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가이는 싫다”…180억 걷어차고 에이즈환자 역할 왜 [Books]
매튜 맥커너히 지음, 윤철희 옮김, 아웃사이트 펴냄
배우의 얼굴엔 배역 너머 그 사람의 생이 드러난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 내부를 부유하며 딸의 과거가 겹겹이 보이는 ‘5차원 책장’을 무한히 헤매는 아버지 쿠퍼의 다급한 얼굴을 보면 “오직 그만이 이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불가피해진다. 미국 유명 배우 매튜 맥커너히 얘기다.
맥커너히가 에세이라고 부르기엔 지극히 깊고, 회고록으로 정의하기엔 너무 유머러스한, 이전에 없던 형식의 글을 출간했다. 여덟 편의 긴 단상을 꿰맨 책이다. “모든 인간에겐 빨간불이 그린 라이트(green light)로 변하는 순간이 있다”며 “우리가 가진 선택지는 욕망하는 결과를 고집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책은 주장한다.
1969년생 맥커너히는 사실 법대생이었다. 학부 2학년 시절, 로스쿨을 졸업하면 스물여섯이란 걸 깨달았다. ‘여생을 준비하다 20대를 보내고 싶진 않다’고 그는 다짐했다. 마침 어떤 탈출구처럼 그는 단편소설을 쓰곤 했는데 친구에게 보여주니 “너는 정말 좋은 이야기꾼”이라며 필름스쿨 진학을 권했다. 그렇게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맡겨진 배역은 별 볼 일 없었고 오디션 기회는 별 따기였다. 1992년 첫 영화 ‘멍하고 혼돈스러운’으로 겨우 데뷔한 그는 촬영 이틀 뒤 ‘인생 목표 10가지’를 종이에 적었다.
10개의 희망 사항엔 ‘아버지 되기’ ‘내 최선의 자아를 추구하기’와 함께 ‘오스카 남우주연상 수상하기’가 들어 있었다.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다. 정신을 차리니 헐리우드 스타였지만 원하던 배우상과 거리가 먼 ‘로맨틱 가이’로 세인들은 기억했다. 그는 출연료 1450만 달러를 약속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거절하면서까지 장장 2년을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그리고 결국 몸에서 체중 14.5kg를 덜어내며 혹독하게 연기에 임한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에이즈 말기환자 역으로 결국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손에 거머쥔다. 쪽지에 ‘인생 목표’를 쓴지 정확히 22년 만의 일이었다.
맥커너히는 돌아보며 쓴다. 우리는 “안 돼”라는 말을 익숙하게 듣지만 자신이 원하는 욕망을 고집하고, 또 그것을 얻기 위해 새로운 쪽으로 방향을 틀면 언젠가는 눈앞에 ‘그린 라이트’가 켜진다고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하는 모든 일은 계획의 일부다. 때로 그 계획은 의도한 대로 전개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린 라이트는 방향을 틀어서라도 나아가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성취라고 맥커너히는 말한다.
“일단 그게 검정색이라는 걸 알고 나면, 그 검정색이 어둠에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 “정상급 저격수는 표적을 겨냥하지 않는다. 표적 너머를 겨냥한다. 불멸의 결승선을 설정하라. 지붕은 인간이 만든 것이다”란 문장은 겉멋이 아닌 심연의 고백이다.
책은 유쾌한 에피소드로 큭큭 웃음을 준다. ‘같은 배우자’와 2번 이혼하고 3번 결혼한 맥커너히의 부모 이야기, 배우 초기 “내가 곧 그 역할이다”라고 자만하며 대본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가 촬영 직전 확인한 대본에 스페인어 독백이 무려 ‘4장’이었다는 이야기, 12세 이하 축구 리그에서 레드카드를 가장 많이 받았는데 그때 포지션이 골키퍼였다는 이야기는 맥커너히란 배우의 유쾌한 성격을 일러준다.
“나는 로데오 같은 과정을 거치며 삶의 흉터를 몇 개 얻었다. 내 로데오 솜씨는 좋을 때도 있었고 썩 좋지 않을 때도 있었다.” 자신의 삶을 이처럼 압축한 그는 이 책을 작전교본(playbook)으로 정의 내린다. 한 배우가 남긴 책장을 덮으면 어떤 계시처럼 자기 안의 그린 라이트가 켜지는 길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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