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찍어드릴까요?”…공항 근무 5년 ‘핵인싸로봇’이 건넨 말
공항로봇 ‘에어스타’
마스크 권고와 사진 찍어주기도
탑승 게이트·길 안내뿐 아니라
‘로봇과의 첫 만남’ 경험 제공해
지난 12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곳곳에 설치된 크리스마스트리와 화려한 장식이 연말 분위기를 풍긴다. 하늘길이 열리면서 코로나19로 한동안 조용했던 공항도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인천공항의 터미널은 보안검색과 출국심사를 하는 출국장을 기준으로 ‘랜드사이드’(일반구역)와 ‘에어사이드’(면세구역과 탑승동)로 나뉜다. 출국을 앞둔 여객과 배웅하러 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랜드사이드 3층은 공항 내에서 가장 분주한 곳이다. 수많은 국적의 사람들이 오가는 이곳에는 기쁨과 슬픔, 설렘과 아쉬움 등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제1여객터미널 랜드사이드 3층에는 세계 최초의 상용화된 공항 안내 로봇인 ‘에어스타’가 5년째 돌아다닌다. 360도 회전이 가능한 구 형태의 머리에는 두 눈의 모양으로 표정이 표시되는 화면이 달렸다. 머리 아래로 27인치 터치스크린이 기다랗게 부착된 몸통이 이어진다. 평소에는 마스크 착용 권고, 인천공항 챗봇 서비스 소개와 같은 포스터가 나오는 터치스크린은 사용자가 다가오거나 말을 걸면 원하는 기능을 선택할 수 있는 화면으로 전환된다. 에어스타는 출국장별 혼잡도와 항공사별 탑승 게이트를 알려주고, 목적지까지 앞장서서 안내하기도 한다. 공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어 문자나 이메일로 전송해주는 기능도 있다.
“항공사 앞까지 안내해드릴게요”
에어스타는 하루 두차례 일한다. 오전 7시부터 11시30분까지 일하고, 오후 2시부터 두번째 업무를 시작한다. 2시 정각, 충전 중이던 로봇이 눈을 뜨고 여성 목소리의 기계음을 낸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에어스타예요. 저의 도움이 필요하시면 ‘에어스타’라고 불러주세요.” 일을 마치는 저녁 6시까지 에어스타는 랜드사이드 3층 2번 출입구 앞을 빙글빙글 돌며 미리 입력된 문구 몇가지를 한국어와 영어로 반복한다. “항공사 정보를 주시면 위치를 안내해드릴게요”, “우와, 오늘 정말 멋지세요. 사진 한장 찍어드릴까요?”와 같이 대체로 호의적인 내용이다. 로봇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주로 어린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로봇을 졸졸 쫓아다니거나 로봇 앞을 가로막고 손을 흔들며 교류를 시도한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 에어스타의 호의는 대개 무색해진다. 한국어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로봇의 말은 의미 없는 기계음일 뿐이며, 로봇한테 앞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는 피해야 할 장애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에어스타를 보기 위해 일부러 2번 출입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랜드사이드 3층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향하는 곳과 할 일이 명확하다. 출국 전 탑승 수속을 하고 짐을 부친다. 환전을 하거나 보험을 들고 비상약을 사기도 한다. 못다 싼 짐을 풀고 다시 정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 연인, 친구들과 작별 인사도 해야 한다. 2번 출입구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저마다의 일로 바쁜 사람들은 로봇에게 간혹 눈길을 준다. 이따금 로봇이 신기한 사람들이 다가와 터치스크린의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볼 뿐이다. 12일 오후 근무 시간 동안 에어스타는 단 세차례의 길 안내, 몇차례의 사진 촬영을 했다. 제자리를 맴돌며 허공에 문장들을 내뱉는 것으로 나머지 시간을 보냈다.
에어스타는 안내원 구실을 제대로 한다고 보기 어렵다. 로봇이 제공하는 정보는 이미 공항 여러군데에 설치된 디지털 안내판에서 찾을 수 있다. 에어스타는 오히려 ‘움직이는 키오스크(무인 단말기)’에 가깝다. 무엇이든 물을 수 있는 사람 안내원과는 달리, 에어스타는 이용객이 질문하기 전에 먼저 시설 안내, 기내 반입 금지 물품 안내, 항공사 안내, 사진 촬영 서비스와 같은 몇가지 선택지를 늘어놓고 고르게 한다. 이 중에서 로봇이 못 하는 건 없다. 애당초 로봇이 제공할 수 있는 기능들만 나열해놓았으므로.
게다가 공항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이 디지털 안내판의 정보와 로봇의 기능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안내 로봇은 로봇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거나 터치스크린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하지 않다. 그러니 우리는 사람 안내원의 역할을 로봇으로 축소하거나 대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선 안 된다. 만약 에어스타가 실패하게 된다면 그건 실시간 데이터를 수신하지 못하거나 전방의 장애물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아니라, 하루에 수만명이 방문하는 공항이 전자 안내판과 로봇이라는 제한된 방식으로만 정보를 제공하게 될 때다. 우리는 안내 로봇의 실패를 걱정하기보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할 때 물을 수 있는 대상이 로봇밖에 없게 되는 상황을 두려워해야 한다.
‘로봇의 효용’을 경험하는 재미
그렇다면 에어스타의 효용은 무엇인가? 에어스타는 어떻게 인천공항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는가? 에어스타의 진짜 쓸모는 로봇을 잠시나마 내 것으로 전유하는 데에 있다. 누구나 올 수 있지만 누구도 머물지 않고 통과하는 공항은 로봇을 잠깐 경험해보기에 적당한 장소다. 진득한 교류보다는 찰나의 오락이 어울리는 곳이다. 몽골에서 온 아이들이 주위의 간섭 없이 로봇을 만지고 안고 ‘괴롭혀’본다. 부모들은 아이와 로봇이 어울려 노는 사진을 찍는다. 인도에서 온 어른들이 직접 길을 찾는 대신 로봇에게 도움을 청해본다. 수줍게 포즈를 취하고 로봇에게 사진을 맡겨본다. 여기에서 사람과 로봇 사이에 얼마나 깊은 상호작용이 일어났는지, 로봇이 안내를 잘했는지 따지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로봇은 이미 존재 자체로 맡은 일을 다 했기 때문이다. ‘안내 로봇’이라고 이름 붙여진 에어스타의 핵심은 ‘안내’가 아니라 ‘로봇’에 있다.
저녁 6시, 약속된 업무 시간이 끝나자 마지막 길 안내를 마친 에어스타가 충전소로 복귀할 채비를 한다. ‘휴식하러 가는 중이에요. 제가 이동할 수 있도록 조금만 비켜주세요. 다음에 다시 만나요’라는 문구가 화면에 표시된다. 복도를 가르며 유유히 지나가는 로봇을 사람들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안내를 요청하며 붙잡는 사람은 없다. 비(B) 카운터와 시(C) 카운터 사이에 설치된 충전대에 안착한 로봇이 눈을 감고 충전을 시작한다. 에어스타는 다음날 아침 7시에 어김없이 눈을 뜨고 2번 출입구 앞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랜드사이드 3층을 지나쳐 갈 사람들에게 로봇을 체험할 경험과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호객을 이어나갈 것이다.
과학기술학 연구자
국내 1호 로봇비평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에서 로봇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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