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바둑 2위, AI 치팅 썼나… “직 걸고 붙자” 양딩신의 분노

이홍렬 바둑전문기자 2022. 12. 2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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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딩신, 리쉬안하오에 기사직 건 결투신청

“기사직을 걸고 붙자”는 양딩신(24)의 도전에 리쉬안하오(27)는 일체 반응하지 않고 있다. 중국 바둑협회 또한 입장 정리가 안된 채 침묵을 지키는 중이다. 연말 중국 바둑계를 들끓게 만든 AI(인공지능) 치팅 의혹의 23일 현재 상황이다. 현재 중국 랭킹은 리쉬안하오가 2위, 양딩신은 5위다.

춘란배 결승에 오른 리쉬안하오. 거함 신진서를 완벽하게 눌러 중국 기사들 사이에서 치팅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21일 벌어진 신진서 대 리쉬안하오 간의 제14회 춘란배 준결승전이 발단이 됐다. 인터넷 중계 채팅장에서 양딩신은 “나는 리쉬안하오에 비하면 몇 십단의 실력 차가 난다. 몇 년간 홀로 훈련하면서 우리 같은 하수 쓰레기 바둑이 그의 발전을 정체(停滯)시켜 부끄럽다. 신진서는 이제서야 신(神)을 영접하다니 행운아다”고 썼다. 노골적인 반어법(反語法)식 비아냥이었다.

양딩신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날 밤 SNS에 글을 올려 공식적으로 도발했다. “리쉬안하오 당신과 20번기를 제안한다. 대신 조건이 있다. 화장실에 가지 않고, 대국장에 모든 신호를 차단하며, 시간 제한 없이 하루 한 판씩만 두어 기보를 공개한 뒤 만인의 평가를 받도록 하자.” 양딩신은 이어 “내가 만약 패한다면 LG배 결승이 끝나는대로 은퇴하겠다”는 폭탄 선언을 추가했다.

신진서는 리쉬안하오의 경이적 인공지능 일치율을 견디지 못하고 춘란배 준결승서 탈락했다.

양딩신의 이 같은 행동은 리쉬안하오의 승리들이 AI 치팅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자타 공인의 세계 1인자인 신진서는 리쉬안하오와의 이날 준결승서 변변한 기회 한 번 잡지 못한 채 끌려다니다 완패했다. 한 번도 볼 수 없던 광경이었다. TV와 인터넷 해설자들은 “리쉬안하오의 오늘 바둑은 인간의 솜씨가 아니라고 느껴질 정도로 완벽했다”고 입을 모았다.

양딩신의 폭탄 선언에 몇몇 동료 프로기사들이 적극 지지를 천명하고 나섰다. 세계 메이저 3회 우승의 천야오예는 리쉬안하오의 바둑에 대해 “거짓되게 두는 바둑(假棋)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스웨, 롄샤오, 구링이 등도 양딩신 편에 섰다. 커제는 “신진서가 리쉬안하오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리쉬안하오가 AI 치팅으로 무장했음을 강조하는 역설 화법이다.

양딩신은 이번 14회 춘란배 결승 진출자인 리쉬안하오에게 기사직을 건 대결을 신청, 주목받고 있다. 대국실 도처에 감시 카메라와 CCTV가 설치돼 있다.

커제(25)는 사실상 반(反) 리쉬안하오 진영의 리더다. 그는 지난해 갑조리그서 리쉬안하오의 인공지능 일치율이 90%대에 이르렀던 날 화장실에 자주 다녀오는 것이 의심스럽다는 발언으로 리쉬안하오를 공격했다. 하지만 몸수색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치팅 증거물이 나오지 않으면서 커제는 일부 팬들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리쉬안하오는 AI에 밝은 기사로 꼽힌다. 신진서가 ‘신공지능’으로 불리듯 리쉬안하오(李軒豪)는 ‘헌공지능’으로 불린다. 단기간의 벼락 상승이 그를 의심하는 근거 중 하나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20위 전후였다가 거의 모든 프로들이 하강하는 나이에 도약 중이다. 갑조리그서는 뭇 강호들을 연파하며 11승 1패로 다승 1위에 나서있다. 이 기간 2개 국내기전 우승과 함께 이번 춘란배에서 생애 첫 국제 메이저대회 결승 진출에 성공한 것.

가장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그가 치팅을 범했느냐, 아니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느냐일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가능성이 있다. 주요 대국서 그가 보여주는 인공 일치율은 경이로울 만큼 높다. 대다수 기사들의 정점인 20대 초반을 무명으로 보내다가 서른을 눈앞에 둔 나이에 대폭발을 이뤘다. 이런 유형의 기사는 손꼽을 만큼 적다. 사람과의 대국이 전무한 채 오직 AI하고만 훈련한 덕으로 돌리기엔 석연치 않은 느낌이 따르는 게 사실이다.

대국장 입장에 앞서 몸수색을 받고 있는 양딩신. 지난해 LG배서 준우승할 때의 사진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리쉬안하오의 ‘혐의’만 논했을 뿐 아무도 치팅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어떤 대국장이건 실내에선 많은 눈들이 지켜본다. 출입구에서 몸수색을 거쳐 입장하면 대국 컴퓨터 부근에 복수의 감시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CCTV는 별도다. 한국의 경우엔 대국자가 화장실에 갈 경우 심판도 따라간다. 이 같은 겹겹의 감시망을 뚫고 치팅을 실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가장 궁금한 것은 양딩신이 제안한 20번기의 성사 여부다. 양딩신은 22일 밤 또 다른 글을 올렸다. “조용히 있으라고 명령을 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LG배 결승을 못 치르게 될 수도 있다. 리쉬안하오와의 대국은 7번기로 추진되는데, 성사되지 않을 경우 글을 다시 올리겠다.”는 내용이다. ‘명령’ 주체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7번기건, 20번기가 되건 성사가 되기까지는 어려운 고비가 많아 보인다. 우선 일정 편성이 만만치 않다. 내년 초엔 2개의 세계대회 결승이 거의 꼬리를 물고 열린다. 양딩신과 딩하오가 펼칠 제27회 LG배 결승 3번기는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잡혀있다.

커제가 제23회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 신진서와의 대결에 앞서 관계자로부터 몸수색을 받고 있다. 사진=한국기원

변상일과 리쉬안하오가 맞붙을 제14회 춘란배 결승 일자는 아직 미정인데 비슷한 시기에 마쳐야 한다. 1월 중엔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春節)도 있다. 연기를 거듭해 온 잉창치배 결승도 턱밑까지 와있다. 올 연말로 잡혔다가 밀려난 1회 난가배도 대기 중이다.

또 하나는 명분과 당위성이다. 양딩신이 내 건 조건은 둘 중 한 명은 ‘승부사 목숨’ 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중국바둑협회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이다. 어떤 쪽을 택하건 상처를 못 면한다. 중세 시대 칼잡이 결투도 아니고, 현대 바둑에서 이런 사적(私的) 감정을 받아들여 번기(番棋)를 허용한 전례가 없다. 거액의 상금이 걸린 축제라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한국기원도 궁금했을 것이다. 일정 등을 논의하기 위해 최근 중국 바둑협회를 연결했으나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딩신은 첫 제안(20번기) 글을 23일 삭제했다. 결국 적당한 명분을 짜내 두 기사 모두에게 상처를 안 남기는 미봉책으로 마무리짓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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