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더니…뜯고 씹고 맛보고 [영상]
지난해 강원도 화천 한 사육곰 농장의 반달가슴곰 십여 마리를 구조한 시민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가 2022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곰들에게 특별한 이벤트를 선사했다. 단체들은 지난해 6월부터 곰들을 돌보며 국내 최초 곰 생크추어리(야생동물 보금자리)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수의사이자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인 최태규씨가 이날 프로그램의 의미를 설명하며 사육곰 정책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주
초록색과 빨간색의 포장지가 인간에게는 성탄절을 떠올리게 하지만, 곰에게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확실한 것은 성탄절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점이고, 곰들에게 제법 새로운 경험이라는 것이다.
곰보금자리프로젝트와 동물권행동 카라는 연말을 맞아 지난 17일 돌보고 있는 사육곰에게 작은 즐거움을 선물했다. 선물은 바로 풍부화다. 풍부화(enrichment)란 다양한 냄새, 촉감, 맛 등을 이용해 동물에게 신체적, 정신적 자극을 주어서 동물이 몸과 마음을 기분 좋게 움직이도록 하는 일을 말한다.
곰이라는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각기 다른 풀과 미생물, 물질을 감각하며 지루할 틈 없는 자극을 받는데, 동물원이나 농장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생활하는 곰은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자극 안에서만 일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풍부화는 야생동물을 가둔 인간이 해주어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맘껏 찢으라고 준비한 ‘선물’
포장지와 종이상자가 곰에게 위험하지 않은 재질인 것을 확인하면 좋은 풍부화물이 될 수 있다. 풍부화물은 대체로 망가질 것을 염두에 두고 동물이 최대한 ‘오랫동안, 어렵고, 신나게’ 망가뜨릴 것을 예상하며 제작한다.
먼저 개 장난감으로 잘 알려진 제품 ‘콩’(Kong)을 활용했다. 미국의 한 회사가 동물이 먹이를 먹는 시간을 최대한 길게 만들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동물원 동물도 쓸 수 있을만큼 무척 튼튼한 제품도 있다. 우리는 콩 안쪽 구멍에 꿀과 견과류, 말린 과일을 넣었다. 너무 달아서 식단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훈련용으로만 사용하는 식재료다. 속이 채워진 콩은 짚과 함께 종이상자에 숨겼다. 그 후 아마도 곰보다는 인간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질 알록달록한 포장지로 한 번 더 상자를 포장했다.
몇 명의 활동가가 선물을 제작하는 동안 나머지는 곰숲에 눈사람 대신할 ‘눈곰’을 만들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산타가 선물을 놓듯 열심히 포장한 성탄절 선물을 눈곰 옆에 살포시 배치했다. 그럴듯하다. 곰에게는 포장지의 알록달록함보다 그 매끌매끌한 촉감과 은근한 화학물질의 냄새가 더 중요한 정보일 것 같다. 우리가 돌보는 곰들은 새로운 사물에 두려움을 잘 느끼지 않는데, 이는 동물복지 수준이 괜찮다는 의미다.
갇힌 곰들의 시간을 채워주는 법
이날 방사장에서 선물을 즐긴 곰은 ‘어푸’다. 물에 얼굴을 담그고 어푸어푸 물놀이를 즐겨서 ‘어푸’라는 이름이 붙었다. 방사장에 나온 어푸는 거침없이 선물상자로 직진했다. 포장지의 냄새와 촉감을 잠깐 느끼고 그 안의 달달한 꿀냄새를 맡았다. 발톱과 이빨로 북북 찢는다. 곰은 찢는 게 맞다. 대체로 풍부화물은 만드는 시간보다 동물이 이용하는 시간이 훨씬 짧다.
어푸는 순식간에 종이상자 안의 짚을 헤집고 콩을 찾았다. 콩을 두 앞발로 꼭 쥐고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속이 빈 물체 안의 먹이를 ‘쏟는 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두 손으로 꼭 쥐는 행동이 익숙치 않아서 이마 위에 콩을 떨어뜨린다. 그렇게 집중을 하는 동안 어푸의 시간은 가장 빠르게 사라진다.
아직 한국은 국제적멸종위기종인 곰을 기르고 죽여서 웅담을 채취하고 판매하는 것까지 모두 합법이다. 이 사실을 처음 안 사람들의 표정은 대체로 인지부조화에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2022년에 곰을 잡아먹는 것이 합법인 나라라니! 환경부는 지난 1월, 시민단체, 사육곰협회와 함께 곰 사육 종식을 선언했지만 아직은 선언에 그치고 있다. 곰 사육을 금지할 법안이 지난 5월 발의되었는데 이번 회기엔 계류됐다. 국회는 무관심하다. 그까짓 곰 몇 백마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곰을 잡아먹는 나라라니!
녹색연합,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자유연대,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제도적으로 사육곰 산업을 끝낼 수 있는 ‘곰 사육 금지 및 보호에 관한 특별법안’ 통과 국민동의청원을 11월22일부터 12월 23까지 받았다. 동의한 사람이 5만명을 넘으면 국회 소관 상임위에 부쳐지지만 이번 청원은 21,560명으로 50%를 채 넘기지 못했다.
사육곰 문제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기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육곰 문제를 다루는 단체들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화천 곰들처럼 전국 300여 마리 사육곰들도 ‘성탄절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란다.
글 최태규 곰보금자리프로젝트 대표·수의사, 사진 곰보금자리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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