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휘발유 수준 경유값, 내년엔 ‘제자리’ 찾을 수 있을까
사그라들지 않는 ‘경유값 비명’
국제거래 장기추세 경유 5% 비싸
국내선 ‘산업용 낮은 세금’ 혜택
10월 국제가격 휘발유 1.5배까지
차이 줄고 있지만 내년도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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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우리나라 휘발유, 경유, 액화석유가스(LPG)의 상대가격은 100 대 47 대 26이었다. 그해 정부는 1차 에너지 세제 개편을 단행해, 유종별 상대 가격을 2006년 7월까지 100 대 75 대 60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대기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경유차 수요가 빠르게 늘었다. 경유의 상대가격을 더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2004년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12월24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제2차 에너지 세제 개편안’을 확정했다. 휘발유·경유·엘피가스 가격 비율을 그해 100 대 70 대 53에서 2007년 100 대 85 대 50으로 조정하기로 했다. 휘발유가 리터당 1382원, 경유가 962원, 엘피가스가 728원 할 때였다. 경유는 3년간 매년 리터당 60~70원씩 올리고, 엘피가스는 리터당 30원 안팎 내리기로 했다. 그렇게 해도, 경유는 휘발유보다 15%는 쌀 터였다.
휘발유나 경유 모두 원유를 정제해서 생산하는 석유제품들이다. 끓는점이 낮은 액화석유가스부터, 휘발유, 나프타, 등유, 경유, 중유 순으로 분리해낼 수 있다. 원유를 정제하면 경유가 휘발유보다 3배가량 더 나오지만, 일련의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라 제품별로 생산단가를 따로 매길 수는 없다. 결국 석유제품 가격은 시장의 수급에 따라 결정된다.
국제 석유제품 시장에서는 경유(황 0.05% 이하)가 휘발유(옥탄가 92RON)보다 대체로 비싸게 거래돼왔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 통계를 보면,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동안 경유의 연평균 가격은 배럴당 87.63달러로 휘발유(83.05달러)보다 5.5% 비쌌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싼 해는 4개년뿐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값이 쌌던 경유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반대로 경유가 휘발유보다 쌌다. 정부가 산업용 연료인 경유의 가격을 휘발유보다 싸게 유지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산업 활동에 꼭 필요한 트럭·버스·기관차 등 운송수단과 중장비가 모두 경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까닭이었다. 상대가격을 낮게 유지하는 수단은 유류세에 차이를 두는 것이었다. 경유보다 더 싼 엘피가스는 택시와 장애인 차량에 쓰게 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은 휘발유에 리터당 475원, 경유에 340원의 세금을 매기고, 필요한 경우 30% 범위에서 조정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여기에 자동차세(교통·에너지·환경세의 26%)와 교육세(교통·에너지·환경세의 15%)를 붙이고, 관세와 수입부담금도 붙인다. 2021년 11월 유류세 20% 인하 조처를 취하기 전, 휘발유에는 820원, 경유에는 581원의 세금(부가가치세 제외)이 붙었다. 경유에 붙은 세금이 휘발유보다 239원 적었다. 경유의 국제가격이 휘발유보다 비쌌지만, 이런 세제 때문에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은 경유가 더 쌌다.
그러나 경유를 휘발유 가격의 85%로 한다는 계획은 지금 완전히 무너졌다. 올해 1월 첫째 주만 해도 전국 주유소 평균값은 경유(리터당 1440.89원)가 휘발유보다 181.5원 쌌다. 경유 가격은 휘발유의 88.9%였다. 그런데 3월 셋째 주 들어 리터당 가격 차이가 91원으로 좁혀지더니 5월 셋째 주 들어서는 경유가 오히려 12원 비싼 가격 역전이 일어났다. 차이는 점차 커져 11월 마지막 주에는 경유 가격이 235.8원이나 비쌌다. 휘발유 가격이 100이라면 경유 가격은 114.5다.
이런 역전 현상은 국제 석유제품 시장에서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크게 웃돌면서 일어났다. 올 들어 12월 셋째 주까지 경유(황 0.05% 이하)의 주간 평균값은 배럴당 131.4달러로 휘발유(옥탄가 92RON, 111.64달러)보다 19.76달러(18.5%)나 비쌌다. 한때는 차이가 배럴당 40달러까지 벌어졌다.
국제 석유제품 시장에서 경유값이 휘발유값을 크게 웃도는 일은 2008년에도 있었다. 연평균값이 휘발유(배럴당) 102.04달러, 경유 123.4달러로 경유가 21%나 비쌌다. 중국의 경유 수입이 급증한 탓이었다. 중국은 그해 2~4월 정유공장들이 정기 보수에 들어가면서 수입을 크게 늘렸는데 5월12일 쓰촨성 대지진이 일어나 지진 복구용 경유 수요가 또 늘어났다. 여기에 8월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경유 비축량도 늘렸다. 3월에 시작된 경유값 급등은 10월 들어서야 진정됐다. 그해 5월 넷째 주 우리나라 경유값도 1876.92원으로 사상 처음 휘발유값(1876.62원)을 뛰어넘었다.
올해 국제 경유가격 급등은 3월에 시작됐다.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단이 됐다. 유럽은 육상운송 연료의 4분의 3을 경유에 의존하고 있고, 승용차도 디젤차 비중이 40%에 이른다. 전체 경유 수입량의 절반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 국가들에서 수급 불안이 이어지자 국제 경유가격이 급등했다.
1월 첫 주 배럴당 92.4달러이던 국제 경유가격은 6월 셋째 주 들어 연초의 갑절에 육박하는 173.04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를 정점으로 하락해 12월 셋째 주엔 110.7달러까지 내려왔다. 경유와 휘발유 가격 차이는 10월 둘째 주 한때 배럴당 40.23달러(47.6%)까지 벌어졌다. 10월 평균환율로 계산하면 경유는 휘발유보다 리터당 361원이나 비쌌다. 지금은 차이가 배럴당 24.03달러(33%)로 좁혀져 있다. 21일 원-달러 환율로 계산해 경유가 194.5원 비싸다.
‘견딜만한 가격’까지 떨어질까?
정부는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환율도 오르자, 유류세 인하폭을 20%(2021년 11월12일~2022년 4월 말)에서 30%(~6월말)로 37%(7월1일~)로 키워왔다. 지금은 휘발유에 516원, 경유에 369원을 매긴다. 경유에 매기는 세금이 휘발유보다 239원 적었던 게 147원으로 차이가 줄었다. 세금이 경유의 상대가격을 낮추는 데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줄었다. 정부는 내년부터 경유 세금은 현행 유지하고 휘발유만 인하폭을 37%에서 25%로 줄이기로 했다. 내년부터 휘발유에는 리터당 99원의 세금이 더 붙게 된다.
11월 이후 휘발유와 경유 국제가격이 떨어지면서 가격 차이도 조금씩 줄어든 것과 달리,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에선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조만간 국내 가격도 그런 흐름을 따라갈 것이다. 여기에 두 유종의 세금 차이가 내년부터 246원으로 커지는데, 이는 현재 두 유종의 국제가격 차이를 메울 수 있을 정도다. 이를 고려하면 내년 안으로 국내 경유 가격과 휘발유 가격 그래프가 다시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어서 경유 가격이 ‘견딜 만한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경유 유류세를 37% 내린 것에 출구전략을 마련해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점은 또다른 짐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한겨레 논설위원.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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