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발소리도 반가워"…어르신 안부 묻는 우유 배달
오늘(23일) 밀착카메라는 문 앞에 놓인 한 팩의 우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잘 지내고 계신지 알려주는 우유인데요.
집집마다 소복한 우유를, 권민재 기자가 따라가봤습니다.
[기자]
모두가 잠든 새벽 3시 작은 차도 들어가기 힘든 언덕길을 오르고 또 오릅니다.
우유가 도착하는 곳은 모두 혼자 사는 노인들의 집 앞입니다.
한 개 남아있으면 주의, 두 개 이상 쌓이면 위험.
매일 이 시간에 도착하는 배달원은 남아있는 우유 갯수로 혼자 살고 있는 어르신의 안부를 확인합니다.
오늘 주머니는 텅 비었으니 걱정은 덜었습니다.
[김태용/우유 대리점주 : 얼마 전에 우유를 안 빼셔가지고 연락해서 (돌아가신 걸) 찾아내는 경우가… 우유도 안 빠지고 강아지도 잘 안 짖더라고. 그래서 좀 이상하다…]
혼자 산지 올해로 10년 차, 박인애 할머니의 집엔 시계 소리만 가득합니다.
할머니는 우유가 배달되는 새벽을 가장 기다립니다.
[박인애 (85세) / 서울 금호동) : (잘 때) 여기 이렇게 머리를 두면 다 소리가 나. 그럼 참 고맙다. 이제 우유 왔다…그 대신 내가 꼭 박카스를 넣어줘. 먹고 가라고…]
강원도 삼척의 한 빨래방에선 겨울 이불 빨래가 한창입니다.
세탁을 마친 이불이 우유와 함께 어르신의 안부를 묻습니다.
지금 막 빨래가 끝난 이 이불은 삼척 도계리에서 홀로 사는 70대 할아버지의 이불입니다.
이쪽을 보시면 헷갈리지 않도록 직접 박음질해 달아 놓은 이름표도 붙어 있고요.
여기엔 어르신들의 성함과 주소가 적힌 현황판도 있습니다.
이 이불들은 올겨울 어르신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책임질 겁니다.
반갑게 문을 여는 건 꼭 이불과 우유 때문만은 아닙니다.
칼바람만 부는 겨울, 유독 그리운 건 '사람'의 따뜻함입니다.
[김순옥 (84세) / 강원 삼척시 도계읍 : 나가면 개하고 '니 뭐 밥 먹었나' 뭐 '짖지 마라, 이쁘다' 하고…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누렁이.]
[이옥이 (76세) / 강원 삼척시 도계읍 : {'우유 왔어요' 소리 들리면 어떠세요?} 반갑지요. 얼른 나가지. 뭐 뛰어나가지. 맨발 벗고 나온다고 막 뭐라고 하더만은.]
지난해 홀로 숨진 독거노인은 1605명입니다.
지자체에 노인 전담 부서가 있지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매일매일 상황을 확인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서울에서 시작된 우유배달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며, 이 여백을 메웠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지자체의 지원 없이 후원으로만 운영됩니다.
매일 오던 우유가 이제 일주일에 세 번으로 줄어도 어르신들은 고맙다는 말만 거듭합니다.
[이암자/서울 옥수동 : 저게 의지가 된다는 게, 저것만이 통할 수 있잖아요. 넣는 사람도 그렇고…]
한 철에 한 번 찾아오는 이불 빨래. 아침 배달되는 우유 하나.
이런 보살핌으로 추운 겨울이 조금은 따뜻해졌을지 모릅니다.
이분들에게 어떤 울타리가 필요할지, 우리 사회가 고민해 봐야 할 때입니다.
(작가 : 유승민 / VJ : 김원섭 / 인턴기자 : 강석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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