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미분양이 집어삼킨 대전... “1년만에 4억원 뚝 떨어지기도”
직접 가보니 ‘변두리’... 고분양가에 ‘금리인상’ 직격탄
대장주 아파트도 2~3억씩 하락
“최고 경쟁률 기록한 갑투(갑천2 트리풀시티 엘리프) 분양가가 3.3㎡당 1400만원도 안 되는데, 이렇게 변두리 끝에 있는 아파트를 누가 1540만원에 삽니까. 한 마디로 가성비가 안 나와.” (대전 유성구 계산동 A공인중개사)
전국 곳곳에 눈발이 날리던 지난 22일,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35분 남짓 걸려 유성구 학하동 ‘포레나 대전 학하1·2단지’ 공사현장에 도착했다. 학하택지개발지구의 가장 맨 끝에 위치한 곳이었다. 공사 현장 뒤로는 계룡산에서 갈라져 나온 크고 작은 산들이 있고, 옆으로는 대전광역시시립정신병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앞에는 임대아파트 단지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기자가 머문 30여분 동안 지나가는 사람도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지금은 말 그대로 ‘변두리’였다.
아파트 앞으로 넓게 펼쳐진 빌라촌의 공인중개 사무실도 2곳이나 폐업(임대문의) 상태였다. 바로 옆 계산동으로 넘어가서 만난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애초 분양가 산정을 잘 못 했다”면서 “뭐, 시공사도 이렇게 부동산 시장이 푹 꺼질지 알았겠나”라고 했다. 마침 ‘분양 홍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포레나 학하 전단지를 테이블에 올려 놓고 나가던 참이었다. 포레나 학하는 총 1754가구(1단지 1029가구·2단지 725가구) 중 임대를 제외한 872가구(1단지)를 일반 공급하는 대단지다.
이번 달 ‘마이너스 성적표(미분양)’를 받아 든 포레나 대전 학하1단지를 중심으로 이른바 ‘학하동발(發) 미분양’ 태풍이 대전 지역 부동산 시장에 부담이 되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분양만 하면 완판 됐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미계약 물량이 쏟아지는 등 청약 시장이 급속이 위축되고 있다.
대전시가 공개한 ‘미분양주택 현황’에 따르면 지난 11월 미분양 주택은 1853가구로 전달과 비교해 453가구(34.8%) 늘었다. 특히 5개 자치구 가운데 유성구 미분양은 한 달 만에 517가구로 707.8% 폭증했다.
학하지구는 신도시 택지 개념으로 개발됐다. ‘대전 개발’의 확장 측면에서 보면 마지막에 해당되는 지구다. 유성버스터미널 등 유성구 내 중심지에서도 4~5㎞ 떨어진 곳으로 도안신도시 옆쪽에 위치한다. 도안 우미린 트리쉐이드도 청약 마감에 실패했는데 현지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3.3㎡당 평균 1893만원이라는 ‘고분양가’를 주된 원인으로 지목했다.
전문가들은 미분양 급증의 원인으로 고금리와 함께 공급과잉을 꼽고 있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도안신도시쪽을 한 번 더 개발한 것이 학하지구”라며 “대전이 현재 물량 부담이 있다. 평상시 연간 6000가구가 공급되는데 학하지구를 중심으로 9000가구로 늘어났다. 대전 개발의 종착지 느낌인 곳인데 끝을 내기도 전에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분양이 어려운 사정은 대전 내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 대전 서구에 들어서는 한화 포레나 대전월평공원아파트은 지난 8월 청약에서 2.54대1을 기록하며 순위내 마감됐지만, 미계약 물량이 대거 나왔다. 이후 무순위 청약이 진행됐는데, 1·2단지 모두 70% 이상 결국 미달됐다.
구도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구 대전역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있는 힐스테이트선화더와이즈(주상복합아파트)도 836가구 모집에 147개 청약통장만 모였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주변이 온통 상업지구라는 점이 장점이자 한계”라며 “다만 선화구역이 대전 도심융합특구 사업지구로 지정됐고 대전역 주변도 개발이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미래 가치는 높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미분양이 이렇게 늘어난 것은 집값 하락세와도 무관치 않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12월 셋째 주 대전의 아파트 값은 일주일 전보다 0.77% 하락했다. 올해 누적으로는 8.76% 하락 중이다. 작년 같은 기간 14.32% 오른 것을 감안하면 상승분의 절반 이상을 토해내고 있는 셈인데, 이런 추세는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대전 시내 일반 아파트 가격도 적게는 2억~4억씩 뚝뚝 떨어진 상태다. 유성구 상대동 도안마을트리풀시티(9단지)에 거주한다는 김모씨는 “2012년말에 148.32㎡를 5억원 가깝게 주고 샀는데 작년 2월에 실거래가 17억원까지 갔다가 올해 8월에 12억9000만원으로 떨어졌다”면서 “상대동 뿐만 아니라 대전 시내 전체적으로 2억~4억원씩 뚝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트리풀시티9단지는 도안신도시에서 규모가 가장 큰 단지다. 지난해 12월 12억2500만원에 거래됐던 전용면적 119.77㎡ 올해 10월 9억5500만원으로 3억원 가까이 떨어졌다.
대전 신세계가 입점해 있는 등 ‘부자 동네’로 손꼽히는 도룡동 내 ‘도룡 SK뷰’도 집값 하락을 피하지는 못하는 중이다.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10월 13억4000만원에 거래된 이후 하락세를 지속하며 올해 8월에는 3억원가량 빠진 10억8500만원에 거래됐다. 이곳은 주변에 대덕연구단지와 대덕테크노밸리에 종사하는 연구인력들이 주로 거주한다.
‘대전의 대치동’으로 불리는 둔산동의 크로바아파트도 하락세를 비껴가진 못했다. 작년 8월 15억9000만원에 거래된 전용면적 134㎡가 지난 11월엔 12억원에 팔렸다. 다만 주택시장이 얼어붙은 시기임에도 거래는 끊기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달 전용면적 120㎡도 12억4500만원에 팔렸다. 이는 지난 5월 같은 평수 매매가(12억5000만원)과 비슷한 액수다.
단지 입구에 위치한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서울 사람들이 대전에서 한 곳을 사야 한다면 바로 크로바아파트라고 할 정도로 이 곳은 ‘대표적 대장주’”라면서도 “큰 평수들은 작년말보다 2억~3억씩 떨어진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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