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새해엔, 이코프레너십
2000년 여름 유타주에서 열린 미국교육훈련협회(ASTD) 연례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당시 기업교육 전문업체의 직원으로 업계의 흐름과 전망을 보러 간 출장이었다. 잘 안 들리는 영어로 띄엄띄엄 듣다가 아찔하였다. IMF 이전만 해도 기업 내 교육은 요식행위처럼 보였다. 당시는 세계화의 물결을 호되게 맞은 직후라 교육이 비용이 아니라 성과를 위한 투자라는 개념을 알리는 일에 종사하며 상당한 매출을 올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국제회의에 가서 보니 우리 회사의 경쟁자는 다른 산업교육업체가 아니라 클라이언트로만 생각한 기업들이었다. 유명한 회사들이 자사의 교육 프로그램을 전시하고 발표하는데, 우리같이 작은 회사는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다윗이 골리앗을 본 심정이 이랬을까 싶게 위기감을 느꼈으나 지금은 기업뿐 아니라 정부를 포함해 어느 기관이든 인적자원개발(HRD)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환경 운동에 몸담은 지 20년째인 지금 2000년도의 기억을 소환하는 기시감이 든다.
마크 베니오프는 미국 NGO 저스트 캐피털이 올해 5월 선정한 ESG 우수 기업에 알파벳, 인텔,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자신이 설립한 세일즈포스를 4위에 올렸다. 세일즈포스는 B2B 사업이라 대중적으로 유명하진 않지만 포천 선정 500대 기업이자 글로벌 1위 고객관계관리(CRM) 소프트웨어 업체이다.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 100대 혁신기업' 순위에서 2012~2014년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이래 혁신의 대명사로 불리고 있다.
이 '혁신의 끝판왕'은 2019년 뉴욕타임스 칼럼을 통해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자신이 1999년 설립한 세일즈포스를 통해 20년 동안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창출했고 키이우 출신 이민자의 후손을 매우 부유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던 자본주의가 죽었다고 썼다. 주주를 위한 이익 극대화에 대한 집착의 결과 전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한 26명의 사람들이 가장 가난한 38억명의 사람들만큼 많은 부를 가지고 있으며, 끊임없는 탄소 배출은 지구를 재앙적인 기후 변화로 몰아가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새로운 자본주의의 전도사로서 세일즈포스는 창립 이래로 주식과 시간과 직원의 1%를 주정부와 NGO와 협력하여 사회 및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쓰고 있다. 그는 사무실에 명상실을 둘 정도로 신심 깊은 불교 신자답게 회사뿐 아니라 모든 존재는 연결되어 있고, 모두가 하나라고 말한다. 그러니 '기업이야말로 사회 및 환경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플랫폼'이라고 말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지난 9월 세일즈포스 연례행사 드림포스2022에서 마크 베니오프는 탄소배출권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깜짝 발표를 했다. 넷제로는 이제 혁신가의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자본주의를 부정하면서 더 빠르게, 더 큰 부자가 되어 새로운 자본주의 역사를 쓰고 있는 이런 사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가장 칭찬받을 이가 아닐까. 새해엔 "미래엔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가인 '이코프레너(Eco+Entrepreneur)'가 중요해질 것"이란 마크 베니오프의 예측이 상식이 되길 빈다. CEO의 E는 이제 환경(Environment)이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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