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m 이상 어린이집 원정 통학? ‘신도시맘’은 웁니다
■ 20km 이상 어린이집 원정 통학? '신도시맘'은 웁니다
아침 8시 반부터 9시 10분 사이. 대구 달성군 구지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밀집된 곳. 어린이집과 유치원 통학차량들이 시간차를 두고 속속 도착해 어린이들을 태워갑니다.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이곳 구지면을 찾아오는 차량들은 대부분 최소 편도 30분 이상 걸리는 지역에서 옵니다. '테크노폴리스'라고 불리는 대구 달성군 유가읍과 현풍읍이 그나마 가깝습니다. 달성군은 면적이 상당히 넓은 편이라, 같은 달성군이면서도 왕복 1시간이 걸리는 현풍읍, 논공읍, 심지어 경남 창녕군 등에서도 차량이 오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경남 창녕에 있는 한 어린이집을 다니는 5살 쌍둥이 자매를 만났습니다. 20km가 넘는 거리, 편도로만 30분 이상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 어린이집에 다니는 달성군 구지면 어린이만 20명이 넘습니다. 쌍둥이 자매 어머니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 올해 아이들이 5세가 되었는데, 구지면 어린이집에서 5세를 받아주는 데가 없었다. 전부 대기해야 하고, 주변 유치원에도 다 넣어놨는데 대기로만 30번대, 40번대였다. 경남 창녕 어린이집 원장님께 겨우 사정을 해 다닐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원정 통학'을 다니는 걸까? 구지면 학부모들은 어린이집 부족이 원인이라고 말합니다. 달성군 구지면은 국가산단 조성에 따른 기업 입주와 대규모 택지 개발로 지난 2018년 1만 명에서 최근 인구가 2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신혼부부가 많다 보니 영유아 수도 2년 만에 7백여 명에서 천7백여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구지면 어린이집도 같은 기간 9곳(정원 421명)에서 15곳(정원 742명)으로 늘었지만, 현재 구지면 어린이집 정원 충족률은 90%를 넘는 상황. 특히 만 4살 아이들이 보육하는 어린이집이 단 한 곳밖에 없어 아이들이 만4살이 되면 대부분 구지면 외부기관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구지면 어린이집에 남은 빈 자리도 대부분 만 0~3살에 해당합니다. 유치원 역시 2곳밖에 없지만, 이마저도 맞벌이 부모들은 방학이 긴 유치원보다 어린이집을 더 필요로 하고 있었습니다.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구지맘'은 '멘붕'
이에 대해 달성군청은 "구지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결원이 있어 영유아들을 모집하고 있다"며 "보육시설 부족만을 이유로 논공읍과 창녕군으로 원정 등원을 한다는 부분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리고 왕복 30분은 걸리는 '테크노폴리스 어린이집에 자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현실은 어떨까요? 구지면 학부모들이 가입한 '구지맘'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어린이집 관련 글 가운데 일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어린이집 가기 하늘의 별따기입니다ㅠㅠ", "구지도 출산하자마자 바로 입소대기 넣으세요~"
"구지는 어린이집이고 유치원이고 박터지는 곳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자리가 없어서 논공, 창녕으로 보내시는 분들도 많아요.", "여긴 입소 전쟁이라 논공, 창녕까지 보내요ㅠㅠㅠ"
"모두 멘붕 한번씩 옵니다. 1년을 대구로 왕복 50km 다녔었네요. 등하원 100km 다니기도."
"구지로 이사왔는데 젊은 분들이 많으셔서 그런지 어린이집 대기번호가 한참 뒷순번이네요. 몇개월있으면 복직인데 막막합니다ㅠㅠ" "구지 참 살기 좋은데 애들 돌봄에 공백이 많은 게 참 아쉬워요."
게다가 학부모들은 달성군청이 결원이 있다며 안내한 어린이집에 일일이 문의한 결과, "일단 대기를 걸어두면 검토해보겠지만 바로 입소는 불가능하다", "우리 원에 만 0세 자리 있다고 누가 그래요?", "생일이 빠르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등의 대답을 받았다며, 실제 입소 가능한 곳은 거의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보육기관 입소를 앞두고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구지면 학부모들은 어디서든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달성군청은 다른 지역 보육기관을 택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보육기관 부족'때문이 아니라 일부 엄마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한 거라며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겁니다.
■ 전체 영유아 인구 감소로 인가 못해… "그동안 크는 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어린이집을 새롭게 인가하거나 정원을 늘리는 건, 매년 2월 보육수급계획 수립 때 결정됩니다. 매년 2월 기준 달성군 구지면의 영유아 수(만0~5살)는 지난 2020년750명에서 2021년 1,232명, 2022년 1,711명으로 급증했습니다. 나이를 구분해서봐도, 만0-2세 수는 381명→817명, 만3-5세 수는 369명→894명으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달성군청은 지난 2020년에만 달성군 구지면과 테크노폴리스(유가읍, 현풍읍)에 한해서 어린이집 인가를 내줬습니다.하지만 영유아 수가 폭증하던 지난해와 올해는 달성군 내 어느 읍면에서도 추가 인가를 내주지 않았습니다. 달성군 전체 지역을 놓고 보면, 영유아 수가 만 8천여 명에서 만 5천여 명(2020년→2022년)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 타 읍면의 결원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달성군청은 "구지면은 만 4세를 정점으로 영유아 인구 수가 감소되는 실정으로, 보육시설을 추가 확충하면 과잉공급으로 장차 어린이집의 폐원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어 "이를 바탕으로 구지면 지역의 신규 인가를 제한한 사항"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 사이 신규 아파트 입주민들이 쏟아져 들어왔던 달성군 구지면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보낼 어린이집이 없어 발을 동동 굴러야 했습니다. 추가 인가가 없다면, 앞으로도 몇년은 더 반복될 현상입니다. 어린이집 부족 문제가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달성군 구지면 어린이집 부족 문제로 달성군청과 설명회를 가졌던 학부모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달성군에서는 군 전체를 보기 때문에. 계속 아이들이 줄고 있다. 수치상 이야기만 하고. (갈 곳이 없는) 저희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고, 몇년 후 (아이들 줄어든다) 아무리 이야기하셔도, 그동안 크는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대책이 없는 상황이에요 . 논공읍 비어있으니까 원정 등원을 가라. 정 안되면 가정보육 하시라 이런 말도 하고. 구지면에 대부분 일때문에 들어오는데, 막상 애를 키우려고 보니까 환경이 안 되는 거죠. 막막하죠. 답답하고. 보육의 질을 따질 수가 없어요. 자리 비었다면 그냥 들여보내야 하는 실정이에요."
-대구 달성군 구지면 학부모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내건 대구 달성군. 인구 늘리기에 사활을 거는 것도 좋지만, 이미 이주해 온 사람들이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보육 여건을 개선해달라는 호소에 귀 기울이는 게 우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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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현 기자 (shinjou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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