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영 권위에만 기댄 제작진의 무책임···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나[위근우의 리플레이]
이럴 줄 정말 몰랐나. 지난 12월19일 방영 에피소드에 대한 아동 성추행 논란과 함께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특정 장면을 삭제하는 데 이른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이하 <결혼 지옥>)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를 데리고 재혼한 아내와 새아빠 역할을 맡게 된 남편의 사연을 다룬 이 방송은 놀랍게도 아내가 남편을 아동학대로 신고했다는 고백과 함께 시작한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관찰 카메라에서 아이는 “삼촌(새아빠에 대한 아이의 호칭)은 괴롭혀서 그리기 싫다” 말하고, 남편은 “사랑해서 한 애정표현인데 아이는 괴롭힘으로 받아들이는구나. 조금은 서운하죠”라고 인터뷰했다. 그리고 놀랍지도 않게 그 애정표현이 문제였다. 남편은 아이가 싫다고 해도 몸으로 꽉 안거나 조이고 놓아주지 않는 건 물론, 아이가 기겁하는데도 ‘주사놀이’라며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세게 찌르기도 했다. 프로그램의 호스트인 오은영 박사는 아이가 즐거워야지 남편 본인이 즐거운 걸 추구해선 안 된다, 이성 부모가 엉덩이처럼 민감한 부위를 만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어쨌든 남편도 순순히 인정했다. 남편이 잘못을 개선하고 아이는 괴로움을 피하고 아내는 아이의 괴로운 반응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이번주도 솔루션에 만족하고 그들의 행복한 미래를 응원해주면 되는 걸까. 하지만 적지 않은 시청자들은 관찰 카메라 속 남편의 행동이 아동 성추행이라며 항의했고, 논란이 일자 제작진은 방영 다음날 그 장면을 다시보기에서 삭제했다. 국민 멘토 수준의 인지도와 신뢰 자산을 지닌 오은영 박사의 솔루션 프로그램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여기서 앞의 질문을 조금 변주해 다시 묻는다.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나. 이것은 우연적이고 일탈적인 사건이 아닌 <결혼 지옥>에 내재한 문제가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터져나온 것에 가깝다.
지난 12월19일 방영 에피소드
“아동 성추행” 시청자 항의 빗발
해당 장면 다시보기에서 삭제
딱 반년 전 나는 이 지면에서 “<결혼 지옥>이 부부의 갈등을 각 개인의 심리적 문제로 남김없이 환원하려 할수록 미처 환원될 수 없는 의문들이 끈덕지게 따라붙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상호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 심리적 상처는 큰 장해물이며 여기엔 정신의학의 분석과 도움이 필요하다. 여기서의 목표는 좋은 삶이다. 하지만 관계가 왜곡되는 것이 자기의식 내면의 불안과 결핍 때문만은 아니다. 불평등 역시 관계를 왜곡한다. 동등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파트너의 지위가 손상된 상태라면 당사자의 심리적 만족 여부와 별개로 그 관계는 부조리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이다. 반년 전 글에서 주로 지적했던 건 결혼제도 안에서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는 가부장제와 그로 인한 아내의 지위 손상에 대한 것이었지만, 꼭 가부장제로 환원되지 않는 경우에도 파트너의 동등한 지위는 훼손될 수 있다. 당시 지적했듯 “이 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제하지 않을 때, 모든 솔루션은 결국 각 개인의 심리 분석과 마음가짐의 문제로 환원된다”. 심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오은영의 처방은 파트너가 추구해야 할 좋은 삶에 대한 적절한 방향을 제시해주지만, 관계에서의 옳고 그름의 문제에 대해서는 유보적이거나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 근본적 결함이 이번 사태에 이르렀다. 출연자들에게 개선책을 알려주고 변화를 요구하던 프로그램이 정작 자신들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선 개선하지 않는 역설.
회 거듭할수록 아슬아슬한 사연
옳고 그름 판단은 오은영에 일임
방송이 져야할 윤리적 문제 면피
이번 방송 이전에도 아슬아슬한 순간은 많았다. 10월3일에 방송된 국제결혼 부부 에피소드에서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내는 한국인 남편이 “널 사왔어”라 말했다고 폭로했고, 남편은 장난이라 해명했다. 이미 앞서 아내는 고국에서의 힘든 삶 때문에 한국으로의 결혼을 바랐고, 남편은 7~8년 연애했던 여성과의 결혼이 무산되자 막무가내로 결혼을 목적으로 국제결혼을 선택했다고 고백했다는 상황에서 “널 사왔어”라는 말이 장난이긴 어렵다. 이것이 파트너 간 지위의 불평등이다. 정말 장난을 의도했느냐는 진정성 여부를 떠나 상대방이 웃을 수 없는 말을 장난으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히 오은영 박사도 국제결혼에서 “관계의 시작 자체가 불평등할 수 있다”고 적절히 공적 맥락을 짚어주긴 했지만, 실질적 매매혼이 종종 벌어지는 국제결혼에서 상대를 거래 가능한 재화처럼 대우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인격 모독이 될 수 있는지 단호히 지적하진 못한다. 그것까지 오은영의 몫은 아닐 것이다. 다만 방송을 통해 재현되는 모든 상황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과 책임을 그에게 일임하고 정작 제작진은 안 좋은 의미로 중립을 지키며 <결혼 지옥>은 더없이 무책임해진다. 같은 에피소드에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폭언과 욕설, 떼쓰는 아이에 대한 윽박지름에 가장 어울리는 표현은 가정폭력이다. 남편이 회사의 부도 이후 경제력을 잃고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자괴감을 가지고 있더라는 추후 설명에도 불구하고 그러하다. 그러니 방송에서 최종심급의 위치에 있는 오은영 박사가 그것은 어떤 심리적 상처에서 비롯되었을지라도 가정폭력이라고 못 박아주지 못한 건 이해해도 아쉽다. 반면 규범적 질문의 공백이 생긴 자리에 ‘육아 가치관의 차이’ 따위의 자막을 넣는 건 이해도 안 되고 비겁하다.
오빠를 화난 아빠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동생이 이불로 덮어주는, 누가 봐도 폭력적인 상황조차 ‘육아 가치관의 차이’로 명명하던 <결혼 지옥>이 논란이 된 이번주 방송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반복한 건 딱히 놀랍지 않다. “아이가 그만 하세요,라고 할 때는 자기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한 거라도 그만해야 돼요. 그게 존중이에요”라는 오은영의 설명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에서 ‘남편은 잘 몰랐던 육아의 세계’라는 자막을 달아주는 건 조금도 적절하지 않다. 당시 상황에 대해 남편은 “(아이가) 싫다고 해도 진짜 싫은 건지 잘 모르겠다”고도 했는데, 명확히 싫다는 의사 표현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특별한 육아 지식이나 경험이 필요한 건지야말로 잘 모를 일이다. 오히려 잘 모른다면 육아 선배인 아내의 지적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합당한 선택이다. 물론 남편을 거기까지 밀어붙이면 갈등이 봉합되긴 어려울 것이다. 다만 그걸 굳이 “(육아에 대한) 가치관이나 개념의 차이가 너무 크니까”라고 오은영 박사가 부연해줄 때, 그의 의도가 무엇이든 아이의 지위 훼손이라는 불의의 차원은 또다시 두 사람의 성격 차와 그 성격을 이루는 인생사의 트라우마라는 심리적 차원으로 환원된다. 최종적으로 남편의 행동 대부분은 어릴 적 엄마의 가출과 그로 인한 외로움의 문제로 설명되고 너무 쉽게 면죄부가 발행된다. 이처럼 오은영이라는 전문가의 권위에 기대 자신들이 송출하는 장면에 대한 도덕적 입장과 책임을 면피하던 방송이기에, 특정 장면에 대한 도덕적 문제를 인식하지도 리스크 관리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이 사달이 났다.
제작진이 놓친 도덕적 문제
인식 개선 않고 같은 실수 반복 된다면 반년 뒤에도 ‘내 이럴 줄 알았지’
그럼에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질문은 남는다. 적어도 10화까진 어느 정도 공감 가능한 사연도 있었던 <결혼 지옥>은 왜 회를 거듭할수록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사연 위주로 흘러가게 됐을까. 제작진은 어떤 문제 제기나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어려움에 처한 부부들을 돕는 게 우선이라 믿는 선의의 확신범인 걸까, 선한 목적을 알리바이 삼아 더 자극적인 사연을 파는 교묘한 장사꾼인 걸까. 알 수 없지만, 실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그것이야말로 오은영 박사가 제작진을 분석할 만한 문제며, 이 글의 목적은 심리적 의도와 별개로 방송이 져야 할 윤리적 부담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이 초반부터 계속해서 놓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럴 줄 몰랐나,라는 질문은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다만 똑같은 실수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로서는 조금 쓸모 있을지 모른다. 도덕적 접근 대신 갈등의 봉합에 집중하며 특정 권위자에게 방송의 책임까지 의탁하는 솔루션 프로그램들의 결말이 <결혼 지옥>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위근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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