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추운 성탄…'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되새길 때"
열여섯살 소년의 장래 희망은 농림부 장관이었다. 배고픔이 지겨웠다. 누구나 배부르게 쌀밥 먹는 세상을 바랐다. 6·25전쟁 중에 초콜릿이라도 얻어먹으려 미군의 허드렛일을 해주는 ‘하우스보이’로 지냈다. 어느 날 칼 파워스라는 미군 상사가 소년에게 물었다. “너, 미국에서 공부해볼래?” 구두를 닦으라고 하면 군복까지 다려두는 소년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것이었다.
개신교계 원로 김장환 목사(88)는 그렇게 떠난 미국 유학에서 교회를 만나면서 목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1973년 ‘미국 개신교계 대부’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서울 여의도 전도대회에서 통역을 맡으며 세계적인 목회자로 이름을 알렸다. 국내 개신교 부흥의 계기가 된 이 집회에는 약 110만명이 모여들었다. 현재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인 김 목사는 전현직 대통령이 가르침을 구하는 개신교계 ‘멘토’다. 1977년부터 현재까지 46년째 개신교 선교방송인 극동방송을 이끌고 있다.
성탄을 앞두고 지난 22일 김 목사를 서울 상수동 극동방송 본사에서 만났다. 절기상 동지(冬至)였던 이날 한파가 기승을 부리자 김 목사는 “불황으로 인해 소외된 이웃에게 이번 겨울은 더욱 추울 것”이라며 걱정을 내비쳤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인간이란 강인하면서도 참 나약하다는 걸 우리 함께 깨달았다”며 “결국 이웃끼리 의지하며 서로 도와야 하는데, 성탄을 계기로 이웃을 살필 때 종교의 힘이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미군의 도움으로 유학길에 올랐던 그가 2010년 세운 극동PK장학재단은 올해 여름까지 1380여명의 장학생에게 34억여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김 목사는 인터뷰 동안 ‘사랑’이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했다. 세대,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하고 이태원 참사라는 큰 사건도 겪은 한국 사회에 무엇보다 필요한 단어라고 봐서다.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22장 39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같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긴다면 우리가 겪고 있는 이런저런 갈등의 벽이 점차 허물어지리라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도 달라져야 한다고 봤다. 김 목사는 “요즘 교회가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고, 특히 젊은 세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기독교인들이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겸허하게 돌아보고, 교회 내에 머물 게 아니라 교회 밖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섬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내년 6월 서울 월드컵상암경기장에서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50주년 기념집회를 대규모로 열 계획이다. 그는 “그간 한국에 대형교회가 많이 생기고 교인 수도 어마어마하게 늘었지만, 종교 본연의 가치보다는 겉모습에 더 치중하는 모습도 보였다”며 “빌리 그레이엄 전도대회 50주년 기념집회가 교회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 손주 윌 그레이엄 목사가 참석할 예정이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2018년 세상을 떠났지만 김 목사와 그레이엄 목사는 여전히 각별한 사이다. 최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샬럿에 위치한 ‘빌리 그레이엄 라이브러리(기념관)’에는 김 목사의 영어 이름을 딴 다목적홀 ‘빌리 킴 홀’이 문을 열었다.
김 목사는 “빌리 그레이엄 라이브러리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약 170만명이 다녀간 기독교 명소”라며 “이곳에 한국인의 이름으로 홀이 만들어졌다는 건 그만큼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 같아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빌리 킴 홀 개관 행사 축사는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이 맡았다.
김 목사는 정치인 등 사회 지도자들이 수시로 조언을 구하는 개신교계 원로 인사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도 여러 차례 김 목사를 만났다. 김 목사는 주로 어떤 말을 들려줄까. 그는 “제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주로 그들에게 필요한 성경 구절을 전한다”며 “윤 대통령을 후보 시절 처음 만났을 때는 로마서 12장 9~16절을 들려줬다”고 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는 내용이다.
김 목사는 365일 새벽 3시에 일어나 기도한다. 늘 기도 주제는 같다. 하루빨리 통일이 돼 북한 사람들에게 주님 말씀을 전하고 싶다는 것. 극동방송이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은 북한 지역에서도 청취 가능하다.
23일로 극동방송 개국 66주년을 맞은 김 목사는 “극동방송은 국내는 물론 북방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오직 한 길만을 걸어왔다”며 “앞으로도 방송을 통해 더 열심히 희망과 사랑을 전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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