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당 ‘500㏄ 200잔’도 안마셔…독일인들 맥주와 헤어질 결심

한겨레 2022. 12. 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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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TREND]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맥주 양조장
맥주 소비가 급격히 줄면서 독일의 전통적 맥주 양조장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독일 바이에른 바이헨슈테판 맥주 양조장. REUTERS

맥주, 한때 독일인이 가장 좋아했던 음료가 지금은 건강에 좋지 않고 쿨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수년간 소비가 계속 줄고 있다. 홉과 맥아의 가격도 오르고 있다. 많은 소규모 양조장에 이는 종말을 의미한다.

조금만 더 있었으면 스벤 비쇼프(54)는 모두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비쇼프 필스(Bischoff Pils), 비쇼프엑스포트(Bischoff-Export), 펠처 헬(Pälzer Hell) 등 그의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말이다.

“정말 (사업 전망이) 좋아 보였다.” 21년 전 가업인 맥주 양조장을 인수한 뒤 비쇼프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을 감행했다. 이탈리아, 프랑스 심지어 중국까지 진출했고 흑자를 냈다. 비쇼프는 이렇게 아버지가 쌓은 1천만유로(약 138억원)의 부채를 차근차근 갚아나갔다. 그의 아버지는 다시 하나가 된 독일인의 통일 뒤 ‘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팔츠 지역 빈바일러에 있는 가족회사의 연간 생산량을 13만헥토리터(1300만ℓ)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독일인의 갈증은 희망한 것만큼 크지 않았다.

국가 지원 없이 버텨야 했던 코로나19 대유행 위기에도 비쇼프는 낙담하지 않았다. 그는 땅을 조금 팔아 자금을 확보할 생각으로 투자자를 찾았다. 금리인상으로 자금조달에 실패했지만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2022년 8월 새로운 땅 구매자에게 두 번째 매각을 시도했다. 하지만 에너지, 홉 그리고 화물운송용 팰릿 가격이 치솟자 땅 구매에 관심을 보였던 마지막 사람마저 놀라서 거래를 포기했다. 그가 비쇼프에게 건 전화는 딱 4분이었다. 그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비쇼프는 남아 있는 몇 무더기의 맥주 상자 앞을 지나갔다. 어린 시절 그는 이 맥주 상자로 동굴을 만들고, (양조장에서) 훔친 루트비어(식물 뿌리나 열매 과즙에서 추출한 향유를 탄산수·설탕 등과 섞은 음료)를 마셨다. 그는 슬펐다. 10년 전만 해도 팔츠 지역에는 양조장이 10여 곳 있었는데 이제 곧 2곳만 남게 됐다고 비쇼프는 한숨을 내쉬었다. 5대째 이어진 가족기업이 결국 파산했다. 오래된 구리탱크와 그 옆의 은색 탱크가 모두 비었다. 모든 스위치가 꺼졌다. 비쇼프는 “무덤처럼 조용하다”면서 맥주 업계는 “와인처럼 현대화할 기회를 놓쳤다”고 우울하게 말했다. 와인은 “건강하고, 개성 있고, 쿨한” 이미지인데 맥주는 그저 “누렇고, 값싸고, 축축”할 뿐이다.

2022년 9월29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세계 최대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에서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 REUTERS

5대째 이어온 양조장 폐업

맥주는 끝났다. “고향은 맥주가 필요하다” 같은 가르미슈(Garmisch) 맥주회사들의 활기찬 구호에 이끌리는 사람이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 헬레스, 밀맥주, 레모네이드맥주, 크래프트맥주, 라들러 등 지난 몇 년간 점점 더 짧은 간격으로 독일 전국을 휩쓸었던 그 모든 유행은 양조학자 토마스 베커의 말처럼 기껏해야 일반적 추세를 늦췄을 뿐 멈출 수는 없었다. 독일인은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알코올음료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독일은 점점 더 고령화하고 노인은 술을 덜 소비한다. 젊은이는 여전히 술을 마시지만 맥주를 예전처럼 많이 마시지 않는다. 건강한 생활을 추구하는 흐름은 주류 사업을 해쳤다. 사람들은 취한 기분에 젖어 있기보다 가족과 직장을 위해 언제라도 준비돼 있기를 바란다. 수년 전부터 맥주의 1인당 소비량이 줄었고 현재는 연간 92ℓ에 도달했다. 과거 맥주 업계에서 ‘위험 하한선’으로 봤던 100ℓ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바이로이트에서 자기 이름을 딴 ‘마이젤 밀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는 예프 마이젤도 맥주 업계에 힘든 시기가 닥칠 것으로 예상한다. 회사에는 투자가 필요한 목록이 엄청나게 쌓이지만 준비금이 없었다. 이제는 에너지, 원재료, 임금 등 모든 부분에서 비용이 올랐다. “상자당 2~3유로 정도 가격을 올려야 하지만 유통업계는 이에 동참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양조업자가 이 부담을 져야 한다.” 많은 맥주 업체에 이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코로나19 대유행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했다. 음식점이 부분적으로 몇 달 동안 문을 닫았던 2년 동안 일부 맥주회사는 매출이 3분의 1로 줄었다. 이제 인플레이션이 소형 업체를 죽이고 있다. 요즘 독일 각지를 여행하며 맥주 양조 전문가를 만나면 상황의 심각성을 실감할 것이다.

우도 바인가르트는 독일에서 유일한 시립 맥주 양조장의 마스터 브루어다. 그는 프랑켄 지역의 소도시 슈팔트의 오래된 곡물창고를 개조한 관광안내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맥주로 유명한 바이에른주 북부 도시 슈팔트의 양조장은 1879년부터 시가 소유했다. 조명이 비치는 맥주잔, 장식용 맥주통, 프린트된 티셔츠가 놓인 관광안내소는 맥주의 대성당처럼 보였다. 자체 양조장에서 생산한 전용 맥주를 내놓는 맥주 호텔도 구도심에 생길 예정이다. 곡물창고 관광안내소에서는 무료 ‘시음 맥주바’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독일에서 유일하다”고 자랑하며 바인가르트는 헬레스 맥주를 주문했다.

바인가르트의 세상은 세 가지 시간 척도로 나뉜다. 첫 번째 시간대는 코로나19 유행 전으로, 모든 것이 다 좋았다. 그가 만드는 맥주를 포함해 바이에른 맥주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필스너 맥주의 시장점유율을 잠식하고 있었다. 두 번째 시간대는 팬데믹 기간이다. “휴~.” 바인가르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점이 문을 닫고 축제가 취소됐다. 매출이 급락했다. 그 모든 소란이 끝난 지금은? 바인가르트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맥아는 80%, 팰릿은 150%, 코르크는 40%, 병과 상자는 30% 이상 가격이 올랐다. 생산 전반에 10만유로 단위의 비용 증가를 기록했다. 이로 인해 중간 규모 기업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 이후 궁지에 몰렸던 사람들이 시장에서 사라지고 있다.”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를 위해 맥주 브랜드 파울라너(Paulaner) 양조장이 준비한 거대한 맥주잔. REUTERS

고령화도 소비 감소에 한몫

바인가르트의 양조장이 시 소유가 아니었다면 지난 20년간의 수익을 모두 회사에 투자할 수 없었을 테고, 힘든 시기를 위한 준비금으로도 사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바인가르트는 말했다. 상황이 정말 좋지 않다. 하지만 그는 다행히 위기에 투자할 수 있었다. 특히 소규모 양조장은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시 소속 양조인은 말했다. 자신의 뿌리, 지역 그리고 정체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 있는가?

슈팔트 맥주에서는 사장도 연출의 일부다. 그는 스스로 맥주 소믈리에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얼마 전 그는 독일연방대통령이 주최하는 시민축제(Bürgerfest)에 바이에른 맥주 대사로 참여했다. 맥주로 가득 찬 트럭을 타고 갔다가 빈 트럭으로 돌아왔다. 희망이 보였다. “한 잔 더 주겠어요?” 바인가르트는 흥겹게 ‘시음 맥주바’의 동료 직원에게 외쳤다.

뮌헨공과대학에서 양조학을 가르치는 베커는 맥주가 엄격하게 계산된 사업이 됐다고 말한다. ‘에너지집약적인 가열과 냉각’은 맥주 양조뿐만 아니라 전체 맥주 시장에서도 진행된다. 비용을 통제하지 못하는 업체, 능숙한 마케팅으로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업체, 노인들의 고향에 대한 소속감에 기대어 맥주 한 상자를 20유로에 파는 업체는 대기업과의 가격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전망이 좋지 않다”고 베커는 말했다.

특히 중간 규모의 양조장, 즉 연간 생산량이 20만~40만헥토리터인 회사는 ‘드라마틱한 과잉생산’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제 매일같이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베커는 말했다.

아이펠산맥의 작은 마을, 크롬바흐의 녹색 언덕 위에 있는 독일에서 가장 큰 개인 양조장은 ‘변화하는 시장’을 기회로 삼기로 결심했다고 사주 베른하르트 샤데베르크는 말했다. 그들의 전략은 위기에 빠진 지역 업체와 해당 업체에 속한 식당을 동시에 인수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광고만 약간 하면 다시 살릴 수 있는 오래된 맥주 브랜드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메인 브랜드인 크롬바커는 이제 벡스(Beck’s)나 바르슈타이너(Warsteiner)처럼 텔레비전(TV) 광고를 하는 맥주와 민감한 소비자를 두고 싸워야 한다. 현재 판촉 가격인 상자당 10~12유로 이상 판매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맥주를 덜 마신다면 최소한 우리 회사 맥주를 마셔야 한다”고 샤데베르크는 말한다.

크롬바커도 최근 몇 년 동안 아주 힘들었다. 마을 주점은 문을 닫고 사회 분위기도 바뀌었다. 게다가 에너지 비용까지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샤데베르크는 그의 미래를 ‘무알코올’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무알코올 맥주, 레모네이드 또는 이 둘의 혼합물로 벌어들인다. 언젠가 이 부서가 그룹의 핵심이 될 것이다. 샤데베르크 자신도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이 아니다. 연간 약 550만헥토리터의 생산량을 함께 책임지는 그의 여동생 페트라는 무알코올 분야에서 그보다 훨씬 앞선다.

이 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까? 홀거 뵈슈는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계속 술을 마신다. 맥주를 더 이상 마시지 않을 뿐이다. 독일에서 가장 큰 디스코텍 ‘인덱스’(Index)의 사장인 그는 술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다. 쉬토르프에 있는 5천㎡ 크기의 업소는 24개 바를 갖췄고 최대 5천 명까지 수용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맥주가 매출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10%에 불과하다.

뵈슈는 오래전에 마지막 맥주탭(Beer Tap)을 철거했다. 업소 카운터에서는 주로 보드카와 에너지음료가 담긴 얼음 양동이가 팔린다. 젊은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릴 사진 찍기 좋은 것”을 원한다고 뵈슈는 말했다. 맥주는 “쿨하지 않으며” 크롬바커 같은 대량생산 제품은 “어디서나 살 수 있어 매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베를린노이쾰른에서는 야심 찬 확장을 꿈꿨다가 좀더 조심스럽게 다른 방향으로 시도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베를리너 베르크’(Berliner Berg) 맥주는 독일 국내 시장을 정복하고 국외로 진출하려 했다. 지금 이 스타트업 양조장은 지역으로 방향을 전환했다고 공동대표 미헬레 헹스트는 말했다.

스토리 있는 맥주가 대안

2021년 3월부터 헹스트는 더 이상 다른 양조업체와 협력하지 않고 자체 발효조에서 양조한다. 홉은 독일 남부에서 주문하고 보리는 작센의 농부에게 의뢰해 재배한다. ‘맥주는 여행할 필요가 없다’는 새로운 모토는 자신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좋은 일을 하려는 사려 깊은 수도 베를린의 고객에게 딱 맞는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성장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헹스트는 말했다.

그들의 스토리는 효과가 있었다. 슈퍼마켓 에데카(Edeka)에 이어 할인마트 레베(Rewe)도 1만헥토리터로 생산량을 늘리는 이 회사의 제품을 매대에 진열할 계획이다. 헹스트는 베를린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를 기대한다. 대기업의 맥주가 단조롭고 특징이 없어질수록 더 많은 사람이 대안을 찾으리라는 게 그의 희망이다. 한 상자 가격이 10유로보다 훨씬 비싸더라도 말이다.

지몬 부크 Simon Book, 크리스티나 그니르케 Kristina Gnirke <슈피겔> 기자

번역 황수경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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