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한의사,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 적법’ 판단…‘무면허 의료행위’ 기준 논란으로
(지디넷코리아=조민규 기자)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면허에서 허용한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와 보건의료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22일 대법원은 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며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신체 내부 촬영한 사건에 대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이는 학문적 원리와 과학기술의 발전, 사회제도와 인식변화 등을 고려해 종래 판단기준의 재구성될 필요가 있어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초음파 의료기기 사용 금지 규정이 있는지, 한의사가 진단 보조수단으로 사용시 통상 수준을 넘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또 초음파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해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인 의료법 제27조 제1항 본문의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의 범위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밝히고, 이번 판결이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무면허 의료행위 해당 여부에 관해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판결이 의료법상 자격을 갖춘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행위에 대해 의료법 위반죄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한의계와 간호계는 환영의 입장을 밝힌 반면, 의사협회 등 의사사회는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의료현장에서 이번 판결이 어떻게 적용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우선 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협)는 이번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과 함께 한의사들이 국민 건강을 위해 현대 진단기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하루 빨리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의협은 “한의학은 수천년 동안 관찰된 임상 경험을 이론화한 것으로 한의학의 과학화는 한의학이 새로운 의료로 탈바꿈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 발전의 자연스러운 단계”라며 “한의학이 현대 과학의 발달에 발맞춰서 현대화 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차례의 국민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것처럼 한의학의 과학화·현대화는 국민의 요구이자 의료인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대 진단기기의 대다수는 양의사들이 발견하고 연구한 것이 아니라 현대 문명 발달의 산물로 이를 각자 진료에 활용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관찰하고 최상의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은 현대를 사는 의료인에게 마땅히 보장된 권리이자 의무”라며 “지금까지 한의사에게 채워져 있던 현대 진단기기 사용 제한이라는 족쇄를 풀어줄 단초가 된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그동안 해온 것처럼 교육과 연구, 학술에서부터 임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초음파 진단기기를 포함한 현대 진단기기를 활용해 더 안전하고 더 효율적인 한의약 치료로 국민건강에 이바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간호계 역시 이번 대법원 판결에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한간호협회는 23일 논평을 통해 “지금까지 의료법 제27조에 따른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 규정은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의료인 간에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가 금지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합리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의료행위의 가변성, 과학기술의 발전, 교육과정·국가시험의 변화, 의료소비자의 합리적 선택가능성 등을 고려해 의료법상 자격을 갖춘 한의사가 진단의 정확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한의학적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현대 과학기술 발전의 산물인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행위에 대해 의료법 위반죄의 형사책임을 지울 수 없음을 확인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이번 판결로 한의사는 물론 치과의사, 조산사, 간호사 등 다른 의료인에 대해서도 각자의 학문 지식과 역량,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현대 진단기기를 안전하고 합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됨으로써 국민의 건강 증진과 의료소비자의 선택권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인 판단기준이 제시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간호와 돌봄을 바꾸는 시민행동도 23일 입장문을 통해 의료인인 한의사의 진단용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무면허 의료행위 해당 여부에 관해 ‘새로운 판단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까지 의료법상 무면허의료행위 규정은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금지’하고 있을 뿐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조산사 등 각 의료인 사이에 어떻게, 어떠한 행위가 금지되어야 하는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해 의료인 간의 갈등과 혼란만 초래하고 의료이용자 불편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또 오늘 대법원이 제시한 새로운 판단기준에 따라 지금까지 의료법의 무면허 의료행위로 다른 의료인들을 고소‧고발하겠다는 의사들의 겁박행위들은 모두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이용자의 합리적 선택을 존중했다고도 평가했다. 의료에 대한 모든 정보를 의사만 독점하던 시대와 달리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른 의료인들이 교육을 통해 갖추고 있는 지식과 시행하고 있는 기술 수준도 달라졌고 의료이용자들이 가지고 있는 의료지식과 정보의 범위도 달라졌다며, 의사만 진단기기를 바르게 해석해 진단할 수 있고 다른 의료인의 진단과 판단은 결코 인정되어서는 안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없다는 점에서 대법원 판결은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판결은 의사의 진료독점권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의료 및 진단기기에 대한 독점권을 의미할 수 없다는 점을 선언한 것이라며, 각 의료인들의 면허가 존중돼야 하며 그들이 현대 의료기기 및 진단기기를 사용해 각자의 면허 범위 내에서 내린 진단과 판단 또한 존중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23일 ‘한의사의 초음파기기 사용을 무면허의료행위로 판단하지 않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통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송두리째 흔드는 불합리한 한의사 초음파기기 판결은 바로잡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협은 대법원이 ‘그 면허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아서, 허용된 범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으며, 초음파 진단기기를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며 각 의료직역의 축적된 전문성과 경험의 고려 없이 내린 판결은 의료법상 의료인 면허제도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며, 그 결과 무면허의료행위가 만연하게 되어 국민에게도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초음파 진단기기를 통한 진단은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되어 있기에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로 잘못 사용할 경우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직접적 위험을 발생시킬 수 있어 수십 년 전부터 영상의학과 전문의나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과 관련 이론 및 실습을 거친 의사만이 전문적으로 수행해왔다며, 이번 판결로 향후 발생할 현장의 혼란, 국민보건상의 위해 발생 가능성, 그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에 대해 의료계는 극도의 우려를 금할 수 없고 피해는 온전히 대법원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한의사들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을 빌려 의과의료기기를 사용하는 등 면허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의료행위를 지속적으로 시도한다면 불법의료행위로 간주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총력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히는 한편, 국회와 보건복지부는 즉시 의료인의 면허범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정하는 것으로 의료법령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시의사회(이하 의사회)는 역시 헌법재판소 및 법원의 수많은 판례를 뒤집어가면서 국민의 건강과 환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내린 판결이라고 비난하며, 이를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고 23일 대법원 앞에서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이 1인 시위를 진행했다.
의사회는 23일 성명서를 통해 “현대의 진단용 의료기기가 한의사 아닌 의사만 독점적으로 의료행위에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언급은 한의사들이 그동안 주장해왔던 내용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라며 “그동안 헌법재판소 및 법원의 수많은 판례들을 뒤집어가면서까지 내린 이번 판결의 후폭풍이 두렵기까지 하다. 이번 판결로 인해 발생하는 국민적 위해에 대해는 과연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법원이 마련해주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조민규 기자(kioo@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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