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요구 묵살” 교육과정 확정 뒤에도 논란은 여전
고교학점제·절대평가는 “기울어진 운동장 심화”
교육부가 2022 개정교육과정을 22일 확정 고시했지만 논란이 잦아들지 않는다. 23일에도 정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일방적인 개정안을 고수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106개 단체은 이날 공동성명을 내고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며 퇴행을 거듭하던 새 교육과정이 결국 누더기가 된 채 고시됐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새 교육과정이 확정되기까지 논란됐던 내용을 짚으며 “다양한 목소리 중 정책에 반영된 것은 보수세력의 주장이었다”고 했다.
‘자유민주주의’ 등 논란이 된 표현들과 관련해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민주주의’ 용어를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적 사회질서’와 병용하는 시안이 공개된 이후 연구진과 역사교사들이 반대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보수진영의 지적으로 전근대사 비중을 늘린 것도 마찬가지다. 공동성명에 참여한 박래훈 역사교사모임 대표는 23일 기자와 통화에서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에서 통과한 그대로 교육과정이 고시됐다”며 “현장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아 역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표기하는 등 노동과 관련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학교부터노동교육운동본부는 22일 성명을 내고 지난해 11월 교육과정 총론에 언급됐던 노동이 이번 정부가 들어선 후 설명 없이 빠지면서 “한 걸음 더 후퇴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도 이날 논평에서 “초등학교 전체 교육과정에서 ‘노동자’ 용어는 0회”라며 “많은 학생이 노동자로 살아갈 텐데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과정에서 접할 수 없어 유감스러운 지점”이라고 했다.
성 관련 표현들은 교육과정 심의를 거듭하면서 더 많이 삭제됐다. 지난 11월 공개된 행정예고안에서 ‘성소수자’ ‘성평등’이 삭제됐고 지난 6일 국교위 심의안에서는 ‘생식’과 ‘전성적 존재’가 삭제됐다. 교육과정 확정 전 국교위가 의결한 개정안에서는 ‘섹슈얼리티’가 빠졌다. 허민숙 여성학자(국회 입법조사관)는 기자와 통화에서 “섹슈얼리티까지 삭제하는 등 교육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 청소년들에게 무책임한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새 교육과정이 고교학점제 도입과 자사고 존치를 전제로 마련된 점도 비판 대상이다. 2025년부터 고등학교 교과 이수 기준은 ‘학점’으로 변경된다. 내신 성적은 절대평가로 전환된다.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을 고려한 개정이다.
교육부는 특목고 학생들이 듣던 ‘전문교과I’을 일반고 학생도 들을 수 있는 ’보통교과‘로 통합하면서 자사고 존치를 시사했다. 오승걸 교육부 학교혁신지원실장은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가 일반고로 전환되도록 법령이 개정돼 있어서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전문계열을 반영하지 않았다”며 “이들 학교가 존치됐을 때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고, 교육과정의 개정을 통해서 다시 전문계열 설치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정의당 정책위원회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대로 두고 교육과정을 개정했다”며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자사고와 외고를 존치시키고 절대평가를 확대할 계획”이라며 “다른 처방이 없으면 운동장이 더 가파르게 기울어질 태세”라고 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22일 브리핑에서 ‘아직도 새 교육과정에 대한 반발이 크다’는 지적에 “‘모든 다양한 시각을 다 담을 수는 없다‘는 기준으로 이견들을 좁혀왔다”고 답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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