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된 올댓재즈, 뮤직카우 수혈로 부활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부활한 ‘올 댓 재즈’ 진낙원 사장
이날 김종진과 기타리스트 한상원, 베이시스트 최원혁 등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선후배들은 흥건하게 취해 레전드 무대를 만들었다. 고수 중의 초고수 드림팀이 ‘브라보 마이 라이프’ ‘수지큐’ ‘미인’ 등을 즉흥 연주하니 이런 귀호강이 없었는데, 손님들도 대부분 뮤지션이었다. 환갑잔치도 흥겹지만, 사실 이들이 정말 기뻐하는 건 ‘올 댓 재즈’의 부활이었다.
‘올 댓 재즈’. 재즈 불모지 시절부터 40여 년간 연주자들에게 무대를 제공하고 해외 뮤지션들과 교류의 장까지 열어준 한국 재즈의 성지다. 이곳을 상업 시설을 넘어 서울에 몇 안 되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문화 공간으로 만든 건 ‘한국 재즈신의 아버지’ 진낙원 사장이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의 등장인물로도 유명한데, 별말 않고도 푸근한 미소로 사람을 사로잡는 마성의 매력이 있다.
차인표·신애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
사실 ‘올 댓 재즈’의 부활을 도운 게 김종진과 허영만이다. 재오픈을 모색하던 진 사장과 음악 저작권료 조각투자 플랫폼 뮤직카우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음악 생태계 확장’을 표방하는 뮤직카우 서대경 대표에게도 ‘올 댓 재즈’ 투자는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음악 시장의 뉴커머인 저희는 기존 플레이어들과 경쟁하려는 게 아니라 시장을 확대하려고 해요. 음악으로 번 돈을 음악의 본질로 환원하는 차원에서 비주류 음악가들을 지원하고 있죠. 40년 된 뉴욕의 재즈 클럽 ‘블루노트’보다 형님인 ‘올 댓 재즈’야 말로 자긍심을 갖고 지켜야 할 자산이다 싶었습니다.”
진 사장은 팬데믹을 버티고 버텼다. 1년 반 동안 개점휴업 상태로 매달 수천 만원의 임대료와 월급을 밑 빠진 독에 쏟아붓고 빈 깡통이 되어 지난해 폐업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새 가게를 ‘올 댓 재즈’의 헤리티지로 채울 수 있었다. 이태원과 삼각지 사이에 있던 첫 가게가 건물에서 쫓겨나 2011년 이전했던 해밀톤 호텔 뒷골목의 두 번째 가게는 규모가 커 재즈 바가 아니라 나이트클럽 분위기였던 것. “처음 가게와 디자인을 비슷하게 했어요. 가운데 기둥이 있는 것까지 옛날 가게를 닮았더군요. 층고도 낮아져서 아늑한 느낌이 들죠. 예전에 왔던 친구들은 옛날 느낌 난다고 하고, 손님들도 술맛 난다고 하네요.(웃음)”
처음엔 그도 손님이었다. 오픈 당시 19살이던 그는 ‘재즈 바’라는 게 생겼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국민학교 시절 친척 아저씨가 운영하던 댄스 교습소에서 데이브 브루벡의 ‘테이크 파이브’에 마음을 뺏긴 이래 재즈의 노예가 된 그다. 집에 LP 2000장으로 오디오룸을 차려놓고 절친이었던 고 김현식을 비롯해 엄인호, 이광조, 고 조덕환 등에게 연습실로 제공했다. 진작부터 밴드 뮤지션들의 든든한 뒷배였던 것이다.
뮤지컬 ‘시카고’의 메인테마에서 이름을 따 ‘올 댓 재즈’를 연 건 중국계 미국인 마명덕 사장이었다. 군수산업 로비스트이자 옥수동에서 ‘사파리 포스트’라는 카지노를 운영하던 큰손 마 사장은 음악을 잘 아는 단골 청년 진낙원에게 DJ, 매니저를 맡기며 가까이 뒀다. 진 사장이 가게를 인수한 건 마씨가 86년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국외로 쫓겨나면서다. “점잖고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분이었어요. 재즈를 워낙 좋아해서 한남동에 재즈 클럽을 한 개 더 열기도 했는데, 저를 많이 도와줬죠. 가게를 인수할 돈이 모자랐는데, 벌어서 갚으라더군요. 지난번 가게는 한 번 오셔서 흡족해 하셨죠. 그래도 너한테 물려주니 안 없어졌다면서요.”
하지만 80년대 재즈 불모지에서 바 운영은 쉽지 않았다. 빚보증을 섰다가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창고에서 숙식하며 가게를 지킨 끝에 94년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 촬영지로 떡상했다. 차인표의 색소폰 연주에 신애라가 반하는 장면과 함께 순식간에 재즈가 로맨틱하고 세련된 신문물로 뜬 것이다. “둘이 결혼한다길래 나한테 양복이라도 해주지 않을까 기대도 했었죠. 신애라라는 색시는 연예인 같지 않고 되게 착했는데 말이죠.(웃음)”
“정성조씨는 기네스북에 올라야 해요. 내가 인수한 86년부터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매주 일요일 연주를 했거든요. 거의 30년 개근을 했는데, 그렇게 한곳에서 계속 연주한 사람은 없을 걸요. 이정선씨와 서울예대에 최초의 실용음악과를 만들 땐 내가 교재를 만들어줬죠. 교수를 하면서도 그렇게 무대를 사랑했어요. 전형적인 하드밥 음악을 들으려면 일요일에 와야 했죠. 몇십 년된 밴드니 호흡도 최고였고요.”
40여년 단골 “진 사장 덕에 음악 즐겨”
아티스트도 훌륭하지만, 손님들은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가게 문을 연 주인장 진낙원이야말로 ‘올 댓 재즈의 힘’이라고 말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가게를 열었다는데,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지방에서도 많이들 오시거든요. 먼 데서 음악 들으러 왔는데 문닫고 있으면 김새지 않겠어요. 그런데 요즘은 환경이 달라졌으니 생각을 좀 해 봐야겠어요.”
그래선지 40여년 단골이라는 손님들도 여럿 있었다. 진 사장과 함께 『식객』에 티격태격 커플로 등장하는 올라운드 음악 마니아 ‘창식’씨는 김종진 환갑을 축하하며 손님들에게 와인 수십 병을 돌렸는데, “진 사장이 없었다면 내가 음악을 이렇게 좋아하게 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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