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러시아 하늘 막혀도… 대한항공, 美 동부서 한번에 온다
10~3월, 맞바람 탓에 북태평양 항로 시간 지연
대한항공, 워싱턴 D.C→인천 항공편에 첫 적용
“안전 위해 휴식시간 보장 등 피로 관리 강화”
대한항공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운항승무원 5명이 최대 17시간 조종할 수 있는 내용의 ‘특별비행 근무’를 승인받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극항로가 막히면서 인천~미주 동부 직항노선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덜게 됐다. 아시아나항공도 내부 협의를 마치는 대로 국토부에 특별비행 근무를 신청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대한항공이 요청한 특별비행 근무를 지난 19일 승인했다. 2023년 3월 27일까지 한시적으로 운항승무원 5명이 최대 17시간 운항할 수 있게 됐다. 기존에는 운항승무원 4명이 16시간 비행하는 것이 최대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해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운항승무원의 최대 ‘승무시간(비행기가 이륙 후 최종 착륙까지 총시간)’ 문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러시아 영공이 폐쇄되면서 불거졌다. 러시아 영공을 지나야 하는 북극항로가 막히면서, 미 동부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항공기도 북태평양항로를 이용하고 있다. 북태평양항로에는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강한 제트기류가 형성된다. 미 동부에서 인천까지 보통 15시간 남짓 비행하는데, 맞바람 때문에 비행시간이 1시간에서 1시간 40분가량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상 기장 2명과 기장 외 조종사 2명 등 운항승무원이 4명일 때 최대 승무시간은 16시간으로 제한돼 있다. 최대 승무시간을 지키기 위해 미 동부에서 인천으로 올 때 미 서부 공항을 경유하거나, 일본에서 승무원 교체를 위해 테크니컬 랜딩(Technical Landing·연료 보급 및 기술 지원만을 위한 중간 착륙)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지난 10월 미국 뉴욕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아시아나항공 항공기가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일본 나리타공항에 테크니컬 랜딩해 운항승무원을 바꿨다.
대한항공은 국토부와 협의를 진행하면서 승무시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항공안전법 시행규칙상 ‘천재지변, 기상악화, 항공기 고장 등’ 예외적 상황에 해당한다는 점이 근거였다. 국토부는 대한항공에 노사 의견을 수렴하고 운항승무원의 피로 대책 등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승무시간 연장을 두고 대한항공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입장차가 팽팽했다. 반대 측은 기존의 최대 16시간 운항 자체가 피로가 높은 비행인데 예외적 사례를 만들면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반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찬성 측은 미 동부에서 인천으로 오는 과정에서 경유나 테크니컬 랜딩이 늘어나면 실제 근무시간이 증가할 수 있고, 전쟁에 따른 한시적 조치라는 점에 무게를 뒀다.
대한항공 사측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 7일 운항승무원 5명·최대 17시간 운항을 골자로 한 잠정합의안을 마련했고, 지난 16일 노조 임시총회(투표)에서 가결됐다.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조합원 2354명 가운데 2007명(85.3%)이 투표해 1172명(58.4%)이 찬성했다.
한 대한항공 조종사는 “원칙을 지키자는 주장과 실리를 따지자는 주장 모두 타당해서 개인적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원래대로 돌아가기로 하는 등 비상 상황인 점을 고려해 찬성표가 더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후 국토부의 특별근무 승인이 나오면서 대한항공은 미 동부 직항노선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대한항공은 미국 뉴욕, 워싱턴 D.C., 애틀랜타, 보스턴과 캐나다 토론토에서 출발하는 미 동부 5개 노선을 대상으로 비행시간이 16시간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되는 비행편에 운항승무원 5명을 탑승시키기로 했다.
지난 22일 워싱턴 D.C.에서 인천공항으로 출발한 대한항공 항공편(KE094)에 처음으로 운항승무원이 5명이 탔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러시아 로켓 발사 관련 ‘노탐(NOTAM·NoticeTo Airmen)’으로 승무시간 초과가 예상돼 운항승무원 5명이 운항했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은 안전 운항을 위해 운항승무원의 피로 관리를 더 강화하기로 했다. 운항승무원 5인 비행 근무 휴식 기준을 신설해 현지에서 40시간 이상의 휴식을 부여하고, 인천공항에 도착해서도 2일 이상의 휴무를 제공한다. 또 운항승무원 5인 비행은 1인당 월 1회 배정을 원칙으로 기종별 특성을 고려해 최대한 균등하게 배정할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 동부 노선 운항승무원 5인 비행편을 운항한 승무원을 대상으로 피로 관리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 있는 경우 노사 간 협의체(비행근무운영위원회)를 통해 보강하겠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신세계 회장 된 정유경, ‘95年 역사’ 본점 손본다… 식당가 대대적 리뉴얼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그린벨트 해제後]② 베드타운 넘어 자족기능 갖출 수 있을까... 기업유치·교통 등 난제 수두룩
- [보험 리모델링] “강제로 장기저축”… 재테크에 보험이 필요한 이유
- “요즘 시대에 연대보증 책임을?” 파산한 스타트업 대표 자택에 가압류 건 금융회사
- 홍콩 부동산 침체 가속화?… 호화 주택 내던지는 부자들
- 계열사가 “불매 운동하자”… 성과급에 분열된 현대차그룹
- 삼성전자·SK하이닉스, 트럼프 2기에도 ‘손해보는 투자 안한다’… 전문가들 “정부도 美에 할
- [르포] 일원본동 "매물 없어요"… 재건축 추진·수서개발에 집주인들 '환호'
- 10兆 전기차 공장 지었는데… 현대차, 美 시장에 드리워진 ‘먹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