에 한동안 걸려 있었기 때문에 ‘식스투스의’라는 뜻의 ‘시스틴’ 마돈나로 불리게 됐다(르네상스 3대 거장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 1564)의 천장화로 유명한 시스티나 성당과는 별 관계가 없다). 그리고 바르바라 역시 이 수도원의 수호성인이었기 때문에 그림에 등장한 것이다. 그녀는 이교도 아버지의 격렬한 반대에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끝까지 버리지 않아서 결국 친부의 손에 참수 당했다는 전설 속의 순교자다.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 중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부분 확대

‘시스틴 마돈나’의 특히 매혹적인 요소 중 하나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다. 단지 청순하게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커다란 눈동자와 가냘픈 미소를 띤 입가에 보일 듯 말 듯한 비애가 서려 있다. 신이자 인간인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로서, 미래이자 과거의 사건인 아들의 십자가 수난을 영혼으로 함께하는 괴로움 때문에, 또한 아들의 대속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타의 이유로 계속 고통에 빠지는 인류에 대한 슬픈 연민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 후자에 대한 고뇌가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도스토옙스키는 소설 『죄와 벌』(1866)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때 그녀의 얼굴은 라파엘로의 마돈나 같더군요. 시스틴 마돈나의 환상적인, 슬픈 광신자의 얼굴 말입니다.”

‘시스틴 마돈나’는 『죄와 벌』 외에도 도스토옙스키의 여러 소설에 직간접적으로 언급되는데, 『악령』이 대표적이다. 무정부주의 급진주의자가 다른 동지들과 함께 자신과 갈라선 동지를 잔인하게 린치하고 살해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 도스토옙스키 소설 중에서도 가장 어두우며 ‘스탈린의 탄생을 반세기 전에 예언한 작품’이라고도 불린다.

아기 천사, 커피 브랜드 로고로도 활용

시스틴 마돈나’의 아기천사들 부분 확대. [사진 독일 드레스덴 옛 거장 미술관]

『악령』에서 ‘시스틴 마돈나’를 비롯한 예술은 청년 진보주의자들에게 ‘인민의 식량도 도구도 못 되는 쓸모 없는 것’으로 조롱받는다. 이들의 스승이었던 늙은 진보주의자 스테판은 “빵이 없어도 인류는 살 수 있지만 아름다움이 없다면 살 수 없습니다!”라고 눈물 흘리며 강연을 하다가 청중의 야유만 받고 쫓겨난다. 여기서 도스토옙스키는 스테판에 동감하면서도 그가 청중을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고 우스꽝스럽게 자기 도취에 빠지다가 망신만 당하는 것으로 묘사함으로써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그의 또다른 소설 『백치』에 나오는 말)라는 작가의 생각이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작가가 말하는 “아름다움”은 당시 러시아 급진주의자들 사이에 팽배한 허무주의·무신론·유물론에 대항한 영적인, 초월적인, 그리고 신의 사랑이 담긴 아름다움이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허무주의·무신론·유물론의 정연한 논리에 제대로 반격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그 진실한 실체로 승리한다는 게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생각이다.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마침내 소냐에게 무릎 꿇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이반이 알료샤에게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시스틴 마돈나’는 그러한 성스러운 아름다움의 현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처럼 ‘시스틴 마돈나’는 19세기 러시아에서 진지한 거대 담론의 중심에 서있었지만, 현대에는 이 그림의 ‘신 스틸러’라고 할 수 있는 두 아기천사들이 그림의 주인공 성모자보다 더 유명해진 상태다.

그림을 보면 왼쪽 천사는 자못 진지하게 턱을 괴고 있지만, 오른쪽 천사는 꼬마들이 지루해지기 시작했을 때 으레 나오는 자세를 취하는 중이다. 화면에서는 안 보이는 발을 이미 동당거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미풍에 살짝 흩날리는 곱슬머리나 보드라운 살결이나 통통한 팔이나 앙증맞은 날개도 귀엽지만, 이 천사들이 특히 사랑스러운 것은 바로 그 아이다운 몸짓과 뚱한 표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 중 왼쪽 아기천사 부분 확대

‘시스틴 마돈나’의 아기천사들을 인용한 매일유업 앱솔루트 명작 분유 용기. [사진 매일유업]
라파엘로의 '시스틴 마돈나' 중 오른쪽 아기천사 부분 확대
‘시스틴 마돈나’의 아기천사들을 인용한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 구(舊) 로고 (2021년 교체) [사진 엔제리너스]

이렇게 그림에 발랄함과 부드러움을 더해주는 날개 달린 꼬마들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회화에 수시로 등장한다. 하나일 때는 푸토(Putto)라고 하고, 여럿일 때는 푸티(Putti)라고 한다. 푸티는 ‘시스틴 마돈나’ 같은 그리스도교 성화에서는 천사로서, 그리스/로마 신화 그림에서는 활을 든 큐피드로서 등장하곤 한다. 수많은 푸티 중에서도 ‘시스틴 마돈나’ 아기천사들의 인기는 단연 최고라서 현대에도 크리스마스 카드, 분유통 그림, 커피 체인점 로고 등등으로 끊임없이 초대되고 있다.
라파엘로의 인물 묘사의 세련된 감미로움은 그림 전체 구성의 뛰어난 균형과 어우러져 조르조 바사리(1511~ 1574)가 중시한 “그라치아(grazia),” 즉 ‘우미(優美)’를 달성한다. 최초의 본격적인 미술사가인 바사리는 미켈란젤로의 제자로서 그를 최고의 미술가로 숭배했지만, 그라치아에 있어서는 라파엘로를 대표자로 꼽았다. 아기천사들의 뚱한 표정에서부터 바르바라의 미묘한 미소에까지 스며있는 그 자연스러운 우아함인 그라치아는 섬세한 관찰과 연구, 탁월한 미적 직관, 그리고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모두 갖추어졌을 때만 가능하다. 그것이 라파엘로를 르네상스 3대 거장의 반열에 기꺼이 올려놓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symoon@joongang.co.kr 미술전문기자. 서울대 경제학부 학·석사, 런던대 골드스미스컬리지 문화학 석사, 홍익대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 저서로 『그림 속 경제학』(2014), 『명화독서』(2018), 『광대하고 게으르게』(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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