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남의 땅에 건물 지어도 처벌 못한다” 첫 판단
“토지 변형 없어 재물손괴죄 아냐”
‘민사 책임만’ 판단 대법원도 유지
남의 땅에 무단으로 건물을 지었더라도 재물손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경기 파주시에서 논 일부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다. 땅 소유주는 B씨 등 20여명으로, A씨는 지분이 없었다. A씨는 이 땅에 건물을 지었다가 소송을 당해 철거했는데 이후 다시 새 건물을 지었다. 검찰은 재물손괴 혐의를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건물을 신축한 것은 토지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재물손괴로 본 것이다.
그러나 2심은 무죄로 판단을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건물 신축공사 과정에서 토지가 손괴됐다거나 형상이 변경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A씨는 토지 자체에 굴착이나 쓰레기 매립 등 유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A씨의 행위로 토지 매매에 법률상 장애가 생긴 것도 아니고, 논의 ‘효용을 해하는 행위’로 볼 수 있는 벼 재배 등을 어렵게 하는 상황이 초래됐다고 볼 수도 없다고 봤다. ‘A씨가 민사적 책임을 지면 된다’고도 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본래의 용법에 따라 무단으로 사용·수익하는 행위는 재물손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의 행위는 토지에 건물을 지어 소유자로 하여금 토지 효용을 누리지 못하게 한 것일 뿐 토지의 효용을 해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남의 재물을 마치 자기 소유인 것처럼 이용하거나 처분하는 절도·강도·사기 같은 범죄와 달리, 재물손괴죄는 다른 사람의 재물을 부수거나 숨기는 등 방법으로 효용을 해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다. A씨의 경우 타인 소유물을 무단으로 사용했지만, 본래 용도에 따른 것이라는어서 재물손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상 재물이 토지인 경우 토지 소유자에 대한 이용방해 행위는 재물손괴죄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사례”라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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