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83] 현재라는 선물
인간이 두 번 살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람에게는 과거의 특정 순간으로 돌아가 기존의 선택을 뒤집고 싶은 순간이 있다. 화끈거리는 실수의 순간도 있고,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쳤던 순간도 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중 20대를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아니다. 운이 좋아 여기까지 왔지만 젊은 시절 지독한 실패의 기억들이 몸 안에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무조건 허락할 것이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이런 경우이다. 드라마는 1988년 올림픽, 2002년 월드컵처럼 기성세대에게는 노력하면 대다수가 성장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추억을 보여주면서, 젊은 세대에게는 노력하면 많은 것이 가능했던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속도감 있게 펼쳐진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초고속 압축 성장을 한 나라의 사람들에겐 후회가 더 많기 마련이다. 폭등과 폭락의 시절 속에서 그때 사지 못한 주식, 채권, 강남 아파트와 땅이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심리를 꿰뚫어 1997년 ‘외환 위기’와 2001년 ‘9·11 테러’ 속에서 주인공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포착하는지 보여준다. 몇 년 전부터 웹툰과 웹소설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시간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타임슬립물’의 인기는 현재에 대한 불만족과 미래의 불안감을 동시에 내포한다.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젊은이들에게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성장이 말라버린 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들은 괴롭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이다. 시간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미래는 현재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고, 과거는 현재를 기준으로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뜻하는 영어 단어 ‘Present’의 다른 뜻은 ‘선물’이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선물은 현재이다. 두 번의 인생은 없다. 오늘이 나의 가장 어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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