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칼바람보다 더 참기 힘든건, 벽만 보는 외로움"
집 안에 생긴 성에 없애려
추위속 선풍기 틀어놓기도
수도 동파돼 세수도 못하고
기름값 걱정 보일러 틀기 겁나
가족과 단절된 채 생활하며
질병 시달리는 노인들 많아
영하 12도 한파가 불어닥친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역 뒤쪽에 위치한 쪽방촌. 이곳에서 만난 60대 중반 손 모씨는 교회에서 주는 무료 저녁 식권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손씨는 자신의 집으로 안내하며 "집에 선풍기를 켜놓고 왔다"고 했다. 이 추위에 선풍기가 웬 말인지, 고개를 갸웃했지만 1평 남짓한 방에 들어가 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벽면에 금이 가 방 안에 생긴 성에를 없애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것이다. 손씨는 추운 것보다도 더 힘든 게 있다고 했다. 그건 '혼자 있는 시간'이라고 했다. 제대할 때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3남3녀 육남매도 먼저 세상을 떠나고 손씨는 혼자 남겨졌다. 그는 "누구라도 좋으니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언제나 그래왔지만 쪽방촌에 닥친 이번 겨울은 더 혹독하다. 칼바람이 몰아치고, 난방비가 오르고 수도가 동파되며 몸도, 마음도 얼어붙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단절된 쪽방촌 사람들이 겪는 외로움과 우울함은 한파보다 고통스럽다. 이들에 대한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은 한파로 인해 수도가 동파돼 일부 주민은 세수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동자동 쪽방촌에서 18년째 거주 중인 윤용주 씨(60)는 "동네 센터에 가면 샤워를 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서 씻고 나오면 너무 춥기 때문에 그냥 집에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그가 사는 방에 보일러가 들어오는 건 하루 세 번. 오전 9시가 되면 보일러가 끊겨 낮 시간에는 이불을 둘러싸고 몸의 온기로 버티는 수밖에 없다. 전기료 부담에 전기난로를 켜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30대부터 쪽방촌 생활을 해온 박 모씨(70)는 바깥으로 나가기도 했지만 자꾸 쪽방촌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했다. 그는 "익숙함을 찾아 돌아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연락하고 지내는 가족은 없냐는 기자 물음에 "없다"며 "그러니까 자꾸 되돌아오는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 상담소장은 "젊었을 때 도박이나 알코올중독으로 가정이 파괴돼 쪽방촌으로 오게 된 경우가 30% 정도"라고 했다. 쪽방 상담소에 따르면 쪽방촌 거주민 대부분이 가족과 단절된 사람들로, 90%가량이 혼자 사는 '단신 거주자'로 파악되고 있다.
또한 이들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지인들이 없다 보니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김 소장은 "우울증을 앓고 있거나 의지가 없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쪽방 상담소 차원에서 등산이나 나들이 등 정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일상적인 교류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정신뿐 아니라 육체적인 질병도 문제다. 쪽방 거주민 10명 중 7명꼴로 고혈압·당뇨·천식을 달고 살고 있었다. 가까스로 몸을 뉠 정도인 1평가량 방에서 무엇인가를 제대로 만들어 먹기란 여의치 않다. 컵라면과 같은 인스턴트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식이 돼버렸다.
김 소장은 "신선한 식자재를 사서 먹으면 좋겠지만 물가상승률을 따라갈 수 없다"고 토로했다. 또한 마을 자체가 노후화되면서 벽이 갈라져 안에 곰팡이가 생겨 호흡기 질환을 앓는 경우도 상당수다. '보수공사를 하면 안 되느냐'는 물음에 "건물이 워낙 오래돼 한 군데 공사하는 순간 옆집 벽이 갈라진다"고 답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편의점이나 세탁소 같은 지역 상점에서 주민 간 매개고리가 돼야 한다"며 "사회복지 명예공무원과 같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답했다. 전용호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노인복지관 같은 경우 건강한 중산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며 "본인 부담금이 없는 저소득층을 위한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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