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cal Mania] 짧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은 길’

2022. 12. 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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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로11길

정동길은 언제 걸어도 운치 있다. 나무, 돌담, 붉은 벽돌 건물 등등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도 높은 곳이다. 게다가 덕수궁 정문에서 경향신문사까지 이어지는 정동길은 1900년대 ‘조선 근대의 길’이다.

덕수궁돌담길(사진 장진혁)
정동길은 구불구불하다. 덕수궁 돌담길 중간에 작은 광장이 서울시립미술관 앞이다. 여기서 길은 갈라진다. 오른편은 덕수궁과 주한미국대사관저, 직진하면 이화학교를 지나 서대문 방면이다. 그리고 정동제일교회와 시립미술관 사이로 가면 서소문, 순화동이다. 이 길이 바로 서소문로11길이다.

서소문로11길은 짧고 차 두 대가 비껴 지날 수 있는 폭이다. 정동제일교회와 신아빌딩 등 고풍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는 두 건물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바로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이다. 현대식 건물의 배재빌딩, 배재정동학술지원센터 사이에 있는 이 건물은 원래 이곳에 있던 배재학당의 동관으로 수업을 했던 교실이다. 본관은 1887년 세워져 1932년에 철거되었고 서관은 1923년에, 대강당은 1933년에 세워졌다. 이후 학교가 고덕으로 이전하며 본관을 비롯해 많은 건물이 철거되었고 서관은 이전된 부지에 복원했다. 이 동관은 1916년에 준공한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3층이다. 건물은 좌우 대칭 구조로 벽돌로 쌓았다. 외장 및 치장쌓기 벽돌구조가 뛰어나고 정면 현관과 양 측면 출입구의 부재들이 건립 당시의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 한국 근대 건축의 중요한 자료가 됐다. 무엇보다 근대 교육의 발상지가 현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곳은 배재학교가 1984년 고덕으로 이전할 때까지 근 100년을 이어온 터이다. 배재학당은 1885년에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우리나라 근대 최초의 사학이다. 동시대의 이화학당, 경신학당과 더불어 조선 근대화에 큰 이바지를 했다. 설립자는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 그는 1895년 6월에 조선에 들어왔다. 그리고 서울로 와 한달 먼저와 있던 의사 스크랜튼의 집 한 채를 사고 그 집의 방 두 칸을 헐어 학생을 받았다. 8월3일에 두 명의 학생이 입학했는데 이겸라, 고영필이다. 고종은 아펜젤러에게 사학 설립을 허락하고 특별히 교명과 간판을 내렸다. 고종은 ‘인재를 양성하라’는 의미의 ‘배재培材’를 지어주고 당대 명필 정학교에게 간판에 쓰게 했다.

이후 학생 수는 6명, 20명이 되었고 당시 기록에 의하면 몇 명은 영어 배우는 것 때문에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도 한다. 아펜젤러는 ‘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로 학당훈을 정했다. 이는 마태복음 20장 26~28절의 말씀을 교훈 삼아 당시 배재학당 교사인 한문학자 조성규가 한역한 것을 1968년 김학찬 국어 선생님이 한글로 풀었다.

배재학당 역사기념관은 아펜젤러홀로도 불린다. 1층에는 당시의 교실을 그대로 있다. 안에 2개의 상설전시관이 있다. 1관에는 고종이 하사한 배재학당 현판, 유길준 친필 서명이 있는 ‘서유견문’ 등이 있고 또 배재학당 출신 김소월의 시집도 볼 수 있다. 2관은 아펜젤러에 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건물 바로 앞에는 현재 575년이 된 향나무가 서 있고 바로 옆에는 1920년 당시 배재고등보통학교에서 열린 제1회 전국체육대회 표지석이 있다. 배재학당은 19세기 말 조선 근대화의 시작점인 셈이다.

길 끝에 고려삼계탕이 있다. ‘서울 3대 삼계탕 맛집’, ‘한국 최초 전통 삼계탕 전문점’, ‘미술랭 삼계탕’이라는 수식어가 달려 있는 이 집은 1960년에 문을 열었다. 이 집은 특이하게 오골계 삼계탕이 있다. 전복오골계탕, 산삼전복오골계탕 등인데 값은 꽤 나간다. 쌀쌀해지는 날씨에 보통 삼계탕 한 그릇 비우면 등이 뜨끈하겠다. 서소문로11길, 보고, 느끼고 게다가 맛까지 충족되는 길이다.

(좌)배재학당역사박물관, (우)조선근대화의 흔적(사진 장진혁)
글과 사진 장진혁(프리랜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0호 (22.12.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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