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관찰] 진짜 우승컵과 복제 우승컵

2022. 12. 23.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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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복제 구분 의미 없는 건
어떤 재료로 만들었는지보다
담긴 상징성이 가치 있기 때문

카타르 월드컵은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에로 돌아갔다. 선수생활 내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기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대회에서는 트로피와 인연이 없었는데 정작 선수 생활의 막바지에 들어 코파아메리카 우승과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것을 보면 정말 드라마가 따로 없다 싶다. 그만큼 감격스러운지 메시는 평소엔 잘 하지도 않던 인스타그램에 월드컵 트로피에 관련한 사진들을 많이 올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는데 아르헨티나가 가져가고 메시가 사진으로 매일 올리고 있는 그 월드컵 트로피는 진품이 아니라 복제품이다.

피파(FIFA·국제축구연맹)가 진품이 아닌 복제품인 레플리카 월드컵을 지급하는 것엔 이유가 있다. 지금의 월드컵은 1974년 대회부터 사용한 우승컵이다. 그 이전까진 쥘리메컵을 우승컵으로 썼다. 이때까지만 해도 우승국의 축구협회가 쥘리메컵을 보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1966년에 도난을 당했다가 겨우 찾는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영구 소유국인 브라질에서 또다시 도난을 당해 다시는 찾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피파에서는 엄격한 규정을 통해 월드컵은 결승에서 우승팀만 들어볼 수 있게 하고 그 이후엔 다시 피파에서 회수하는 걸로 바꾼 것이다. 월드컵이 가진 상징성을 고려하면 과거와 같은 도난 사건이 절대로 발생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우승팀에 진품 우승컵이 아닌 레플리카 우승컵을 지급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대표적인 것이 NHL의 우승컵인 스탠리컵이다. 무려 12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스탠리컵도 우승팀에 진짜를 주지 않는다. 물론 진실은 스포츠의 초기 때 등장한 우승컵의 경우 후원자나 유력자의 기부로 은이나 금박을 씌운 은으로 만들어졌기에 매우 비싼 물건이라서 함부로 줄 수 없었던 이유가 컸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와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그 누구도 진짜로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진품 우승컵 대신 복제한 레플리카를 주는 것이 전통으로 내려온 것이다.

다만 여기서 예외인 스포츠가 있다. NFL, NBA, MLB 같은 미국의 대형 스포츠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세 스포츠의 우승컵은 명품 주얼리 메이커로 유명한 티파니앤코에서 만든다. 이 스포츠들은 진품 우승컵을 줬다 회수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준다. 그것은 우승컵을 지급하기 시작한 시기가 다른 스포츠 대비 매우 늦은 편이기 때문이다. NFL의 우승컵인 빈스 롬바디 트로피는 NFL이 슈퍼볼을 출범한 1967년에 등장한 트로피다. 그리고 MLB의 우승 트로피 또한 같은 해에 등장했다. 이때는 이미 스포츠 산업이 본격적으로 상업화하던 때였고 과거와 달리 우승 트로피를 만드는 게 그다지 부담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우승팀에 증정을 하고 매년 트로피를 만드는 것으로 결정된 것이다. 프로 스포츠 리그 입장에선 비록 우승컵이 가진 역사와 전통은 없지만 최고의 주얼리 회사인 티파니가 만드는 우승컵이란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실리게 된다. 또한 티파니 입장에서도 최고의 스포츠와 협업을 한다는 것으로도 홍보가치가 높기 때문에 서로 윈윈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레플리카 우승컵은 진품이 아니기 때문에 티파니가 만드는 진품 우승컵에 비해 가치가 낮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메시 같은 선수는 언제든지 월드컵과 동일한 재료로 레플리카 월드컵을 수도 없이 만들 수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월드컵이 가진 상징 때문이다. 4년에 단 하나의 팀만이 차지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대회에서 우승자란 상징이다. 바로 그것이 진품이 아님에도 메시가 손에서 떼지 못하고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우승컵의 가치는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그 우승컵이 가지고 있는 상징 그 자체다. 그렇기에 진품, 복제품이란 개념이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김영준 '골목의 전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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