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위기’의 실체와 결혼 꺼리는 사회의 본질 [정지혜의 빨간약]
여간해서는 뾰족한 답을 찾을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쟁 중 하나, 저출생 현상이다. 답을 찾기 힘든 건 실제로 답이 없어서가 아닐까. 저출생은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기 때문이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 수명이 늘어났고, 선진국이 되어갈수록 출생률은 떨어지는 것에서 보듯 저출산고령화는 고도화 된 사회가 누리는 축복의 이면인지 모른다. 골드만삭스가 최근 발표한 ‘2075 글로벌 경제 전망’에서도 꾸준히 인구가 증가하는 건 개발도상국들이며, 이들의 경제 규모가 곧 선진국과 자리를 바꿀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인간 역시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환경의 변화에 맞게 적응하며 생존율을 높이려 한다. 고도로 발달된 사회는 그 과정에서 이미 너무 많은 자원을 써버렸으며 남은 것을 나눠먹어야 하니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인구 수준으로 정상화되려 한다. 지속 가능한 성장(ESG)에 대한 고민이 부족할수록, 얼마 없는 자원마저 일부가 너무 많이 가져가버려 분배 격차가 심할수록 보통 사람들이 재생산을 극도로 자제하려는 본능은 심화된다.
여기에 가부장 중심 사회 문화가 더해지면 상황은 최악에 이르게 된다. 가부장제 체제에서 여성은 가정을 꾸림으로써 잃을 것이 너무 많아지니 결혼을 ‘안’ 하고 싶어한다. 남성은 가장 노릇을 번듯이 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데, 경제 구조상 남성 가부장이 일가족을 먹여살리기 힘들어졌으니 결혼을 ‘못’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모든 조건에 딱 들어맞는 것이 한국 사회다. 세계 꼴찌 수준의 합계출산율(2022년 현재 0.7명대)은 이상하거나 놀라운 결과가 절대 아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저출산 극복에 약 380조원을 쏟아붓고도 개선이 없었던 것은 이런 환경을 근본적으로 건드리는 시도가 병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산 장려를 위한 제도나 금전적 당근책 등은 위 문제를 어떤 것도 나아지게 하지 못한다. 정책과 지원 제도를 들먹이며 무언가 하긴 했다는 표시를 내는 데만 제격일 따름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최근 새삼스럽게도 “임신·출신·육아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을 해결 방안인 양 제시한 것은 그런 점에서 아쉽다. 임출육 당사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은 하락폭을 완화하는 정도의 효과에 그칠뿐 ‘출산율 반등’이라는 반전을 일으키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여성도 남성도 서로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이제 진짜 질문을 해 보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말 지원금이고 제도인가? 청년들이 ‘왜’ 결혼과 출산에 거리를 두려 하는지 진짜 원인을 알려고 하지 않는 태도에서 젊은이들은 가장 큰 답답함을 느낀다. 쉽게 말해 당사자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성세대 자신의 관점에 여전히 갇혀있는 듯하다.
지금의 청춘들이 내가 만나는 이성을 너무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돈이 없고 아이 키울 걱정 때문에 결혼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렇게 이유를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는 부차적이다. 어쩌면 그럴듯한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불편한 진실은 현재 여성들이 원하는 남성도, 남성들이 원하는 여성도 현실에서는 찾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것들’이 까다롭게 재기만 하고, 눈이 높아져서 그렇다는 식의 판단은 인정하기 힘들다. 이들은 ‘모든 것을 갖춘 이성’을 고르려는 게 아니다. 삶이란 완벽한 선택보다는 많은 것을 끝없이 타협하는 과정임을 대부분 안다. 문제는 타협이 힘든 기준이 나타난 것인데, 바로 성 인지 감수성이다. 성 인지 감수성은 성역할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가지고 성차별적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성찰하는 능력, 성별간 불균형을 이해하고 일상 속 성차별을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의 성별 고정관념에 대한 인식차는 20대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이들이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들어지는 이유다. 현실적으로 존속이 힘들어진 가부장제 신화로부터 여성들은 빠르게 벗어나고 있는데 남성들의 시선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성평등 시대에는 무거운 맨박스를 벗는 대신 가부장 권력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가부장적 여성성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해제되고 있는 데 비해 권력 우위에 있는 가부장적 남성성을 놓기는 쉽지 않다. 남성들은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것이 관건이다. 오프라인에서 누리기 힘들어진 가부장적 남성성을 온라인에서 여성 혐오적 사이버 폭력 행위를 통해 충족하려는 경향도 그래서 나타난다.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한국 여성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기회비용이 너무 큰데 한국 남성은 그것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인 배우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여성 입장에서 “할 이유가 없는 나쁜 거래(bad deal)”라고 촌철살인했다. 그런데 이건 반대로 남성 입장에서는 성평등 시대를 향해 너무 빨리 가고 있는 여성을 매력적이라 느끼기 힘들다는 의미도 된다. 어쨌든 자신의 속도와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이때 정책과 문화를 만들어가는 정치, 사회, 기업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가야 할 바람직한 길은 성불평등한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성평등한 미래라는 합의 아래 여성과 남성의 인식차를 좁힐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했던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하는 건 성평등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후퇴다. 동시에 이는 앞으로 나아가는 여성의 뒷덜미를 잡아챔으로써 남성과 여성의 간극을 좁히려는 난폭하고 낡아빠진 시도다. 지금 필요한 건 정확히 정반대의 움직임이다. 남성이 앞으로 전진하는 속도를 더 낼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할 판에 또 다시 여자 탓만 하는 사회의 한심한 작태로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
◆비혼 여성 지원이 출생률을 올리는 이유
지난 8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관하고 권인숙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이 좌장을 맡은 ‘저출생·인구절벽대응 국회포럼 정책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다. 이 토론회의 키워드는 ‘가족 다양성’이었다. 가부장제 탈피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므로, 다양한 가족 공동체를 지원하고 장려하는 것은 새로운 환경에서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중요하게 추진해야 할 정책 과제다.
결혼과 출산을 세트처럼 보는 관념은 확실히 구시대적이다. 특히나 ‘정상 가족’ 선망이 강한 우리 사회는 비혼 여성·동거 커플의 출산이나 동성 커플의 입양 등을 사실상 제한함으로써 인구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가족이라는 말로 뭉뚱그리는 국가의 초점을 예리하게 보면 ‘남성 가부장 만들기’에 바늘이 향해 있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가 대표적이다. 남성 1명당 서포트 역할을 할 여성 1명이 필요하며, 이런 ‘정상’ 가족의 재생산만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가장이 된 남성이라야 사회적으로 비로소 인정과 안정감을 획득하는 묘한 분위기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인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족 공동체가 국가 역할의 상당 부분을 분담하는 형태”라고 했다. 일부일처제를 통해 모든 남성이 여성과 가정을 이룸으로써 국가는 복지 비용을 아끼고, 미혼 남성의 증가로 부담해야 할 추가적인 사회적 비용과 위기 관리에서도 한결 편해질 수 있다.
정말 인구절벽 문제가 심각하고, 저출생을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하고 싶다면 여성의 비혼 출산이나 입양 등을 오히려 적극 지원해야 마땅하다. 한국 남성의 국제 결혼과 한국 여성의 국제 결혼을 보는 눈이 다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남성과 결혼하지 않겠다는 여성, 국제 결혼 하는 여성, 비혼 출산 하겠다는 여성을 이 사회는 유독 곱게 보지 않는다.
지난 달 말 LG유플러스가 기업 최초로 ‘비혼 지원금’ 제도를 도입한 것에 대한 남녀 반응도 온도차가 컸다. 비혼을 선언한 직원에게 결혼 시 주는 복지제도를 똑같이 제공하는 것인데, 성별 관계 없이 같은 혜택을 받는 것임에도 여성들은 환영하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던 데 비해 남성들은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비혼 출산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결혼이 각 성별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출생 위기에 비혼 여성 지원이 웬말이냐고 생각하는 수준으로는 출생률을 끌어올릴 수 없다. 결혼 적령기 여성의 상당수가 실제로 비혼 출산을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고 한다. 남자는 됐고, 아이는 낳고 싶다고. 적어도 여성을 후려치기 해서 가부장제로 들어가게 하려는 구태의연한 시도보다는 이쪽이 출생률 제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남성 중심 사회를 포기 못하는 나라에서는 심히 고민이 될 것이다. 이런 여성들을 응징하고 싶어질 게 뻔하고, 이런 여성들이 거부한 남성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머리가 아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는 좋은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인구절벽이라느니 저출산 위기라느니 하는 말로 감췄던 남성 가부장 만들기 프로젝트의 실체를 확인할 절호의 기회다. ‘저출생’이라는 말에 어쩐지 여성들이 훨씬 더 건조한 반응을 보여온 것도 그 실체와 무관치 않을지 모른다. 저출생은 누구의 위기이며, 누가 변해야 하는가.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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