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언’ 크리스마스 녹일 세가‘지’ 선물 … ‘부활의 인지’ ‘승리의 민지’ ‘불굴의 수지’ [오태식의 골프이야기]

오태식 골프포위민 기자(ots@mk.co.kr) 2022. 12. 23.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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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지. <사진 AFP 연합뉴스>
지금으로부터 2022년 전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 아기 예수의 탄생을 경배하기 위해 동방박사 세 사람이 마구간을 찾는다. 그들의 손에는 당시 가장 귀하다는 세가지 선물,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강력한 추위가 찾아와 ‘꽁꽁 언’ 2022년의 크리스마스. 다시 생각해도 기분 좋은, 추위를 녹일 골프 선물 세가지가 있다. ‘부활의 인지’와 ‘승리의 민지’ 그리고 ‘불굴의 수지’다.

◆ 메이저 퀸의 귀환 … 부활의 인지

전인지(28)의 세계랭킹은 2020년 한때 62위까지 하락했다. 2015년 US여자오픈과 2016년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으로 ‘메이저 퀸’ 소리를 듣던 전인지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추락이었을 것이다. 2018년 10월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이후 우승을 더하지 못했던 전인지는 그렇게 조용히 경쟁의 무대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올해 6월 말 3년 8개월 만에 거둔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 우승으로 부활한 전인지는 국내 골프팬에게 2022년 최고의 선물이 됐다. AIG 여자오픈에서도 연장 접전 끝에 준우승을 차지한 전인지는 메이저 대회에서 강한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인지는 올해 총 267만 달러를 획득해 처음으로 시즌 상금 200만달러 돌파하며 상금랭킹 3위에 올랐고 세계랭킹에서도 2018년 4월 이후 4년 4개월만에 톱10에 재진입해 지금은 8위에 올라 있다. 메이저 퀸의 ‘화려한 귀환’이라고 할 만했다.

그의 부활은 그가 늘 강조하는 ‘전인지다운 골프’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전인지는 한동안 그 ‘전인지다운 골프’를 찾지 못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전인지다운 ‘긍정의 골프’, ‘미소의 골프’를 하지 못하고 성적에 연연할 뿐 아니라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기나긴 슬럼프의 시간을 지냈다. 골프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도 그때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전인지다운 골프를 찾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긴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다. 결국 전인지는 ‘전인지다운 골프’를 찾았고 미소를 지으며 부활의 샷을 날릴 수 있었다.

‘전인지다운’이란 건 그게 골프든, 삶이든, 선행이든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 또 즐겁고 신나게 몰입하는 것이다. ‘전인지다운’ 골프를 찾은 전인지의 앞으로 행보가 더 기대된다.

박민지.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 제공>
◆ 우승을 부르는 샷 … 승리의 민지

지난 해 박민지(24)는 상반기와 하반기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다. 상반기에는 6승을 거뒀지만 하반기로 가서는 1승도 챙기지 못했다. ‘화룡점정’의 시즌을 보내지 못하고 ‘상후하박’의 시즌으로 마감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올해 박민지의 우승 패턴은 완전히 달라졌다. 상반기 3승, 하반기 3승으로 고른 우승 분포를 보였다. 같은 6승이지만 2021년보다 2022년이 훨씬 내용이나 질적인 면에서 좋다.

하반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박민지는 가을에 약한 징크스가 있었다. 상반기 3승까지 총 13승 중 9승이 봄에 나왔고 여름에도 세차례 정상에 올랐지만 가을에는 딱 한번 우승한 것이 전부였다. 가을은 박민지에게 ‘잔인한 계절’이었다. 월 별로 보면 6월에 월 최다인 4승을 거뒀고 5월 3승, 4월 2승, 8월 2승, 그리고 7월과 11월에 각 1승씩 챙겼다.

하지만 하반기에 들어선 박민지는 9월과 10월 그리고 11월에 각 1승씩 3승을 거두며 통산 승수를 16승으로 늘렸다. 박민지는 어느 순간 기사를 통해 9월과 10월에 우승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그게 우승에 대한 동기를 유발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가을에 약한 징크스를 털어냈다.

박민지는 통산 16승을 거두는 동안 준우승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7차례 밖에 기록하지 않았다. 특히 12승을 거둔 최근 2년 동안 준우승이 세번 뿐이라는 사실은 우승에 대한 그의 승부 근성이 얼마나 강한 지 잘 보여준다. 박민지의 샷은 우승을 부르는 샷인 것이다.

박민지는 “작년 성적이 워낙 좋다보니 사실 부담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좋은 성적을 냈다”며 “너무 행복하고 지금이 제게는 전성기인 것 같은데, 내년에도 지금처럼 유지하면서 잘 하고 싶은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또 “내년 LPGA 메이저 대회에는 모두 출전할 생각”이라며 “미국으로 전지훈련을 갈 계획인데, 체력 훈련도 많이 하고 미국 잔디에도 적응하면서 모든 면에서 강해져서 돌아올 것”이라고도 했다. 2023년 박민지의 바람이 얼마나 강하게 불 지 잔뜩 기대를 모으게 한다.

김수지. <사진 KLPGA 제공>
◆ 포기를 모르는 전사 … 불굴의 수지

‘12월의 KLPGA’ 대회였던 하나금융그룹 싱가포르 여자오픈 2라운드.

김수지(26)는 경기를 마치자마자 퍼터부터 챙겼다. 그리고 곧바로 연습 그린으로 갔다. 뜨거운 빛을 내리쬐던 태양이 서서히 그 힘을 잃어가고 있는 늦은 시간인데도, 김수지는 퍼팅 연습에 몰입했다. 그날 그의 아이언 샷은 핀을 향해 팍팍 꽂혔지만 퍼팅은 영 말을 듣지 않았다.

2023시즌 개막전으로 열린 싱가포르 대회에서 김수지는 하마터면 컷 탈락 할 뻔 했다. 첫날 버디 2개, 보기 2개, 더블보기 1개를 기록해 2오버파 74타 공동74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2라운드에서는 5타를 줄이고 넉넉히 컷오프 선을 넘어 공동39위까지 치고 올랐다. 그리고 최종 3라운드에서 대반격을 시도해 적어도 ‘톱10’에 들겠다는 각오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악천후로 최종일 3라운드가 취소되면서 그의 계획은 성사되지 못했다. 그래도 김수지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날 늦은 시간까지 했던 퍼팅 연습은 언젠가 보답을 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수지는 늦게 핀 꽃이다.

루키 해였던 2017년 상금랭킹 37위를 시작으로 2018년 상금 45위, 2019년 상금 34위, 그리고 2020년에는 상금랭킹 84위까지 떨어졌다. 가장 힘들었던 2020년 6개 대회 연속 컷오프도 당해봤다. 평범한 선수가 우승 한번 없이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지는 그런 길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시드전 본선에서 6위를 기록하며 ‘돌아온’ 김수지는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다. 그리고 그의 골프 인생을 완전히 뒤바꾼 생애 첫 우승이 찾아온다. KG · 이데일리 레이디스 오픈에서 ‘114전 115기 우승’을 만들어 낸 것이다. 첫 승을 차지한 이후 불과 한 달 만에 다시 하이트진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면서 톱골퍼 반열에 올랐고 2022년에도 하반기에만 2승을 몰아치면서 대상포인트 1위, 평균 타수 1위, 상금랭킹 2위라는 거대한 족적을 찍었다.

김수지의 성공스토리 배경에는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있다. 2022년 2승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찾아온 ‘역전 우승’이었다. OK금융그룹 박세리 인비테이셔널 첫날 이븐파 72타 공동37위로 시작했지만 결국 우승으로 연결했고 곧바로 이어진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에서도 첫날 공동27위로 출발했지만 역시 최종일 우승으로 이어갔다.

포기할 줄 모르는 ‘불굴의 수지’는 ‘더 강한 수지’가 되기 위해 1월 베트남으로 떠나 혹독한 동계훈련을 소화할 계획이다. 최근 몇 년의 경험을 통해 땀과 노력의 힘을 제대로 알게 된 김수지가 2023년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 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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