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층 노동자에게 정치는 ‘똥이거나 똥샌드위치거나’[책과 삶]

임지선 기자 2022. 12. 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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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
제니퍼 M 실바 지음·성원 옮김 | 문예출판사 | 400쪽 | 1만8000원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은 미국의 최하층 노동계급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일자리를 잃고 이집 저집 전전하며 하루를 버텨내는 것조차 힘든 이들에게 ‘정치’는 환멸의 대상이다. 저자는 그럼에도 ‘나’가 아닌 ‘우리’ ‘공동체’에서 변화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트럼프·클린턴이 맞붙은 대선정국
인종·성별 4개 집단에게 물었다
‘어느 정당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

‘가난’이라는 단어는 평면적이다. ‘가난’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현실의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충분히 꾸준하게 돈을 벌 만큼 건강한 육체를 지니지 못했고 전쟁이든 부모의 학대든 무엇이든 정신적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마약에 손을 대고 감옥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은 입체적이다. 가난은 인생을 급정거시킨다. 가족을 파괴하고, 범죄에 얽히게 한다. 개인의 삶이 멈춘다. 사회로부터도 격리된다. 이들 최하층 노동계급의 목소리는 잊힌다. 이들에게 ‘정치’를 묻는 일이 가능할지 책을 펼치기 전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은 미국의 가난한 노동계급의 삶과 정치적 태도를 입체적으로 탐구한다. 저자 제니퍼 M 실바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폴 오닐 공공 및 환경 대학’ 조교수는 한때 무연탄 광산 지역이었던 펜실베이니아의 작은 마을을 찾아간다. 이 지역의 4개 마을을 묶어 가상의 이름인 ‘콜브룩’이라고 부른다. 100명 넘는 탄광촌 광부의 자녀와 이민자들을 만난다. 저자는 백인 남성과 여성, 흑인 및 라틴계 남성과 여성 등 네 집단으로 나눠 하나씩 조명한다.

백인 남성 안토니오는 베트남전쟁에 징집됐다 돌아왔다. 미국 사회는 베트남전쟁이 잘못됐다고 한다. 미국을 지켰다는 안토니오의 자부심은 훼손됐다. 고립감은 커졌고 술로 연명했다. 누군가를 지키겠다는 산업사회의 남성 노동계급성이 파편화됐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와 소수인종에 대한 우월감으로 이를 전이시킨다. 항시 전투태세인 이들은 고등학교 풋볼 경기, 샌드위치 가게에도 총을 지니고 간다. “생계비를 벌고 가족이 함께 지내는 것과 같이 산업계의 남성성을 증명하는 근간이 흔들리자, 다른 것들을 위험에서 보호하는 일이 훨씬 중요해진 게 아닌가 싶다.”

노동계급 백인 여성들은 어떻게든 전통적 ‘어머니’ ‘아내’ 역할을 지키려 악전고투하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정 내 폭력과 학대를 힘겹게 버텨낸다. 이들이 겪는 가족의 붕괴와 외로움을 완충해주는 교회, 상담사, 지지그룹은 ‘찰나’에 그친다. 알코올과 헤로인의 유혹에 넘어갔다 극복하기를 반복하고 결국 내부로 침잠한다.

흑인이나 라틴계 남성들에게 콜브룩의 의미는 백인들과 약간 다르다. 자신은 여전히 수치스러운 과거를 살고 있지만 아이들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발판이 될 곳으로 여긴다. 흑인 및 라틴계 여성들도 홀로 설 가능성을 모색한다. 하지만 여성이든 남성이든 피부 색깔 때문에 사소한 잘못 하나에도 쉽게 일자리를 잃는다. 주택 임대료가 없어 길거리에 산다. 딸에게 성적 학대를 하는 남편과 계속 사는 이유도 집이 없어서다.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은 미국의 최하층 노동계급 사람들을 직접 만난다. 백인 남성과 여성, 흑인 및 라틴계 남성과 여성 등 네 개 집단을 나눠 생생한 목소리를 전한다. 이들은 미묘한 차이를 보이지만, 주류 정치제도에 환멸을 느끼고 음모론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은 비슷하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가난을 온몸으로 겪어내는 현실 속
주류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

인종·성은 다르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주류 정치제도에 환멸을 느끼고 음모론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저자는 만나는 사람에게 누구에게 투표할지,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푸드 스탬프(미국의 저소득층 식비 지원제도)를 지지하는지 등을 세세히 묻는다. 저자가 이 지역을 찾은 2015~2016년은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이 맞붙은 대선 정국이었다. 여러 분석이 나왔던 것처럼 일자리를 잃은 백인 최하층 노동계급에선 트럼프 지지도가 높다. 그러나 누굴 지지하든 모두의 전제는 하나였다. ‘우리들을 위한 정치인은 없다.’ ‘정치인은 돈 많은 사람을 위해 일한다.’ 책에 나온 표현으로 쓰자면 이때의 선택은 “똥이냐 똥 샌드위치냐”를 묻는 질문과 같다.

사회의 아웃사이더인 이들은 정부가 9·11테러를 조작했고 인구를 통제하기 위해 수돗물에 불소를 넣었다고 믿는다. 공적 담론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대부분 자기계발이나 개인 의지를 끌어올리는 데 집중한다. 모차렐라 치킨 레시피만이 유일한 위로가 된다는 레이첼처럼 말이다.

<사라질 수 없는 사람들>은 미국 사회를 서술하지만 한국 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는 개인을 구원하지 못하고, 개인의 노력만 강조한다.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었지만 5개월 연체된 가스비 고지서와 함께 세상을 등진 이들이 발견된다. 정수남 전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제에 “정치의 실종과 정치적 냉소주의는 사회 발생적 문제를 주관적 심리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오늘날 범람하는 치료요법, 상담, 심리 클리닉 등의 치유 산업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와 친화력을 갖는다. 사회적 모순에서 자아의 내면 세계로 눈을 돌려 거기서부터 해법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이들의 고통을 절절하게 다룬 저자
“공동체를 꾸릴 때 변화는 찾아온다”

책을 펼치기 전 첫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정치 영역을 아예 부정하는 이들 앞에서 ‘우리’ ‘공동체’ ‘정치’ ‘행동’이라는 단어를 꺼내긴 쉽지 않다. 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가 ‘소외된 노동계급의 목소리에서 정치를 상상하기’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해법은 ‘상상’해야만 하는 것이다. 저자는 상상의 단초를 중독자 가족을 지원하기 위한 지역 커뮤니티 모임에서 찾는다. 인종, 성별 상관없이 모여 “죽은 지역 사회에 어떻게 생명을 불어넣죠?”라고 묻는 순간, 저자는 정치의 감각을 찾아보자고 한다. “변화의 가능성은 고통 당사자들이 공동체를 꾸릴 때 찾아온다.”

책 말미에 노동계급이었던 저자의 아버지가 뒤늦게 대학에 간 이야기가 나온다. 시험을 보지 못할 상황에서 아버지의 편의를 봐주지 않던 대학 강사가 사회학자 딸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그의 요구를 들어줬다고 한다. 저자는 “계급 사다리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가하는 무심한 잔인함에는 무지한 채로 사회 정의만 부르짖는 엘리트 자유주의자들의 위선에 예민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흙수저의 자수성가 이야기인 <힐빌리의 노래>에 분노한다. 경제적 불평등의 고통과 사회 장애물을 못 본 척했다는 것이다. 책은 최하층 노동계급의 생애와 고통을 절절하게 다룬다. 우리도 ‘공동체’라는 해법을 들고서 소박한 가능성이라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정 교수의 말처럼 “연구자, 활동가, 노동계급을 위한 정치를 고민하는 모든 독자”가 읽어봐야 할 책이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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