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집에’ 지겹다면?···‘착한 고아’ 거부한 ‘어린 소녀들’을 추천해[오마주]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크리스마스 영화가 따로 있나 싶지만 구색은 맞추고 싶다. <나홀로 집에> <러브 액츄얼리> <로맨틱 홀리데이>처럼 겨울 분위기가 나는 작품을 찾게 된다. ‘크리스마스 특수’를 노리고 극장 개봉하는 영화들도 있다. 요즘 영화 채널에서는 <해리 포터>나 <트와일라잇>같은 시리즈 영화를 많이 방영한다. <아바타: 물의 길> 표는 못 구했고, <러브 액츄얼리>는 조금 물리고, 시리즈 영화는 너무 길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디즈니 오리지널 단편 영화 <어린 소녀들>을 추천한다.
때는 전쟁 중인 어느해 크리스마스 이브. 수녀들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한 기숙학교의 여자아이들도 크리스마스 준비가 한창이다. 먼 친척이라도 있는 아이는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가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가족이 없다. 원장 수녀는 이곳을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다. 외부인의 출입은 금지됐다. 정부의 전쟁 상황 발표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열 맞춰 선 다음 진지하게 라디오를 들어야 한다. 수녀님이 잠깐 자리를 비우며 “조금도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갑자기 주파수가 바뀌어 라디오에서 유행가가 흘러나오자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키스, 키스 해줘, 베이비. 내 작은 입술에.” 수녀들이 있는 기숙학교에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다.
돌아온 수녀들은 사태를 파악한 뒤 나쁜 말을 씻겨내야 한다며 아이들의 혀를 비누로 닦는다. 세라피나(멜리사 파라스코니)는 “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며 혀를 닦지 않겠다고 한다. 정말로 부르지 않았다. 하지만 원장 수녀는 “가사를 아는 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것이다. 세라피나는 자신이 무고하다고 생각하지만 죄는 더 무겁다”며 “세라피나는 사악하다(Serafina is a very bad girl)”고 모두 앞에서 말한다.
세라피나는 그날 자기 전 자기 머리 속에서 계속 노랫말이 울려퍼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라피나는 자신(의 머리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듣는 방법을 알게 된다. 세라피나가 ‘나(I)’로 시작하는 문장을 말하면 원장 수녀는 “나, 나, 나! 너는 이기적”이라며 “사악하다”고 비난하지만, 자신의 욕구를 알고 말하기 위해서는 ‘나’를 중심에 둬야 한다. ‘착한 소녀들’ ‘고아들’ ‘우리들’이었던 가운데 세라피나는 ‘나’를 발견하고 작은 자유를 경험한다.
다음날인 크리스마스, 순결하고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고아 소녀들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신도들이 학교로 찾아온다. 아이들은 새벽까지 천사 분장을 하고 천장에 매달린 채 신도들의 소원을 위해 함께 기도한다. 스스로를 ‘사악한 소녀’로 여기게 된 세라피나는 원장 수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38분짜리 짧은 영화다. 2018년 칸영화제에서 <행복한 라짜로>로 각본상을 탄 알리체 로르바커 감독이 만들었다. <그래비티> <로마> 등을 만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제작을 맡았다. 이탈리아의 유명 작가인 엘사 모란테가 그의 친구 고프레도 포피에게 1971년 크리스마스를 맞아 보낸 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 편지에는 세계1차대전이 한창이던 50여 년 전 크리스마스에 신부들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소년들이 겪은 일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로르바커 감독은 신부를 수녀로, 기숙학교 소년들을 소녀들로 바꿨다. 이탈리아의 비평지인 ‘파타 모르가나’는 “감독이 원작의 ‘어린 소년들’을 ‘어린 소녀들’로 각색하면서, 남성의 세계를 여성의 세계로 뒤집었다”고 했다. ‘세라피나’의 원래 이름은 ‘에지디오’였다.
엄격하지만 어딘가 허술하고 모순적인 수녀들, 소극적이지만 발랄하고 엉뚱한 소녀들의 이야기에서 따뜻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다.
‘코 끝에 겨울’ 지수 ★★★★★ / 눈 내린 기숙학교 풍경이 살짝 <해리포터 마법사의 돌> 같기도?
‘사운드 오브 뮤직’ 지수 ★★★★★ / 고전적이고 경쾌한 음악 소리와 아이들의 노랫소리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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