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메로스·헬렌 켈러·스타워즈·듄…시각장애를 보는 편향적 시각에 대한 반격[책과 삶]
거기 눈을 심어라
M 리오나 고댕 지음·오숙은 옮김
반비 | 420쪽 | 2만원
시각장애인에게 기대되는 이미지는 대개 두 가지다. 하나는 남달리 순수하거나 초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이상화되는 것, 다른 하나는 서투르거나 부주의한 사람으로 측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시각장애인인 헬렌 켈러가 여성주의자이자 격렬한 사회주의 운동가였다는 점, 그리고 섹슈얼리티를 가진 존재로서의 자신을 알리려 했다는 사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오로지 ‘영감 포르노’, 즉 비장애인에게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씩씩한 개인의 힘을 믿게 만드는 식의 이야기로만 소비되어 왔을 뿐이다.
신간 <거기 눈을 심어라>는 이처럼 만연한 시각 중심 문화를 탐구하는 책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작가 겸 공연예술가인 저자 M 리오나 고댕은 지난 3000년간의 철학과 문학, 대중문화 콘텐츠가 시각장애(인)를 어떻게 재현해왔는지 살핀다. 고대 그리스 시인이자 시각장애인이었던 호메로스, ‘눈먼 시인’ 존 밀턴, 헬렌 켈러,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실존 인물을 비롯해 <스타워즈>나 <듄>처럼 시각장애인을 등장시킨 작품까지 저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낸다. 감각기관 중 눈을 가장 우선시하고 시각만을 지식 생산의 근거로 삼는 편향적인 시각 중심 문화를 통찰하고 반격한다.
‘눈멂의 역사에 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라는 부제처럼 책 곳곳에 등장하는 저자 개인의 이야기는 설득력을 더한다. 책은 고댕이 열 살 무렵 엄마의 손을 잡고 안과를 전전하다 망막이영양증이라는 진단을 받는 때부터 시작된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시력을 잃어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눈멂’은 단지 하나의 주제에 그치지 않는다. ‘눈멂’은 하나의 관점이다”라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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