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아홉에 시작한 피자집, 화덕 두 번 부순 뒤에야 성공했다

한겨레 2022. 12. 23.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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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화가에서 ‘한옥에서 PIZZA 온고재’ 대표로 변신한 강성주씨
‘한옥에서 PIZZA 온고재’ 대표 강성주씨

화가가 차린 식당에 손님이 줄을 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3년 전 강성주(52)씨가 문을 연 ‘한옥에서 PIZZA 온고재’ 이야기다. 인적이 드문 경기도 남양주 산자락에 차린 피자집이 그렇게 장사가 잘된다고 하니 궁금해서 식당을 찾았다. 돌계단을 오르니 넓은 정원에 깔끔한 한옥이 보인다. 뒤돌아서니 마을 전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명당 터다.

입시 미술 강사, 딸 위해 세밀화 작가 돼
지리산까지 올라 6년간 동물 그리다
지역 환경단체의 사무국장도 맡아봐
싼 한옥 나왔단 말에 직접 수리해 ‘창업’


요리 전공 딸이 이탈리안 피자집 제안
“어울린다” 판단해, 피자도 안 먹고 결정
화덕 위치도 못 잡는 등 수업료 컸지만
‘활동가 내공’ 발휘해 마침내 성공 일궈‘온고재’ 대표 강씨를 만나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의 첫 직업은 입시 미술 강사였다. 그러다가 어린 딸을 위해 저녁에 일하는 강사에서 낮에 일하는 세밀화 작가로 직업을 바꾸었다. 그는 동물이 있는 곳이라면 지리산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6년을 보내니 누구보다 동물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가 돼 있었다. 그리고 지역 환경단체의 운영진이 됐다.

2010년에는 지역의 민관협력 단체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사무국장이 됐다. 그는 환경과 공동체를 주제로 지역 주민을 조직해 성과를 일궈냈다. 활동은 성공적이었지만, 외부 요인으로 사무국장에서 물러나야 했다고 한다. 실업자가 된 그는 학원 자리를 알아봤다. 2016년 아내와 함께 미술학원을 차렸고 학원은 3년 만에 안정기에 들어섰다.

주차장에서 온고재로 올라가는 돌계단.

2019년 가을 남양주에 한옥이 월세 100만원으로 싸게 나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한옥을 둘러보고 수리하면 식당을 차려도 좋고 아니면 작업실로 써도 좋으리라 생각했다.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인부를 고용해 함께 일했다.

공사를 시작하고 한 달이 됐을 때 요리를 전공한 딸과 딸 친구에게 식당 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은 이탈리안 화덕피자집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는 한옥과 이탈리안 화덕피자가 꽤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고객들이 식당에 와서 예쁜 사진을 찍고 그걸 여기저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면 식당은 분명 성공할 것이라 판단했다. 강씨는 피자는 먹어보지도 않고 피자집을 차리기로 정했다고 한다.

돌계단에 올라서 본 온고재 모습.

그런데 피자집을 준비하며 문제가 생겼다. 그와 딸 그리고 딸 친구까지 셋 중 누구도 식당을 창업해본 경험이 없었던 거다. 식당 기구 배치에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조차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피자 화덕을 만들었는데 다른 기구들을 설치하려고 보니 화덕 자리가 알맞지 않았다. 화덕을 부수고 다른 자리에 화덕을 재설치했다. 그러나 그 자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화덕을 다시 만들어야 했다. 냉장고를 구매하려니 판매자가 물었다. “간냉식이요? 직냉식이요?” 간접 냉각방식인지 직접 냉각방식인지를 묻는 것이었는데, 강씨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하나하나 검색하며 공부했다. 판매자는 중고품도 괜찮다며 중고품 구매를 권했다. 그 말을 믿고 냉장고 6대를 중고로 샀다. 공사비와 식당 비품으로 약 1억원이 들었다. 피자집을 차리기로 정하고 한 달 만인 2019년 10월15일에 식당을 개업했다. 그의 나이 마흔아홉의 일이다.

피자 화덕.

한 달 만에 후다닥 창업한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6개월만 해보고 안 되면 딱 접을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월급이랑 월세로 3천만원 정도 손해 보면 되고 그 정도는 학원에서 번 돈으로 감당할 생각을 했죠. 성공은 몰라도 실패하지 않을 자신은 있었어요.”

그는 사무국장으로 일할 때 ‘경기도 관광 보고서’를 보았다. 거기에 경기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두물머리’라고 나왔다. 큰 물줄기가 팔당역 앞으로 흐르는 곳인데, 거기서 식당까지 한 500m 샛길을 뚫으면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인터넷 홍보를 잘하면 될 거 같았다.

온고재 카운터.

식당을 개업했지만 손님이 거의 없었다. 화덕이 없어 먹어보지도 못했던 피자 맛은 어땠을까? “아이들이 식당에서 요리사로 피자를 딱 1년을 만들다 왔는데 맛이 있었겠어요? 별로였죠.” 음식은 아이들에게 맡기고 그는 SNS 홍보에 집중했다. 일단은 손님을 오게 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했다. 인스타그램에 감성적 사진을 찍어 올렸다.

석 달이 지났을 때 냉장고 석 대가 고장이 났다. 결국 고장 난 냉장고를 새 제품으로 교체했다. 그는 돈을 이중으로 쓰게 돼 속이 쓰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비용도 창업을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내야 할 수업료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온고재 대문.

2020년 봄,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시내 식당보다 한적한 교외 식당을 찾는 손님이 늘어갔다. 게다가 ‘온고재’는 ‘ㅁ’자 형태의 한옥으로 딱 10개의 테이블을 두었기에 ‘거리두기’에 더없이 좋았다. SNS에 식당 사진을 올려둔 효과가 이때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다행히 음식 맛도 연구를 거듭하면서 점점 좋아졌다.

요즘은 고객이 자발적으로 SNS에 올려주는 식당 사진과 리뷰 덕에 평일에도 대기해야 할 정도로 손님이 늘었다. 식당이 안정기에 들어선 지금 시기에 그의 가장 큰 고민은 ‘사람’이다. 그는 식당 성공의 성패는 결국 ‘사람’으로 귀결된다고 봤다. 직원이 고객에게 얼마나 좋은 인상을 주는지가 중요했다. 음식 주문은 기계로 받지만 결제는 직원이 직접 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도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기 위해서다. 그는 ‘인테리어의 완성’ 역시 사람이라고 본다.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 식당이라도 일하는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보고 있다면 식당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거라 생각했다. 직원들에게 딱 한 가지를 당부했다. 손에 휴대전화 대신 행주를 들라고….

온고재에 걸린 강성주씨의 작품.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켜라.” 그는 이 말이 창업자가 가장 신경 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객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도, 고객의 욕구를 구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고객의 욕구를 알아내고 고객이 만족할 공간과 음식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과거 사무국장으로 시민들과 활동한 경험 덕에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조직을 관리하는 능력도 키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는 식당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말을 전했다. “꼭 성공한 사람뿐만 아니라 실패한 사람들의 경험담에도 귀를 기울이면 좋겠어요. 그리고 본인이 가진 장점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는 짧은 창업 준비 기간으로 치러야 할 수업료가 많았다며 사람들에게 창업 준비를 철저히 해서 수업료를 줄였으면 좋겠다는 말도 전했다. 식당이 맛만 있으면 인테리어 상관없이 손님이 줄을 서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새로운 고객의 욕구를 읽는 눈이 창업자에게 꼭 필요한 때다.

글·사진 강정민 작가 ho0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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