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곁으로 다가가는 ‘소설 버스’ 다함께 타보세요
이현석의 ‘소설의 곁’
사연인즉슨 이랬다. 방역수칙 완화 이후 이집트 패키지여행을 예약해둔 아버지는 뭐라도 좀 알고 가야할 것 같아 도서관을 찾았다. 1990년대를 풍미했던 크리스티앙 자크의 다섯 권짜리 대하소설 『람세스』를 꺼내어 모두 읽었다는 그는 “그거 순 소설이데!”라며 콧방귀를 뀌고는 역사 서가로 가서 이집트 역사책을 몇 권 찾아 읽었다고 말했다.
여행을 계기로 평소 담을 쌓고 지낸 책을 가까이 했다는 일이 신통하기야 했지만 “그거 순 소설이데!”라는 말을 면전에서 들은 소설가는 피식거리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수년 전 이 신문 지면으로 데뷔해 나름 치열하게 써오는 사이 나는 산문의 정수는 역시 소설이며, 소설가는 글을 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짓는 사람이라는 직업적 자부심을 앙양해왔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이견이 있겠으나 이조차 없다면 못 해먹을 짓이라는 점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문학에 진심인 사람으로 가득한 주변에서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소설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에 직면해야 한다. 세간의 인식은 여전히 ‘소설 쓰고 앉아있네’나 ‘이게 기사냐, 소설이냐’라고 할 때의 그 ‘소설’에서 딱히 벗어나지 않는 듯하다. 문학이란 단어가 내뿜던 광휘는 빛을 잃은 지 오래고, 그나마 있던 아우라도 잊을 만하면 터지는 비위를 통해 스스로 팽개치는 판인데 무슨 염치로 사람들에게 소설을 읽으라고 할 수 있을까.
막막한 마음뿐이나 그럼에도 내게는 더 많은 사람들이 소설을 읽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것도 그냥 읽지 말고 주변 사람 서너 명을 모아 같이 읽기를 권해본다. 소설을 읽는 게 정말 좋은 일이냐고 묻는다면 우물쭈물해할지 몰라도, 소설을 같이 읽는 일이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좋은 일이다.
정말 좋기 때문에 나도 지인들과 함께 장편소설을 읽는 모임을 오랫동안 같이 꾸려나가고 있다. 처음 모임을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다. 쓰는 일이 바빠질수록 호흡이 긴 작품에 점점 손이 가지 않았다. 단편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제도권 문학시장에는 매년 200편이 넘는 단편이 쏟아지는데 이것도 따라 읽기 벅차 장편은 자꾸만 멀어졌다. 그래서 책을 즐겨 읽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한 달에 장편소설을 한 권씩이라도 같이 읽어보자고.
조금 길기야 하지만 어쨌거나 소설이지 않나. 대단한 지식을 얻겠다는 야심 없이, 뼈저린 교훈을 얻겠다는 의욕 없이, 때로는 무얼 말하는지조차 모르겠어도 남이 풀어놓은 이야기를 끝까지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할 말이 생겼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책을 읽는 동안 저마다 상상했던 장면과 각자의 입장에서 헤아렸던 감정을 한 자리에 모여 나누다보면 같은 소설을 읽은 게 맞나 싶어 놀랍기도 했다. 우리는 어떻게 이다지도 다른가. 바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르다는 사실이 좋았다. 그 덕분에 혼자일 때 보지 못했던 것을 같이 볼 수 있었으니까. 영영 모를 타인이지만 그래도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조금은 더 알게 된 것만 같았다.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고귀하지는 않더라도, 곁에 있는 사람의 존재는 더없이 귀했다.
지난 몇 년간 거리가 멀어져 모임을 떠난 사람도 있고, 오며가며 알게 되어 새롭게 들어온 사람도 있다. 떠난 사람과도 간간히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새로운 사람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이는 이 모임을 생각할 때, 나는 따뜻한 정류장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외로움은 우리 존재에 깃든 상수일 텐데 세상마저 고립을 부추기는 이 모진 시기에 따뜻한 정류장이 곳곳에 지어지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그 정류장에서 소설이라는 버스를 타면 우리는 주변뿐만 아니라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세상에까지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소설이 아니었다면 그레이트게임 당시의 아프가니스탄이나 무장봉기가 한창이던 북아일랜드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보도연맹학살에 가담한 경찰이나 제주4·3사건 때 일본으로 건너간 난민의 내밀한 역사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가 탈영한 군인이나 문화대혁명을 피해 해외로 도망친 바이올리니스트의 마음에 감히 닿아볼 수나 있었을까.
‘소설의 곁’을 시작하면서 모두에 썼듯이 세상 곁에서 탄생한 소설을 우리 옆으로 되가져오면 지금 이곳을 면밀히 살펴볼 만한 좋은 도구가 된다. 열두 편의 소설을 다루었던 지난 열두 달은 스스로도 이 장르가 사회와 더불어 숨 쉬는 예술이라는 것을 되새김질하는 시간이었다.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지면을 꾸준하게 채울 수 있었던 것도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이 있어서다.
연재를 시작할 때 펴낸 소설이 한 권이었고, 지금은 두 권이다. 내년에는 세 번째 책을 내야하는데 잘 모르겠다. 쉼 없이 달려오면서 놓치거나 잊었던 것들이 자주 생각나는 겨울이다. 몸과 행동보다 말과 글이 앞서지 않았을까 늘 두려웠다. 이제는 두려움을 잠시 내려두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그동안 같이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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