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의 반란’ 등 이변과 ‘차별금지’ 논란 속 성공
[주간경향] 사상 최초로 중동에서 열린 2022년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이 예상을 깨고 꽤 성공적으로 끝났다. 사상 최초 겨울 개최, 성소수자 차별, 노동자 인권·여성 권리 무시, 환경 훼손, 에너지 과다 사용 등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과정과 마무리가 비교적 깔끔했다. 다음 월드컵(2026년)은 캐나다, 멕시코, 미국에서 열린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24년 만의 공동 개최다. 본선진출국이 현재 32개에서 무려 48개 국가로 늘어난다. 여러 면에서 역대 월드컵 최대 규모가 되리라 예상된다.
리오넬 메시, ‘축구의 신’
아르헨티나 메시가 4전5기 끝에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디에고 마라도나, 펠레와 함께 세계 최고 선수 반열에 올랐다. 올림픽 금메달, 월드컵 우승, 발롱도르 수상, 챔피언스리그 우승까지 거머쥔 건 메시가 사상 최초다. 메시는 세계 최고 축구 선수를 상징하는 발롱도르를 일곱 차례나 받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0회, 프랑스 1부리그 1회, 유럽챔피언스리그 4회 등 수많은 트로피를 모았다. 국가대표로는 2005년 20세 이하 FIFA 월드컵,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21년 남미축구국가대항전 우승을 이끌었다.
메시는 월드컵 최우수 선수임을 뜻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7골(3도움)로 프랑스 킬리안 음바페(8골)에 이은 득점 2위다. 단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16강전, 8강전, 준결승전, 결승전에서 모두 골을 넣은 건 메시가 유일하다. 메시는 “딱 하나 부족한 월드컵 우승까지 이뤘으니 더 바랄 게 없다”며 “대표팀에서 몇 경기 더 뛰고 싶다”고 말했다.
‘차기 황제는 음바페?’
8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56년 만에 ‘결승전 해트트릭’도 기록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4골로 프랑스 우승에 기여한 음바페는 성숙하면서도 경이로운 골 결정력을 뽐내며 차기 황제로 손색없음을 알렸다. 폭발적인 드리블, 엄청난 스피드, 다각도 슈팅, 확실한 마무리와 어시스트 능력까지 겸비한 음바페는 티에리 앙리(프랑스), 호나우두(브라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를 합체한 느낌마저 준다. 그는 1998년 파리 근교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카메룬 출신 축구 선수, 어머니는 알제리 출신 핸드볼 선수다. 음바페는 2013년 AS모나코에 입단했다. 2017~2018시즌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임대로 한 시즌을 뛴 뒤 곧바로 이적했다. 몸값은 1억6000만유로(2196억원)였다. 언론은 “가난뱅이에서 부자가 된 스토리”라고 전했다.
언더독의 ‘반란’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주요 스포츠 베팅업체 정보를 모아 제공하는 ‘오즈포털’ 베팅 자료 분석에 따르면, 2002년 한일월드컵부터 카타르 대회까지 6차례 월드컵에서 나온 10대 이변 중 5개가 카타르에서 나왔다. 이 매체는 모로코의 포르투갈전 승리,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르헨티나전 승리, 호주의 덴마크전 승리, 일본의 독일 및 스페인전 승리를 카타르의 이변으로 꼽았다.
최고 돌풍팀은 모로코였다. 크로아티아, 벨기에, 캐나다와 조별리그를 치른 모로코는 자책골로만 1골을 내주는 탄탄한 수비로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 스페인을 승부차기 3-0으로 이겨 아랍 국가 최초로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포르투갈을 1-0으로 눌러 아프리카 국가 최초 4강 신화를 썼다. 스페인, 포르투갈은 과거 모로코를 식민지배한 국가들이다. 모로코는 중동·북아프리카(MENA·Middle East North Africa) 지역에 사우디, 이집트, 아랍에미리트 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또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모로코 이주자들이 많다. 모로코가 아프리카, 중동 국가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등 세계 각지의 엄청난 지지를 받은 이유다. 아시아는 역대 최다인 3개국이 16강에 동시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일본은 독일과 스페인에 2-1 역전승을 거뒀다. 호주는 프랑스에 1-4로 대패하고도 튀니지, 덴마크를 연파했다.
한국, 2002년·2010년에 이어 16강
한국은 우루과이와 0-0으로 비긴 뒤 가나에 2-3으로 패했다. 포르투갈을 2-1로 꺾고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한국은 투혼과 체력 축구로 16강에 진출했다. 손흥민은 안와골절에도 마스크를 쓰고 출전했다.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린 다른 선수들도 진통제 투혼을 발휘했다. ‘융통성 없는 고집쟁이’ 평가까지 받았던 파울루 벤투 감독은 일약 ‘명장’ 대열에 합류했다. 갑자기 그의 모든 게 미화됐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벤투 감독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월드컵 기간 대표팀 의무팀과 선수 개인 트레이너들 사이 곪은 감정이 표출됐다. 16강 진출이 드러난 문제마저 잊게 만드는 마취제여서는 안 된다.
독일, 벨기에 등 노쇠한 강국 퇴장
벨기에, 멕시코, 우루과이, 독일 등 강국들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벨기에는 모로코에 패했다. 멕시코는 폴란드에 무릎을 꿇었다. 우루과이는 한국과 비겼다. 독일은 일본에 졌다. 벨기에, 멕시코, 우루과이는 평균 연령이 높았고 노장에 대한 의존도도 컸다. 벨기에 주장 케빈 데 브루인은 “우리는 너무 늙어서 카타르에서 우승할 가능성이 없다”고 대회 전부터 말했다. 멕시코는 평균 28.5세로 32개 출전국 중 두 번째 고령이었다. 40대 1명, 30대 9명으로 구성됐다. 22세 이하는 아예 없었다. 우루과이도 27.8세로 본선 진출국 중 공동 5위로 노쇠했다. 30대가 7명이었다. 주전 공격수 에디손 카바니, 루이스 수아레스 모두 35세다. 주장 디에고 고딘 36세, 수비수 마틴 카세레스 역시 35세다. 독일은 평균 연령은 공동 20위(26.8세)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활력이 없다. 30대가 7명인 반면, 22세 이하는 3명뿐이다. 잉글랜드, 프랑스, 네덜란드는 ‘젊은 피’들이 잘했다. 부카요 사카, 필 포든, 주드 벨링엄, 음바페, 코디 학포 등 20세 초중반 선수들이 제 몫 이상을 했다. 두 번째(평균 25.2세)로 젊은 미국, 네 번째(26.2세)로 젊은 모로코가 16강에 오른 비결 역시 ‘영파워’였다.
침대 축구, 어림없다…공정한 시간 보장
인저리타임이 크게 늘었다. 보통 2~3분에 그치던 인저리타임이 10분 안팎으로 증가했다. 고의적인 시간 지연, 부상 치료, 선수 교체, 골 세리머니 등으로 흘려보낸 시간을 인저리타임에 거의 그대로 반영했다. 고의적인 시간 끌기로 인한 상대팀 피해, 긴장 반감, 관중 불만 등 부작용을 확 줄였다. 시간에 쫓겨 자칫 소홀해질 수도 있는 선수 치료 시간도 확보했다. 인저리타임 증가는 모든 불만과 잔꾀를 한꺼번에 해결하면서 팬들의 만족도까지 높인 이번 대회 ‘신의 한 수’였다.
인공지능(AI)
월드컵 FIFA가 본격 도입한 반자동 오프사이드 판독 기술(SAOT)이 호평을 받았다. 12개 카메라가 공, 그라운드 위 모든 선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읽어내며, 오프사이드 상황 때 곧바로 비디오판독(VAR) 심판에게 알렸다. 카타르와 에콰도르 간 개막전에서 킥오프 3분 만에 결정적인 오프사이드를 잡아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르헨티나를 2-1로 꺾는 경기에서는 아르헨티나 3골을 취소시켰다. 공 안에 칩을 넣어 아웃 여부를 판독하는 시스템도 가동했다. 월드컵뿐만 아니라 프로리그에서도 전자 퍼포먼스 트래킹 시스템(EPTS), 위성항법시스템(GPS) 수신기, 심장박동 측정기 등을 널리 사용 중이다. 경기 중 선수 주행거리, 최고 속도, 스프린트 횟수와 구간, 커버 영역(히트맵), 심박수 변화 등 각종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수집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카타르월드컵을 ‘인공지능에 의한 월드컵’이라고 표현했다.
이란, 축구보다 더 큰 싸움을 벌이다
이란 대표팀은 조별리그 1차전 잉글랜드전에 앞선 국가 연주에서 침묵했다. 이란 국가(國歌)에는 이슬람 혁명과 이슬람 공화국이 영원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란에서는 1979년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입헌군주제 왕조가 무너졌다.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 해외 언론은 “선수들이 반정부 시위를 탄압하는 정부에 반대 뜻을 전했다”고 해석했다. 이란 주장 에산 하지사피는 “이란 상황이 옳지 않고 국민도 기쁘지 않다”며 “우리가 카타르에 있지만 국민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관중도 ‘이란에 자유를’. ‘여성 생명 자유’ 등이 적힌 손팻말을 내걸었다. 이란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맞붙은 오랜 ‘앙숙’ 미국 팬들도 경기 후 이란 팬들을 격려했다.
논란, 또 논란
카타르는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이 강한 사실상 전제 군주국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성소수자 탄압이 초반 이슈였다. 잉글랜드, 네덜란드 등 유럽 몇몇 대표팀은 성소수자 권리 등을 강조하기 위해 무지개 바탕에 ‘하나의 사랑(One Love)’이라고 적은 암밴드를 착용하려고 했다. FIFA가 월드컵 개막 직전 이 밴드를 착용하면 옐로카드를 주겠다고 하자 각국 대표팀은 착용을 포기했다. FIFA는 대신 ‘차별금지(No Discrimination)’ 암밴드를 착용하라고 권고했다. 몇몇 국가가 이를 수용했다. 독일은 ‘손으로 입 가리기’, 잉글랜드는 ‘무릎 꿇기’ 등으로 항의했다. ‘원 러브’ 캠페인은 지난 9월 네덜란드축구협회가 제안했다. 잉글랜드, 스웨덴, 독일, 벨기에, 스위스, 웨일스 등 모두 7개국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 월드컵 개최지 투표에서 카타르를 지지한 프랑스는 처음에는 동참하겠다고 했다가 발을 뺐다. “정치적 표현을 하지 말아달라”는 FIFA의 거듭된 강조에도 불구하고 선수와 팬들은 인권이 정치의 영역이 아닌 보편적 권리이자 상식임을 널리 알리고자 했다.
숱한 논란에도 어쨌든 성공
카타르는 전라남도 정도 크기다. 도하 등에 경기장이 집중됐다. 이동이 부담스럽지 않다. 물리적 규모 면에서는 역대로 가장 압축된 대회였다. 경기장에 에어컨이 가동돼 더위도 느낄 수 없었다. 카타르는 음주를 엄격하게 금지한다. 경기 전 도시 곳곳에서 열린 ‘팬 페스트’가 ‘해방구’가 됐다. 36년 동안 월드컵 공식 맥주 후원사인 버드와이저는 ‘금주의 땅’ 카타르에서 맥주를 마시는 경험을 카타르월드컵 취재진 및 스태프들에게 제공했다.
FIFA는 얼마나 벌었나
FIFA 수입의 90%가 월드컵에서 나온다. 중계권 및 스폰서 계약 등으로 지난 4년간 FIFA가 카타르월드컵과 관련해 얻은 수입은 75억달러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보다 11억달러가 늘었다. AP통신은 “2026년 월드컵은 100억달러 흑자를 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FIFA가 카타르월드컵을 위해 부담한 총비용은 17억달러 선이다. 그중 상금이 4억4000만달러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상금보다 4000만달러 늘었다. 우승국은 4200만달러를 받았고, 16강에 오른 한국도 1300만달러를 챙겼다. FIFA는 또 월드컵에 소속 선수를 내준 프로팀에도 총 2억900만달러를 지급한다.
카타르는 얼마나 썼나
포브스에 따르면, 카타르는 2010년 월드컵 개최국으로 선정된 이후 12년 동안 모두 2200억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7년 카타르 재무장관이 월드컵 프로젝트에 주당 5억달러가 지출되고 있다고 말한 게 근거다. 7개 경기장 신축에만 65억~100억달러를 썼다. 4년 전 러시아월드컵의 총비용은 142억달러였다.
‘슈퍼 사이즈’ 차기 대회
4년 뒤 대회는 캐나다, 미국, 멕시코에서 열린다. 국토 총면적 순위에서 캐나다 세계 2위, 미국 3위, 멕시코 13위다. 한 나라에서만 움직인다 해도 항공편 이용이 불가피한 대국들이다. 기간은 6∼7월이다. 개최도시는 미국 11곳, 캐나다 2곳, 멕시코 3곳 등 16개다. 개최도시가 많아진 건 진출국 수 증가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본선 티켓이 4.5장에서 8⅓장으로 늘었다. 유럽 13→16장, 아프리카 5→9⅓장, 북중미 3.5→6⅔장(3개 개최국 포함), 남미 4.5→6⅓장, 오세아니아 0.5→1⅓장이다. 본선 진출국 확대로 금전적 소득은 올라가겠지만 출전만으로도 영예가 따르는 월드컵의 희소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본선 대회 방식은 미정이다. FIFA는 조별리그를 3개국씩 16개 조로 치르고 조 1·2위가 32강에 올라 단판 승부로 우승 경쟁을 이어가는 방식을 택하려고 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가 성공적이었다”며 “2026년 대회 방식을 재검토하겠다”고 말해 원점으로 돌아간 상태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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