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예산안 “힘에 밀려 민생 예산 퇴색”…야당 비판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내년도 예산안을 두고 23일 야당을 비판하며 “아쉬움이 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해 “힘에 밀려 민생 예산이 퇴색”했다면서 민생 예산이 정부가 아닌 ‘야당 예산’이 됐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이례적으로 야당을 공개 비판하면서 예산 정국 이후에도 여야 긴장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23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민 경제가 어렵고 대외신인도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합의할 수밖에 없었지만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 부대변인은 그러면서 “국민을 섬겨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려 했으나 (야당의) 힘에 밀려 민생 예산이 퇴색됐다”면서 “이대로 경제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우려되지만 윤석열 정부는 묵묵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국회 다수 의석(169석)을 점한 야당에 밀려 정부 예산안 취지가 후퇴했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윤석열 정부 첫 예산안을 내면서 철학과 기조를 반영했고 국민은 윤석열 정부가 경제활성화를 위해 한 번 뛰어보라고 명령하셨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런 것들이 상당히 퇴색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생 예산의 상당 부분이 윤석열정부 예산이 아니라 수적 우위인 야당의 예산으로 활용되는 면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린 지역사랑상품권 발행 지원 예산 등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초 정부안에 반영되지 않았던 이 예산은 여야 협상에서 민주당 요구액의 절반 수준(3525억원)을 편성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실은 특히 막판까지 핵심쟁점이었던 법인세를 비롯해 주식 양도소득세, 다주택자 중과세 등 ‘감세’안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것들이 모두 ‘부자 감세’라는 이념 논리로 무산됐고 결국 힘없는 서민들과 약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강한 우려를 갖는다”며 “그런 점이 가장 아쉬운 것”이라고 했다.
당초 정부는 과표 3000억 초과 대기업에 적용되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3%포인트 낮추려했지만 여야 협상 결과 현행 구간별로 1%포인트씩 인하하는 쪽으로 절충했다. 종부세 과세기준은 완화됐지만 다주택자 중과 일괄 폐지는 합의에서 빠졌다. 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요건을 종목당 10억원에서 100억원으로 높이는 정부안도 불발됐다.
내년 예산안은 법정 처리시한(12월2일)을 20일 넘긴 시점에서 타결됐다. 여야가 한발씩 물러나 절충점을 찾으면서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각자 안에서 물러나는 방식의 협상과 타협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대통령실이 강하게 야당을 성토한 데는 여당의 수적 열세를 부각해 여론에 소구하려는 뜻도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실은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공개 언급은 자제하되 국민의힘과 수시로 소통하며 사실상 물밑 협상에 한 축으로 참여해왔다. 이 때문에 야당에서는 여야 협상이 윤 대통령 의중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내년 경제 활성화에 여력을 다 쏟아야겠지만 그러기에 지금의 예산안은 그리고 관련된 세법 개정안들은 많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한다”면서 “또 다른 정책적 대안들을 최대한 찾겠다”고 했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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