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금리역전 한달…14년전 '금융위기' 이후 처음
국내 채권시장에서 만기가 짧은 채권 금리가 장기물보다 높은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한달 째 이어지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으로 경기둔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경기침체의 신호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전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연 3.567%로 마감했다. 반면 10년물 금리는 전일 대비 연 3.495%를 나타냈다. 3년물 단기 금리가 10년물 장기 금리보다 0.072%포인트(p) 높은 셈이다.
국내 채권 시장에서는 3분기 말부터 이같은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2일 3년물 금리(연4.104%)가 4%대로 처음 진입하며 10년물(3.997%)보다 높아졌다.
이후 지난달 21일부터 전날까지 3년물금리가 10년물 금리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한 달 동안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 장기 금리가 다시 단기보다 올라선 날은 국고채 3년물 10년물이 각각 연 3.650%, 3.663%을 나타냈던 지난 1일 하루 뿐이다.
이같은 장단기 금리 역전은 채권시장에선 이례적인 일이다. 돈을 더 오래 빌릴수록 만기 때까지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에 장기채권 금리가 단기채권 금리보다 높은 게 일반적이다.
최근 장단기 금리 역전은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과 무관치 않다. 통상 국고채 3년물 같은 단기물 금리에는 통화정책이 빠르게 반영된다. 국고채 10년물 같은 장기물 금리에는 단기간 통화정책보다는 중장기적인 경기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반영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기준금리를 0.5%에서 0.75%로 0.25%포인트 인상한 후 지난달까지 기준금리를 3.25%로 2.75%포인트 인상했다. 대표적인 단기채권인 국채 3년물 금리는 이를 반영해 지난해 7월 초 1.469%에서 올해 9월 4.548%로 연고점을 찍었다 최근 다시 3.5%대로 내려왔다.
따라서 최근 국고채 3년물에는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반영돼 금리가 올라간 반면, 국고채 10년물은 향후 경기전망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전망을 반영하며 내려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국고채 3년물 금리가 10년물 금리보다 높아진 것은 금융위기가 있었던 지난 2008년 이후 약 14년여 만이다. 역대 3-10년물 금리 역전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7년 11월~2008년 1월에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장단기물 수익률 역전은 경기 침체의 전조로 해석된다.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고 난 후 경기 침체가 발생했던 전례가 많기 때문이다.
장·단기 금리 역전은 전세계 국채 금리의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미국에서도 나타났다. 현재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4.2%대로 10년물 금리와의 차이는 거의 두 달 동안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달 25일에는 10년물과 2년물 금리 격차가 77.8bp(1bp=0.01%포인트)까지 벌어지면서 1981년 10월 이후 4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된 바 있다.
이에 경기 침체 경고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빌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20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기고를 통해 연준 긴축에 따른 경기침체가 불가피하다며 선별적 재정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같은날 블룸버그가 설문조사를 통해 미국 경제학자들의 경기침체 전망을 공개한 결과, 38명의 경제학자 중 내년 경기침체 전망을 밝힌 수는 약 70%로 집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달(65%)에 비해 늘어난 수준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내년 우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내렸고,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기존 2.3% 전망치에서 1.8%로 하향 조정했다. 이에 더해 정부도 기존 2.5%에서 1.6%로 대폭 낮춰 잡았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장단기 금리가 경기를 선행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경기침체의 사전적 징후로 해석할 수 있다"며 "내년 1분기에는 우리나라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될 것으로 보고 있어 단기 금리는 상승한 뒤 정체되고, 반면 장기 금리는 그간 긴축에 따라 유동성 여건과 경기 펀더멘털이 나빠져 낮아지며 장단기 금리 역전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침체는 지나봐야 알겠지만 경기 둔화의 신호로 인식하는 것은 맞아 보인다"며 "내년에는 부동산 시장 악화와 민간소비 여력이 줄어들면서 장기 국채 금리는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경기침체 증거는 충분치 않다고 본다"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 총재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상반기에는 경기가 많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 경제성장률을 1.7%로 전망했는데 경기침체로 가느냐, 아니냐의 경계선에 있다"고 말했다.
유효송 기자 valid.so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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