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한끼가 천원? 평범한 이웃들이 만드는 “천원의 행복”
■ 갓 지은 밥과 따뜻한 국, 그리고 고기반찬까지. 천 원만 받아요.
■ 채소와 고기, 생선, 양념까지 시장 상인들의 기부로 가격 유지가 가능
■ 작은 기부가 만드는 기적, 집에 남은 식재료도 환영
천원으로 점심 한 끼를 먹을 수 있을까? 편의점 도시락도 5천 원,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주문해도 요즘은 기본 3천5백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밥과 따뜻한 국, 고기반찬을 포함해 3찬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인천시 부평종합시장 안에 있는 ‘기운차림식당'이다. 천 원만 받기 때문에 시장상인들과 이용객들에게는 일명 ‘천원식당’으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한 곳이다.
어떻게 1천 원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돈을 벌기 위한 영리 목적으로 운영되는 곳이라면 불가능할 것이다. 이곳은 사단법인 <기운차림봉사단>에서 12년째 운영 중인 곳이다. 영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2년째다. 4년 전부터 식당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김해숙(53) 씨는 식당의 주 고객은 소외계층이나 독거노인, 그리고 시장 내 노점상을 하시는 어르신들이라고 설명한다.
기운차림 식당은 소외된 계층, 예를 들어서 뭐 경제적으로 힘들거나 아니면 또 독거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이에요. 기운차림이라는 이름에서도 저희가 느낄 수 있듯이 하루 점심 한 끼 식사로 따뜻한 밥 한 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소외되고 또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따뜻한 밥 한 끼로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곳이에요.
식당은 휴일과 주말을 제외하고 주5일 운영된다, 하루 이용고객은 100명, 100명분 식사만 준비하고 오전 11시 40분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하루 100명으로 제한한 이유는 주변에 다른 식당들이 천원식당으로 인해서 피해받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돕자고 시작한 일이 주변 작은 식당의 영업을 방해한다면 그 취지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식당의 영업방식도 독특하다. 식당이기는 하지만 식당 안에서 밥을 먹을 수 없다. 손님들이 직접 가져온 용기에 음식을 담아가는 도시락 식당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도시락 식당이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초 발생한 코로나가 식당운영방식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좀 일정 기간, 한 5개월에서 6개월 정도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단골 분들이 많다 보니까 전화가 오는 거예요. 언제 문 열어요? 언제 문 열어요? 왜 안 보여요? 이런 전화를 받고 나서는 우리가 마냥 이렇게 손을 놓고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운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죠. 그러면 안에서는 식사가 안 되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했죠. 그러다가 도시락으로 한번 해봤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처음에는 손님들도 익숙하지 않고 저희도 익숙하지 않은 그런 시스템이었어요. 하지만 점차적으로 도시락 시스템이 완전 정착이 됐어요.
처음 도시락판매방식을 도입했을 때는 빈손으로 온 손님들을 위해 1회용 도시락 용기를 1천 원에 판매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쓰고 버려지는 도시락 용기가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무조건 손님들이 도시락 용기를 가져올 때만 판매한다. 도시락시스템을 도입하니 손님들도 좋아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한 끼만 먹고 갔지만, 지금은 2~3천 원을 내고 2~3인분을 사가는 분들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천 원만 받고 식당운영이 될까. 김해숙(53) 사무국장 말을 들어봤다.
천원으로 운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하루 최대 인원 100명을 받으면 매출이 10만 원이죠. 10만 원을 가지고 쌀도 사야 하고 고기도 사야 하고 또 반찬 재료도 사야 하죠. 살 게 너무 많은데 10만 원으로는 전혀 해결이 안 되죠. 하지만 많은 지역사회의 응원과 후원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농산물 도매업을 하시는 가게 사장님이 주 2, 3회 정도 채소와 나물거리를 기부를 해주시죠. 정기적으로 고기를 후원해 주는 정육점도 세 곳이나 있습니다. 후원을 해주시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특식으로 고기가 나갈 수 있죠. 생선이나 참기름, 들깨 같은 양념을 기부해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저희는 12년째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순수 민간 후원으로만 운영됩니다.
이 밖에 적게는 한 달에 5천 원부터 많게는 몇만 원까지 CMS를 통해 매달 기부를 해주시는 후원회원도 있다고 한다. 정기후원은 아니지만 천원식당의 소문을 듣고 직접 찾아와서 기부하고 가는 시민들도 큰 힘이 된다고 한다. 선물 받은 참치 통조림이나 식용유, 커피까지 다양한 기부 물품이 식당을 운영하는 힘이 된다고 한다. 실제 기자가 찾아간 날도 식당 곳곳에 기부받은 김치, 채소 등이 쌓여있었다. 작지만 주변 상인과 시민들의 작은 정성이 12년째 식당을 운영하는 힘이 되는 셈이다. 그동안 경험 중에서 기억에 남는 기부자나 후원자가 있었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딱 작년 이맘때였어요. 12월 24일 아직도 그 날짜를 기억하고 있어요. 저희가 이제 근무가 다 끝나고 퇴근을 했어요. 3시 정도에 전화가 한 통이 온 거예요, 여성분한테. “어쩐 일이세요.” 하고 물었더니 “서울에서 기부 물품을 사서 왔는데 문이 닫혔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날 엄청 추웠거든요. 식당이 집에서 차로 한 십 분 거리인데 곧바로 나갔어요. 그런데 지난해에는 국민 재난지원금이 10만 원씩 나왔을 때잖아요. 그 재난지원금을 뜻깊게 쓰고 싶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그래도 이 추운 날 따뜻하게 밥을 제공하는 곳이 낫지 않을까 하고 우리 식당을 찾아 오신 거죠. 서울에서 직접 운전을 해서 여성분 두 분이 부평시장에 오셔서 물건을 사서 찾아오신 거죠. 진짜 가슴이 너무 뛰었어요. 저희가 뭔가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절대 사양하시면서 성함도 안 밝히셨어요.
김해숙 사무국장은 정부지원이나 기업의 큰 후원이 아니라 평범한 이웃들의 작은 도움이 큰 힘이 된다고 한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찾아와서 도와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기운차림식당. 일명 천원식당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봉사활동이라면 힘들지만, 그냥 무료급식소 형태로 운영해도 될 텐데 1천 원을 받고 음식을 파는 이유에 대해 김해숙 사무총장은 최소한의 금액이지만 천원을 당당하게 내면 자존감도 지키면서 당당하게 식사하실 수 있다는 차원에서 정한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사단법인 기운차림 봉사단에서 운영하는 이 같은 천원식당은 전국 16곳에 있다.
인터뷰 동영상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981483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후원문의 : 기운차림식당 032-519-8988 / 010-2734-8313 / www.kiunup.org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 전화 : 02-781-123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뉴스홈페이지 : https://goo.gl/4bWbkG
이경호 기자 (kyungho@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 출근길 대란 재현…청주시 제설 엉망에 시민들 ‘분통’
-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를 바라보는 방법
- [의정비]② 재정자립도·주민 수 줄었는데…월정수당은 묻지마 인상?
- 이재명 “尹가족 소환 물어야” 불출석 시사…與 “검찰 두렵나”
- 올해도 찾아온 익명 나눔 천사…5년 동안 남몰래 5억 4천만 원 기부
- [특파원 리포트] “중국 이달 감염자 2억 5천만 명”…“베이징으로 의료 인력 차출”
- “혹시 아빠야?”…작전명 ‘산타 품앗이’ “걸리면 절대 안 돼”
- 푸틴,우크라전 ‘특별군사작전’→‘전쟁’…종전의사 밝혀
- [크랩] 2023년부터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
- 2030 ‘대본집을 굿즈처럼’…3040은 자기계발서·5060은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