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신념은 소유물이 아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022. 12. 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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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이 대통령 되기 전의 이야기다.

내 주변에 김대중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2021)에서 "누군가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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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김대중이 대통령 되기 전의 이야기다. 내 주변에 김대중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물었다. 혹 일가친척 중 김대중에게 사기를 당한 사람이 있느냐? 없다고 했다. 김대중이 당신이 잘 아는 누군가를 때렸는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열정적으로 김대중을 욕하는가?

이 화법을 최근에 써먹을 기회가 있었다. 내가 사는 전북은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에게 83%의 몰표를 준 지역인지라 윤석열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비난에 동의할 때가 많긴 하지만, 윤석열을 '악마화'하는 열정을 보이는 이들을 만나면 어이가 없어 묻는다.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가? 폭력을 당한 적이 있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12월15일 서울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신이 윤석열을 비난하는 이유는 공적인 것이라나. 들어보니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매우 강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물었다. 문재인 정권 땐 어떻게 살 수 있었는가? 문 정권은 역대 정권들 가운데 수도권의 무주택자들에게 가장 심한 고통을 안겨준 정권 아닌가?

이 정도에서 그치고 화제를 전환해야지 더 들어가면 위험해진다.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2021)에서 "누군가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에 도전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누군가의 신념에 도전하는 것은 소유욕과 이기심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2012년 7월 대선 유세 중이던 버락 오바마는 연설에서 "'당신은 자기 신념을 의식적으로 선택하지 않았음'을 깨달음으로써 그것을 소유물처럼 여기지 않도록 힘쓰라"고 했다. 당시 쓰이던 "당신은 그것을 만들지 않았다(You didn't build that)"는 문구에 빗댄 언어 유희였다.

언어 유희라곤 하지만 사회과학적 근거가 있는 말이다. "신념은 소유물과 같다." 심리학자 로버트 애빌슨이 1986년 발표한 논문 제목이다. 당신이 아끼는 물건, 특히 명품에 대해 누가 흠을 잡으며 비난한다고 생각해 보라. 보통사람이라면 열 받는 게 정상이다.

행동경제학에 '소유효과(endowment effect)'라는 게 있다. 자신의 소유물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걸 말한다. '머그컵 실험'을 보자.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학교 로고가 새겨진 머그컵을 주고 그들에게 얼마에 팔겠느냐고 물었다. 다른 그룹 학생들에게는 그 머그컵을 사려면 얼마를 낼 생각이냐고 물었다. 머그컵을 가진 학생들은 단지 몇 분간 머그컵을 만졌을 뿐인데도 약 1.7배에서 많게는 16.5배 정도 더 높게 가치를 책정했다.

그런데 우리는 물건에 대해 그러하듯이 생각이나 믿음에 대해서도 소유욕과 보호 본능이 강하다. 성공한 기업가가 성공 이유를 자신의 독보적인 창의성과 노력 덕택이라고 믿는 것처럼 우리는 스스로가 자신의 신념을 의식적으로 선택했다고 믿으며,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우연히, 남들을 따라 또는 주변으로부터 고립되지 않기 위해 갖게 된 생각일 뿐인데도 말이다.

신념을 소유물처럼 대하는 것은 소통의 결정적 장애 요인이다. 정치적 갈등만 벌어지면, 의인(義人)을 자처하는 이들이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쏟아내는 화려한 신념의 대향연을 보라. 소통할 뜻은 눈곱만큼도 없다. "나는 선하지만, 너는 악해. 나는 정의의 편이지만, 너는 불의의 편이야" 식의 오만한 자기과시, 그리고 반대편에 대한 비난·모욕·혐오가 흘러넘친다. 돈 욕심은 얼마든지 부려도 좋으니, 신념에 대해선 무소유 정신을 조금이나마 갖는 게 좋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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