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접촉한 親文, 미국 가서 이낙연 만나려는 非明

이원석 기자 2022. 12. 2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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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사법 리스크’ 속 커지는 민주당 계파 균열…김경수·김동연 접촉 등 물밑 움직임 분주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윤석열 정부의 정치 탄압"이라며 같은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갖고 있는 생각과 내놓는 해법은 저마다 다르다.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직면한 더불어민주당 내 서로 다른 계파의 동상이몽(同牀異夢)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계파와 상관없이 '정부·여당과 검찰의 탄압 속에서 똘똘 뭉쳐야 한다'고 합심했던 민주당이다. 그러나 불과 한두 달 새 최측근들이 구속 기소되는 등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하자 기류가 바뀌었다.

당장 이 대표를 향한 당내 공개 비판부터 늘어났다. 거취 결단을 이야기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친명(親이재명)계는 '일부의 목소리'라며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사법 리스크가 당장 해소될 만한 여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작은 균열이 커져 둑이 터지는 건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특히 검찰 수사의 진척 상황에 따라 균열은 삽시간에 분열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친명계는 여전히 단일대오를 강조하며 당내 기강을 잡으려 애쓰고 있지만, 계파 간 각자도생과 경쟁은 이미 시작된 모습이다.

겉으로 보기엔 아직 작은 파도가 일렁이는 정도지만, 각 계파의 움직임은 물밑에서 상당히 활발하다. 마땅한 구심점이 없는 게 최대 고민인 친문(親문재인)계는 옥중에 있는 친문 적자(嫡子) 김경수 전 지사를 띄우고, 김부겸 전 총리 등 당내 합리적 인사들과 접촉하는 등 새 구심점 찾기에 나선 모습이다. 당내 대표적 비명(非이재명)계인 친낙(親이낙연)계는 오는 1월 미국에 체류 중인 이낙연 전 대표를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가 2022년 6월7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지지자들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길고 깊은 겨울 와" 당 결집 강조 

사법 리스크는 사방에서 이 대표를 겨누고 있다. 이 대표의 최측근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구속 기소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FC 기업 후원금 의혹 등을 수사하는 검찰의 칼끝은 결국 이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이 외에도 대북 송금 등 각종 의혹에 휩싸인 쌍방울그룹에 대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도 종국엔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 이 대표와 연결된다는 시각이 강하다. 이 대표가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자인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며 허위 사실을 공표했다는 의혹을 받는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 또한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선 각종 의혹에 대해 검찰이 이 대표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찾거나 혐의를 입증하는 게 만만치 않을 거란 관측도 적지 않다. 특히 혐의가 가장 무거운 대장동 의혹이나 성남FC 의혹은 기소가 이뤄지더라도 시간이 꽤 걸릴 거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어찌 됐든 애가 타는 건 이 대표 측일 수밖에 없다. 검찰이 이 대표의 이름을 띄워놓고 수사가 지연되는 것만으로도 사법 리스크는 증폭되기 때문이다. 이 대표 역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2월19일 늦은 밤 트위터에 "길고 깊은 겨울이 온다. 추울수록 몸을 서로 기대야 한다. 동지 여러분,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내자"고 썼다. 앞으로도 장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사법 리스크 상황 속에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로 풀이됐다.

친명계 내에선 당이 분열 수순으로 가는 흐름을 막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 대표의 메시지처럼 통합과 결집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반대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복당을 지난 12월19일 허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대승적·대통합 차원에서 박 전 원장의 복당을 수용하자는 이 대표의 의견에 대해 최고위원들께서 수용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친문과 비명계 내에선 친명계의 이러한 분위기 조성에 동참하지 않는 기류가 꽤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법 리스크뿐만 아니라 오르지 않는 당 지지율 등 이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도 함께 커지고 있다. "이 대표가 죄가 있거나 이 대표 주변(측근)에서 범죄를 했다면 단일대오 지키는 게 민주당이 망하는 길"(지난 12월12일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이라고 했던 친문 김종민 의원은 12월20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나와선 "새로운 전략과 대안, 희망, 이런 부분에서 당대표로서의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게 걱정이지 날씨가 추운 게 중요한 게 아니다"면서 이 대표의 최근 메시지를 정면으로 꼬집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도 지난 12월2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저희가 단일대오로 뭉치지 않아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히려 몇 번 계속 말씀드리지만 전국 단위 선거에서 연거푸 패하고도 반성과 혁신을 하지 않고 비전과 리더십을 보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대해선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로 "당이 당당하게 싸울 일은 아니다"면서 "혐의가 입증된 게 없기 때문에 이 대표가 당당하게 싸워나가시길 원한다"고 말했다. 

친문계가 최근 김경수 전 경남지사, 김부겸 전 총리, 김동연 경기지사(왼쪽 사진부터) 등과 접촉하며 새로운 구심점을 찾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연합뉴스

친문, 김경수 구심점 역할 기대

이렇듯 불만 섞인 분위기는 당내 여러 계파의 물밑 행보에서 더욱 선명하게 감지된다. 취재를 종합하면 친문과 비명계는 최근 각각 결집하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친목을 위해서가 아니다. 정치권에선 '포스트 이재명'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건 친문이다. 본래 2017년 대선을 계기로 이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지난 대선과 이후 과정에서는 이 대표를 지원해온 친문 인사들 사이에선 최근 '이대론 안 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친문에겐 치명적 약점이 있다. 진영 내 구심점이 될 유력 인사가 부재한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 대선 댓글 조작 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수감 중인 친문 적자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최근 '가석방 거부'로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에 대해 친문 내에선 고무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김 전 지사는 정부가 새해 특별사면에서 자신에 대해 복권 없는 사면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자 "MB(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에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냈다. 김 전 지사의 형기는 약 5개월 남은 상황이다. 다만 피선거권이 형 집행 종료 후 5년이 지나야 생기기 때문에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문은 김 전 지사가 어떤 형태로든 구심점으로 작용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아울러 친문 인사들은 최근 당내 거물급 인사들 접촉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중 한 인사가 김부겸 전 총리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친문계 내에서 계파와 관계없이 두루 친하고 균형이 있는 김 전 총리를 이재명 대표 이후의 대안 중 하나로 생각하고 접촉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다만 김 전 총리 측은 "그가 최근 정치인들의 전화를 아예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가능성을 일축했다. 친문 인사들이 김동연 경기지사를 찾는 일도 부쩍 잦아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거론되는 인사들의 면면을 봤을 때 공통점은 합리적이고 계파색이 옅은 인사들이다. 색채가 강한 이 대표와는 대비되는 인물들로 분석된다.

또 하나의 두드러지는 움직임을 보이는 쪽은 친명계와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친낙계다. 이 대표를 향해 가장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이들이다. 친낙계 좌장인 설훈 의원은 사법 리스크에 휩싸인 이 대표가 거취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그는 지난 12월16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당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고 당이 곤란한 처지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명명백백히 결백하다면 지금이라도 당대표를 내려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친낙계가 세를 결집하며 이미 이낙연 전 대표 등판 준비에 돌입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전 대표의 싱크탱크로 여겨지는 친낙계 중심 '연대와 공생' 포럼이 지난 11월부터 재가동된 것은 의미심장하다. 또 설 의원을 포함해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은 오는 1월 미국을 찾아 이 전 대표를 만날 계획으로 알려졌다. 설 의원은 '인사차 가는 것이고 당내 상황과는 무관한 일정'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등판 계획 등 앞으로의 행보를 논의하는 자리가 되지 않겠냐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낙연 조기 귀국 언제든 가능해"

일각에선 대장동 의혹, 성남FC 의혹 등과 관련해 검찰이 새해 초 이재명 대표 기소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이낙연 전 대표가 조기 귀국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꾸준히 나온다. 친낙계에선 "사실무근"이라며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으나, 상황에 따라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는 전망이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인사는 "아직은 상황을 완전히 예단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전 대표가) 신중한 태도일 것"이라며 "조기 귀국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당장 오늘 비행기 표를 사서라도 돌아올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취재에 따르면 워싱턴DC에 위치한 조지워싱턴대학 한국학연구소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연수 중인 이 전 대표는 연구활동 외에도 적극적으로 여러 한인 모임 등에 나가 강연하고, 책 집필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미국에서 이 전 대표를 만났던 한 인사는 시사저널에 "이 전 대표가 '계속해서 당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여러 가지 변수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아울러 당내에선 정세균 전 총리, 박용진 의원 등 또 다른 비명계 인사들의 행보도 주목되고 있다. 특히 정 전 총리는 지난 12월초 호남을 방문하며 등판 가능성이 거론되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핵심 측근인 이원욱 의원 등과 계속 가깝게 소통하며 당내 상황을 청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아직까지 겉으로 드러난 계파 차원의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성남FC 의혹을 수사하는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3부는 이 대표에게 12월28일 피의자 신분 출석 통보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에선 이 대표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기소 여부 등에 따라 당내 분열이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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