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집권여당의 자화상
민심보다 '윤심'에 목매는 당 이미지
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수평적이어야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영국 보수당은 200년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보수당이라는 이름도 1830년대 들어 사용하기 시작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영국 보수당이 모든 점에서 모범을 보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200년 가까운 긴 세월 동안 하나의 정당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한 점은 존중할 만하다. 영국 보수당과 비교하면 한국의 집권여당 국민의힘은 200년 ‘영속 정당’은커녕 5년 권력인 대통령만 바라보는 ‘2중대 정당’ 신세다. 이번에 당대표 경선 룰을 바꾼 과정을 보면 그렇다.
국민의힘 당헌은 ‘당과 대통령의 관계’(제8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해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진다.’ 한마디로 대통령은 당원의 한 사람이며 대통령의 국정비전도 결국 당의 정강·정책에서 나온다는 원칙의 천명이다. 당이 대통령보다 우위라고 속단할 수 없지만, 그 아래는 분명 아니며, 적어도 동등한 관계로 설정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할 수 없다’는 당헌 제7조도 이런 원칙의 연장선상에 있다. 대통령이 제왕적 총재로 군림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당과 대통령이 협력적 수평관계라는 선언적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 국민의힘은 당헌이 설계한 당의 모습과 많이 다르다. 탄핵 이후 전국적인 선거에서 4번 연달아 패배한 국민의힘은 외부에서 대선후보를 수혈해 겨우 집권여당이 됐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이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했다는 얘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빚진 게 없으니 당이 저자세인 건 어쩔 수 없다 치자. 하지만 집권여당이 대통령 아래로 일사불란하게 줄 서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국민의힘은 지금까지 당원투표 70%와 국민여론조사 30%를 반영해 대표를 뽑았다. 이걸 전당대회를 불과 석 달 앞두고 ‘당원투표 100%’로 바꿨다. 당원이 당의 의사결정 중심에 서야 한다는 게 개정 명분이다. 20~40대가 33%에 이를 정도로 당원 구성 비율이 바뀌고 책임당원 수가 100만 명에 육박하는 만큼 룰 개정은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도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여론조사를 해도 국민의힘 지지자와 무당층만 대상이고, 야당 지지자는 제외하는 만큼 역선택 가능성은 크지 않다. 친윤계 후보들이 여론조사에서 열세에 놓이자 룰을 바꿨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당헌 개정이 내부 토론과 숙의를 거친 것도 아니다. 윤 대통령이 사석에서 “당원투표 100%가 낫지 않느냐”고 언급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처음에는 ‘8 대 2’ 혹은 ‘9 대 1’ 정도로 거론됐던 당원투표·여론조사 비율이 의총 토론 한번 없이 ‘10 대 0’으로 직행했다.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떠난 자리를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대표로 채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국민 눈에 비치는 집권여당은 민의 대신 ‘윤심(尹心)’에 목매는 줏대 없는 정당이다. 당 지도부보다 대통령 뜻을 전하는 ‘윤핵관’ 발언에 힘이 더 실리고, 윤심을 등에 업고 ‘김장연대’니 하면서 어떻게든 당권을 얻으려는 필사적 몸부림뿐이다.
정치적 수사로 당정일체란 말을 하지만, 본질적으로 정당의 생명은 대통령보다 길다. 집권여당이 대통령에게 민심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도, 대통령실과 야당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것도 결국은 정권 재창출에 목적이 있다. 스스로 홀로서기하지 못한 채 용산에 기댈 생각만 하거나, 대통령 말이라면 바람보다 빨리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정당이라면 미래는 없다. 대통령에게도 짐이 될 뿐이다.
김영화 정치부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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