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고양이가 늙어 죽을 수 있도록…법도, 세상도 바뀐다

한겨레 2022. 12. 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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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이보라의 ‘법 만드는 법’
‘동물복지’ ‘정부 의무’ 포함돼 10년 만에 개정된 동물원법
그래도 좀더 나은 세계로 나아간다는 믿음을…
책 <사로잡는 얼굴들>에 나온 나이 든 동물의 표정.

지난 주말, <사로잡는 얼굴들: 마침내 나이 들 자유를 얻은 생추어리 동물들의 초상>(가망서사 펴냄)이라는 책에 내내 매여 있었다. 이 책은 온갖 위험 상황에서 가까스로 구조돼 생추어리(동물보호시설)에서 사는, 지금은 늙고 병든 동물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담은 사진집이다. ‘동물의 노년’이란 가치판단이 필요 없는 하나의 현상이겠지만 실상은 양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에 가깝다. 나이 든 동물을 볼 수 없게끔 된 사회구조 때문이다. 동물이 고기여야만 의미를 갖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선 그러하다. 이 책의 작가 이사 레슈코는 동물이 놀라지 않도록 오랜 시간 진흙과 동물 배설물이 가득한 바닥에 엎드려 기다렸다가 편안한 분위기가 되면 조명 없이 자연광으로만 사진을 찍었다. 인간의 노화는 깊은 주름, 흰머리, 검버섯 같은 것으로 식별할 수 있지만 늙은 돼지, 늙은 염소, 늙은 말은 난생처음 봤으니 늙음의 표지를 사진 각주에 의지하며 더듬더듬 알아봤다.

책 <사로잡는 얼굴들>에 나온 나이 든 동물의 표정.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스물여덟 살의 에팔루스 품종 말 버디, 열두 살의 핀슈 품종 양 이시야, 뒷다리가 일부 마비된 채 태어난 돼지 바이올렛, 스물한 살의 알파 품종 염소 아베. 가망서사 제공

사유재산이거나 장난감이었던 동물원의 동물들

인간의 요양원과도 같은 ‘생추어리’에서 나이 들 자유를 누리는 동물들의 얼굴을 살피며 그 얼굴 하나하나에 깃든 세월을 봤다. 개체의 존엄을 결정짓는 건 그 존재가 겪는 시간성과 감정을 고유한 것으로 인지하고 그것을 존중하는지에 달린 듯하다. 동물에게 시간성을 부여하니, 호모사피엔스처럼 각 동물종에 고유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있었겠구나 싶다. 보는 눈이 달라졌다. 문자 그대로 눈이 열리는(開眼) 순간이었다.

최근 동물과 관련한 역사적인 법 개정이 있었다. 2022년 11월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동물원수족관법) 전부개정안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이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제까지 동물원은 등록제여서 일정 요건만 갖추면 개업할 수 있었는데 좀더 엄격하게 허가제로 바꿨다. 또 종별로 사육 기준을 다 달리 마련해서 동물원 환경을 점검할 전문검사관 제도를 도입했다. 동물에게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주는 체험과 쇼도 금지됐다. 동물의 정신적 고통과 감정이 인간의 법률에 처음 기입되는 순간이다. 이전까지 학대당하는 동물에 대한 가혹행위를 금지하는 ‘동물보호법’이 있었지만 ‘상해’가 증명되지 않으면 동물을 때려도 처벌되지 않았다.

이 법은 2013년 발의된 ‘동물원법’에서 시작됐다. 전국 방방곡곡에 수많은 동물원·식물원·수족관이 있지만(정부 공식 통계가 없어 이런 뭉뚱그린 표현밖에 못한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은 ‘문화 및 집회시설’ 용도를 규정하는 ‘건축법’에 규정됐거나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원시설’로 분류됐다. 민간이 운영하는 경우에는 ‘관광진흥법’에 따른 전문휴양업이나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의한 문화시설로 설립·운영됐다.

동물원은 실제 살고 있는 동물은 안중(眼中)에도 없고 단순한 건축물이거나 공원이거나 관광용이었다는 의미다. 동물원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동물은 사유재산, 관람하는 사람 입장에선 장난감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미다.

헌정사상 최초 ‘동물권 전담 보좌진’

그러니까 동물원의 동물이 나쁜 사육 환경으로 폐사하거나 이상한 반복행동(정형행동)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다. 죽거나 미치거나. 너무 많이 번식하거나 전시용으로 가치를 잃어 매각 대상이 된 동물, 즉 ‘잉여동물’로 분류되면 도축장으로 팔려가기도 했다. 식용으로 쓰이기 위해서다. 이는 2015년 서울대공원에서 실제 일어난 일로, 동물보호단체가 사슴과 흑염소 43마리가 도축장으로 이송되는 것을 발견하고 긴급구조한 적도 있었다.

“동물을 학대하는 사회는 약자에 대한 폭력을 수용하는 사회”다. 2013년 ‘동물원법’을 발의한 장하나 전 의원의 말이다(“사람도 살기 힘든데 동물복지가 웬 말이냐고?”, <미디어오늘> 2016년 7월8일). 강간죄에서 ‘폭행·협박에 대한 최협의설’이라 부르는 시각이 있다. 형법상 강간이 인정되려면 가해자로부터 폭행 또는 협박을 당하고, 그것이 ‘저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여야 하므로,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죄가 성립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피해자를(또는 피해자만) 심문하고 있으므로 법 개정운동이 지속되고 있다. 다시 앞에 썼던 문장을 나란히 둔다. 이번 동물 관련 개정법의 통과 전까진 ‘상해’가 증명되지 않으면 때려도 처벌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동물권에 진심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장하나 의원실에는 헌정사상 전무했고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없는 동물권 전담 보좌진이 있을 정도였다. 다른 의원실 보좌진은 우리 방(장하나 의원실)을 신기해하면서도 너무 순진하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대리하는 정치를 표방하던 장하나 의원과 우리 보좌진에게 동물권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직관적으로 사회적 약자와 이음동의어였다.

사실 우리 사회는 동물에 대한 감수성이 빠르게 학습되고 있었는데 국회가 가장 늦었을 뿐이다. 당시 가장 큰 이슈였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귀환으로 시민들은 불법 포획, 돌고래쇼라는 이름의 학대, 사육·전시 시스템 등의 문제를 낱낱이 알게 됐고 제돌이는 전액 시민 모금으로 제주 바다로 돌아갔다. 이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돌고래를 바다로 방류하는 세계 최초의 사례여서, 전세계 동물권 활동가와 학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런 벅참 때문에 국회에서 일하는구나

한편으로 동물권·수족관 이해관계자들은 민첩했고 목소리가 컸으며 그들을 대변해줄 국회의원을 움직일 방법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시민들의 목소리보다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과잉대표돼 그것이 마치 절대다수인 듯 국회 내에 전해졌다. 여러 반대를 뚫고 가까스로 만들어진 공청회(제정법은 법안 심사 전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 하는 절차가 있다)를 잘 치르기 위해 의원실에서는 현재 동물원법의 쟁점과 사실 자료, 외국 사례, 정부의 역할, 우리의 대안을 만들어서 다른 의원실에 보내고 동물원법 제정에 힘을 보태달라고 절박하게 요청했다. 동물단체들도 전국 곳곳의 동물원과 수족관에 들어가 처참한 사육환경 실태를 국회와 언론에 제보했다. 바닥에 엎드려 가만히 동물의 얼굴을 찍었던 이사 레슈코 작가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런 노력의 결실로 동물원법이 만들어졌다. 동물원법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3년간 공전을 반복하다가 제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가까스로 가결됐다. 동물원법 통과로 1909년 창경원이 개장한 이래 100여 년간 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동물원과 수족관이 드디어 법의 테두리 안에 놓이게 됐다. 이런 벅참 때문에 국회에서 일하는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그러나 법안 심사 과정에서 동물복지 내용이 많이 빠지고 결국 제정안엔 정부의 의무가 포함되지 못했다. 안타까웠지만 일단 틀거지만 만들어놓으면 법 제정보다 개정은 한결 수월하니 그건 다음 사람의 몫으로 두자 싶었다. 그렇게 다시 개정된 것이 이번에 통과된 법안이다. 이렇게 10년이 걸렸다.

이 글을 쓰느라 지난 의정활동 기록을 ‘동물권’이라는 키워드로만 검색해보니 2096개 파일이 나왔다. 제19대 국회 내내 만들었던 무수한 기자회견, 현장 조사, 보도자료, 법안 관련 자료였다. 그리고 제20대, 제21대 국회에서 우리 다음의 의원실들이 또 그만큼의 자료를 만들고 부처 공무원과 이해관계자와 숱한 씨름을 하며 여기까지 왔다.

‘공통의 감각’이 무너져내리고 있어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세상이 도대체 나아질 수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인 것 같다. 마땅히 존엄이 있어야 할 곳에 차별과 혐오가 들어앉아 마치 본래의 자리인 양 아무렇지 않게 자리바꿈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살피기도 어려워졌다. 재난으로부터 국민은 보호받아야 하며 단결권·단체행동권이라는 헌법적 기본권은 지켜져야 한다는 상식(Common Sense), 공통의 감각이 이리도 쉽게 무너지는 걸 목격하다니, 나날이 엉망을 갱신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분노가 외부로 발산되다 그것마저 힘에 부쳐 각자의 내면을 공격하는 우울감으로 온 것도 같다.

그러나 우회와 경로이탈을 반복했어도, 걸어오다보니 머물렀던 세계보다는 좀더 괜찮은 세계로 이행해가고 있는 듯하다. 앞머리에 인용한 사진첩에 담긴 시간성은 동물에게 시작돼 다시 나에게, 우리에게 향한다. 일희일비하고 좌고우면하면서도 걷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긴 시간으로 놓고 보면 조금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세상은 바뀐다. 우리가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를 부여잡고 있는 한.

이보라 국회 보좌관

*법 만드는 법: 국회 10년차 보좌관이 국민 생활에 밀착한 법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보라씨는 국회여성정책연구모임 대표와 경찰청 사이버성폭력 수사자문단 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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