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 주세요"... 세상 앞으로 나선 아빠들

홍주환 2022. 12. 2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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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 협의회의 공동 부대표를 맡고 있는 이정민 씨와 운영위원 이종관 씨를 뉴스타파가 만났다. 이정민 씨는 고 이주영 씨, 이종관 씨는 고 이민아 씨의 아버지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이민아 씨의 '10월 29일 그날'

이주영 씨는 올해 29살이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최근 사업을 시작했다. 고양이를 모델로 한 캐릭터 상품 사업이었다. 뉴스타파가 이버지 이정민 씨를 만나기 위해 찾은 주영 씨 사무실에는 각종 캐릭터 상품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저희 집에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우고 있어요. 그 고양이를 모티브로 해서 캐릭터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사업을 하기 위해서 사무실도 얻었죠. 처음에는 걱정이 됐죠. 그래서 '그냥 직장 생활하지. 사업이 얼마나 힘든데 왜 사업을 하려고 하냐'고 많이 말렸어요. 그런데 본인이 하고 싶어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 이정민 / 고 이주영 씨 아버지

막 시작한 사업에 열중하던 주영 씨, 내년에는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상견례를 마치고 예식장도 예약한 상태였다고 한다. 

10월 29일 그날은 결혼을 준비하던 주영 씨에겐 뜻 깊은 날이었다. 2주만에 출장에서 돌아온 약혼자를 만나 웨딩 드레스를 보러 가는 날이었다. 아버지 이정민 씨는 "그날 딸이 약혼자와 청담동에서 만났어요. 굉장히 애가 들떠 있더라고요. 같이 만나서 드레스도 보고 사진 촬영도 예약하고... 굉장히 들뜬 마음으로 나갔었어요"라고 말했다. 

이태원에 간 건 순전한 우연이었다. 이정민 씨는 "애들이 시간이 남아서 '이태원에서 축제를 한다고 하니 잠시 구경 가보자' 그래서 이태원으로 넘어갔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이태원 근처에서 저녁을 먹은 주영 씨와 약혼자는 밤 9시 반쯤 이태원 핼러윈 축제 현장으로 향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인 고 이주영 씨(왼쪽)와 이민아 씨.

고 이민아 씨는 올해 25살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캐나다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고, 몇년 전 한국에 돌아왔다. 직장을 다니며 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에 진학했다. 유학을 계획하고 있었다. 아버지 이종관 씨는 "집이 넉넉한 편은 못 되니까 회사 생활 하면서 돈을 모아 독일 유학을 가려고 했습니다. 창업을 하거나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 했어요"라고 말했다. 

민아 씨의 어머니 이진희 씨는 취재진에게 민아 씨의 캐나다 대학 시절 성적표와 상장을 보여줬다. 성적표에는 최고점수인 A+가 즐비했다. 졸업 성적이 우수해 총장상까지 받았다고 했다. 이진희 씨는 "컴퓨터 쪽 일을 너무 좋아했어요. 자기가 잘하기도 했기 때문에 '엄마, 나 학위 따고 싶어', '공부 끝까지 하고 싶어'라고 얘기했어요"라고 말했다. 

10월 29일은 꿈을 위해 앞만 보며 열심히 달리던 민아 씨에겐 오랜만에 찾아온 휴식이었다. 그날 민아 씨는 캐나다에서 만난 친구와 함께 이태원으로 갔다. 어머니 이진희 씨는 "남자애 2명과 캐나다에서 같이 공부했던 여자애 1명, 그리고 우리 딸 그렇게 4명이 갔어요. 이태원 옆 한강진역에 있는 상가나 카페 같은 데서 (친구) 생일잔치를 해주려는 계획이 있어서 갔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모든 게 의문투성이였던 그날...부모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기쁘고 들뜬 표정으로 집을 나섰던 이주영 씨와 이민아 씨는 이태원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두 명 모두 10월 29일 밤 지하철을 타려 이태원역으로 향하다 희생됐다. 주영 씨 아버지 이정민 씨는 "앞은 계속 막혀있고 뒤에서는 사람이 계속 밀려 내려오니까 순간적으로 주영이 남자친구도 한 5분 정도 기절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우리 애를 놓쳤다고 그러더라고요. 다시 이제 정신을 차려 보니 아이가 선 채로 그냥 고개를 떨구고 있더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딸의 죽음 앞에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뉴스타파가 확인한 이민아 씨의 사체검안서에는 '사인 : 압박성 질식 (추정)', '사망 시간 : 10월 30일 00시 이전'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실상 사인도 사망 시간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시신도 용산이나 서울이 아닌 경기도 부천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민아 씨의 아버지 이종관 씨는 "부천 경찰서에서 왔더라고요. 부검을 할 거냐 묻고 갔어요. 부천 경찰서하고는 관련이 없어요. 용산이나 서울 경찰에서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그것도 없고... 부천 경찰은 아무것도 모르더라고요. 민아가 영안실에 몇 시에 들어왔는지도 몰라요"라고 말했다.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영안실에서 찾은 딸의 유류품에는 다른 사람의 물건도 섞여 있었다. 참사 당시 딸이 입었던 흰 속옷 민소매 셔츠는 바닥에 쓸린 듯 새까매져 있었다. 부모는 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하고, 답답했다.

속옷인데 속옷이 어떻게 더 드럽냐 이거예요. 겉옷은 그나마 좀 덜하더라고. 이거 보면 사람이 또 돌아버리는 거예요. 시신을 몇 군데를 끌고 다녔나, 그런 생각도 드는 거고... 영안실에서 준 봉지에 있는 것 중에서도, 우리 딸 옷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같이 간 애 얘기를 들어보니까. 딸 옷이 아니고 다른 사람 옷을 넣어 놓은 거예요.
- 이종관 / 고 이민아 씨 아버지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민아 씨의 아버지 이종관 씨(오른쪽)와 어머니 이진희 씨. 인터뷰 장소는 민아 씨가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 씨 아버지 이정민 씨. 인터뷰 장소는 주영 씨가 생전에 쓰던 사무실이다. 

이정민 씨는 10월 29일 참사 현장에 갔고 직접 딸을 봤다. 하지만 딸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경찰이 이 씨를 막아섰다. 이 씨는 "참사 현장으로 갔더니 그냥 아수라장이었어요. 우리 아이 남자친구가 계속 그 안에서 CPR을 하다가 또 끌어안고 울다가 막 그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를 통제해서 저희는 아이 근처에 가지도 못했어요. 제가 아이 부모라고 계속 이야기하고 외쳐도 전혀 보내주지 않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후 딸 주영 씨의 시신은 용산 원효로 실내 체육관으로 이송됐다. 이정민 씨도 딸을 따라 체육관으로 향했고, 딸을 데려가기 위해 정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정부 관계자는 "실종자 신고를 하고 기다리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저는 참 의아했죠. 실종 신고를 왜 하지? 부모가 여기 와 있는데 무슨 실종자 신고를 하라는 건가. 내가 내 딸 봤고, 내 딸 여기 들어가는 거 다 보고 있는데 무슨 실종자 신고를 하라는 거냐. 그냥 내가 '신원을 이야기해주마, 여기서' 그랬는데도 막무가내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저희는 그냥 일단 시킨 대로 실종자 신고하고 집에 가서 좀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연락이 와서 어디 의정부 병원에 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 이정민 씨 / 고 이주영 씨 아버지

냉대와 방관, 그리고 오만... 아빠가 세상 앞으로 나선 이유

왜 딸이 죽었는지, 왜 딸의 시신을 뒤늦게야 먼 곳에서 찾을 수 있었는지, 정부는 왜 실종자 신고만 하라고 했는지 등 의문과 의심은 넘쳤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정부는 아무런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브리핑이나 설명회도 없었다. 장례비와 치료비를 지원하겠다는 연락, 트라우마 센터에 가서 심리 치료를 받으라는 얘기가 전부였다. 이종관 씨는 "유가족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서 나와서 설명을 해 달라는 겁니다. 그거 당연히 해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유가족들 상대로 한 비공개 설명도 좋다 이거예요. 그런데 한 번도 없었잖아요"라고 말했다. 

정부의 방관과 냉대는 참사 발생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됐다. 유가족들의 분노는 쌓여갔다. 여당인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은 유가족들을 상대로 망언을 쏟아냈다.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마저 거부하고 나섰다. 가만히 앉아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은 점점 커졌다.

이정민 씨는 딸 주영 씨 방에 들어갔다. 딸이 없는 방에서 아빠는 딸에게 질문했다. 이정민 씨는 "제가 제 아이한테 물었어요  '아빠가 (유가족 협의회를) 하는 게 맞겠니 안 하는 게 맞겠니. 어떤 게 옳다고 생각하니'라고... 딸애가 '아빠가 충분히 잘하고 있다. 그냥 아빠가 마음 편한 대로 하면 될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결심을 했죠. 제가 망설였다면 우리 아이가 아빠한테 참 많이 실망했지 않았을까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종관 씨도 "부모로서 뒤에 숨어서...그건 아니잖아요. 부모가 돼서 그렇게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주영 씨 사무실에 있는 캐릭터 상품들. 모두 주영 씨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이민아 씨의 방. 민아 씨의 유골함이 이 방에 있다. 민아 씨의 어머니 이진희 씨는 "지금은 날이 너무 추워서 봄이 되면 엄마·아빠랑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안치실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씨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의 공동 부대표, 이종관 씨는 운영위원이 됐다. 현재는 각종 기자회견과 면담·간담회·추모제 등에 참석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후속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 책임자들의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로서 장관이나 대통령께서 굉장한 오만하다고 생각해요. '애도기간 선포하고 장례비 주고 자기네들은 할 만큼 했는데 저렇게 또 시민단체하고 같이 엮여가지고서는 유가족들이 생떼를 쓴다. 하고 싶으면 해 봐라' 하는 식으로 묵묵부답인데...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오만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종관 / 고 이민아 씨 아버지

최근 생존자 고등학생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왜 본인이 좀 더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지 않았느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격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무총리라는 사람이 트라우마가 뭔지도 모르는 것 같아요.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희생자 유가족들보다 저는 더 클 것이라고 생각해요. (트라우마는) 국가에서 직접 찾아가 항상 체크하고 관리해도 힘들거든요. 그냥 사실 어떻게 보면 내버려 둔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해놓고는 그 아이한테 책임을 묻는다는 게 정말 어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지... 제가 더 창피합니다. 
- 이정민 / 고 이주영 씨 아버지

지난 13일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국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이정민 씨. 
지난달 2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주최로 열린 이태원 참사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이종관 씨. 

'국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 어른으로서의 책임 

이정민 씨는 '어른으로서의 책임'에 대해 얘기했다. 그것은 단순히 부모로서가 아니라 158명의 젊은이들이 희생된 참사에 대한 기성세대로서의 책임감이었다. 이정민 씨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 또래의 젊은  청춘들이 정부·정치권의 행태를 보면서, 자신들이 만들어가야 될 국가가 이렇게 참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까. 그런 점이 저도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참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종관 씨는 "진상 규명은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사의 전후 사정이 명백히 밝혀져야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관 씨는 "그냥 뜬금없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게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진상을 알아야 재발 방지라든지 대책이라든지 세울 수 있잖아요.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진전이 있을 수가 없는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진정한 사과, 정말 저희가 요구한 부분은 전혀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또 당연히 책임을 지지 못 한 사람들은 진실 규명을 해서 마땅한 처벌을 해야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추모 공간을 만들어 달라. 그 추모 공간의 의미는 그렇습니다. 저희가 항상 주장하듯이 잊지 말라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거든요. 이런 큰 참사가 왜 발생했는지, 참사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가게 됐는지 이걸 계속 기억하고 그걸 보면서 ‘아, 국가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구나. 국가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가.’ 그렇게 해야만 앞으로 이런 불행한 사고가 다시는 안 일어나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 이정민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주영 씨 아버지

※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가 다른 희생자 가족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메일 : itaewon1029official@gmail.com
인스타그램 : @10.29_itaewon_official

뉴스타파 홍주환 thehong@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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