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세모녀, 산재 사망자 … 불운이 아니라 '불의'
순조롭지 못하거나 불행한 운명. 비운의 죽음은 종종 이렇게 풀이된다. 어쩔 수 없는 사고였다고,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질병이었다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 의료 사각지대에서 죽어간 모녀, 기계에 끼이고 업무량에 짓눌려 사망한 노동자,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지 못해 숨진 이들도 과연 '비운의 죽음'이었을까.
신간 '비운의 죽음은 없다'는 이 같은 죽음들이 인간이 견뎌내야 할 불운이 아닌, 정의롭지 못한 고통의 구조라고 말한다.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 시스템으로 인해 참사가 발생했으나 정부가 나서서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첨단 과학기술과 의료서비스가 발달하면서 인간의 건강은 점차 나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사회적 약자의 생명은 더욱 개인적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책을 열면 말머리에 쓰여 있는 한 문장부터 눈길을 끈다. "견뎌야 할 불운을 바로잡아야 할 불의로 전환하는 것이 헌법의 보호 기능이다." 저자는 건강에 대한 권리가 지난 30년간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서술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건강과 불건강에 인권 프레임워크를 적용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불운한 운명'이라는 서사를 '시정돼야 하는 불의'의 서사로 바꿀 수 있었던 경험"이다.
책을 쓴 알리시아 일리 야민은 하버드대 법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 보건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세계적인 인권학자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수석 컨설턴트 등 유엔 및 세계보건기구를 포함한 많은 국제기구와 글로벌전문가위원회에서 활동해온 건강권 전문가이기도 하다. 작가는 브라질, 페루, 콜롬비아 등 세계 각지에서 벌어진 죽음과 고통을 인권 문제로 접근해 바라본다.
폭력적인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회제도,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에 어떻게 상처를 주는지 추적하는 동시에 아동·여성·성소수자 등의 건강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의 문제로 발전해온 과정을 되짚어본다. 진보 정치와 사회경제적 변화, 국제 보건 정의를 위한 투쟁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인간의 평등과 건강 또한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 부대표를 지냈으며 책의 추천사를 남긴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은 "개인의 고통, 질병, 죽음에 내재한 사회적 불의를 읽어내고 모든 사람이 차별과 폭력 없이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방법으로 '인권'을 강조한 책"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인권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이기에, 인권을 재조명하는 이 책은 치열한 현대사 책이자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안내서"라고 정의한다.
[고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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