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중이는 공부를 했어도 성공했을 거예요”
점프볼이 NBA에 도전하는 이현중의 모친이자 한국여자농구 레전드 성정아 WKBL 재정위원장이 쓰는 <엄마의 일기>를 연재합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성정아 위원장이 아들 이현중을 바라보는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매거진 점프볼 12월 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눈길을 끄는 삼성
바야흐로 농구의 계절입니다. KBL과 WKBL이 개막했고 제가 있는 미국에서도 NBA가 한창입니다. 아마 국내에 계속 있었다면 아빠 엄마와 함께 간혹 경기장을 찾아 삼성을 응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두 분 모두 삼성 출신이라 삼성에 애정이 많기 때문이죠. 아니 어쩌면 주로 저만 응원하고 있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아버지는 고교 농구 감독, 어머니는 농구 관련 행정 쪽에 있는지라 이제는 삼성만 사랑하시기에는 너무 공인이 되어버리신 듯해요. 어쩌면 이제는 특별한 응원팀 없이 두루두루 관심을 가지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저는 아직까지 어느 팀을 응원하든 자유니까 어릴 때부터 익숙한 삼성에 좀 더 관심이 가는 것이 사실이랍니다.
어린 시절 현중이처럼 오직 농구와 승부에만 집중하는 성격이 아니라 경기장을 찾더라도 여기저기 둘러보기 바쁠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래도 저같은 사람도 필요하다고요. 모든 사람이현중이처럼 코트만 바라보고 있으면 치어리더 언니들, 경기장 인테리어 관계자 분들 그 외 기타 등등…. 서운하지 않겠어요. 이상! 리나 생각이었습니다. 히힛. 솔직히 엄청난 광팬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아빠와 엄마가 삼성 선수로서의 인연으로(+강을준 아저씨) 서로 만나게 되었고 그래서 저나 현중이가 태어날 수 있었던지라 어느 정도의 고마움은 늘 가지고 있으려고 생각한답니다.
아참! 현중이를 많은 면에서 도와주고 계신 (김)효범 삼촌도 삼성에서 코치로 계시고요. 남자 농구 삼성은 은희석 감독님 체제로 바뀐 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한 발 더 뛰는 농구를 통해 특유의 끈끈함이 되살아난 것 같고 새로이 영입한 베테랑 이정현 선수의 리더십이 팀 분위기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모습입니다. 처음에 FA로 온다고 했을 때 ‘전성기가 지난 노장을 비싼 가격으로 데려오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현재 시점에서 보면 ‘아…. 저런 부분도 플러스가 될 수 있구나’하고 저 역시 배우게 된답니다. 쓱쓱 적자 적어. 에이전트가 되려면 저런 부분도 놓치지 않는 눈썰미를 갖춰야겠어요.
NBA에서는 강호들의 고전이 눈에 띕니다. 아직 시즌 초인지라 ‘추락’이라는 단어를 쓰기에는 이르지만 디펜딩 챔피언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5할 승률도 못 가져가는 가운데 르브론 제임스와 앤서니 데이비스의 LA 레이커스,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 벤 시몬스의 브루클린 네츠 등이 줄줄이 자존심을 구기고 있는 모습이네요. 어떤 면에서는 세대교체의 흐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개인적으로 듭니다.
‘이로울 리, 어찌 나’ 보통 내 이름을 말하면 한글 이름으로 알지만 한문 이름이 맞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는데 정말 뜻까지 잘 지어준 이름이 아닐까 싶어요. 누군가 그랬죠. 이름에는 특유의 힘이 있다고. 저 역시 그것을 믿습니다. 일본, 미국 등 해외에서 씩씩하게 꿈을 키울 수 있는 배경에는 그러한 힘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그걸 믿고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많은 이들에게 이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사실 저는 이미 많은 이로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중에 최고 복은 가족 복이라고 하죠? 일단 저는 대성공입니다. 아빠 엄마같이 좋은 분을 부모님으로 만나게 됐다는 점 그리고 현중이같이 멋진 녀석이 동생이라는 것, 모두 저에게는 복입니다. 전편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부모님은 저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존감을 키워주셨고 거기에 더해 다양한 방면의 경험을 쌓게 해주면서 제가 뭘 원하는지 스스로 찾아갈 힘을 주셨습니다. 아마도 그게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까지도 ‘내가 뭘해야 될까?’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현중이에게는 꿈을 향한 열정과 노력을 배우고 있어요. 철저한 자기 관리, 흔들리지 않는 목적성 등을 보면서 저도 함께 불탈 때가 많아요.
제가 농구를 그만뒀을 때 엄마는 살짝 걱정스러운 것도 있으셨다고 하더라고요. 농구에 대한 아쉬움 그런 것은 아니고요. 제가 끝까지 농구를 안해서 덜 큰 것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자 키가 180cm에 육박하면 일반인으로서는 매우 큰 키거든요. 정확히 말하면 저는 178.7cm입니다. 그나마 엄마는 180cm를 안 넘어서 다행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농구를 했다면 더 클수록 좋았겠지만 일반인으로서는 너무 외적인 조건부터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셨던 거죠. 선수급으로 사이즈가 크게되면 다른 일을 하는데 지장?(선입견 등)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사자인 저는 불편함이 전혀 없답니다. 아니 이렇게 크게 낳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여기 미국에 와서는 더 더 그래요. 일단 저의 키는 미국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별반 밀리지 않습니다. 아니 큰 축에 속한다고 봐야겠죠. 전편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막 나대는 성격은 아니지만 은근히 센터 본능이 있다고 했잖아요. 여학생 키가 크면 아무래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저는 외려 그게 좋아요.
인종차별요? 아시다시피 미국은 한국 사회보다 좀 더 피지컬을 중시하는 문화가 강해요. 졸업 후에는 모르겠지만 학창시절에는 사이즈가 좋다거나 운동 잘하고 그런 친구들이 인기가 많은 것 같더라고요. 저 역시 일단 기본 신장이 되다 보니 단 한 번도 이곳에 와서 무시를 당한다던가 하는 등의 경험을 해보지 않았어요. 오히려 처음부터 다가와서 친근하게 대하는 친구들도 많고 여러 가지로 장점만 느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지만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 행복감을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향해 애써 의지(의지라 쓰고 억지라 읽는다)를 불태우다 보면 스트레스도 크고 노력에 비해 발전도 적을 것이 분명합니다. 재능이라는 부분도 내가 흥미가 있을 때 발현될 수 있는 것이고요. 다른 쪽에 재능이 있지만 무엇인가 변화가 필요할 때 그 시기를 놓쳐서 이것도 저것도 안되는 케이스도 꽤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선생님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했대요. 먼저 A그룹에게는 선생님이 직접 퍼즐을 나눠주고 각자 퍼즐을 맞출 시간까지 정해주는 등 지시하고 가르치는 식으로 진행했고요. 반면 B그룹은 여러 게임 중에서 퍼즐이 걸리게 한 다음 그냥 간섭없이 알아서 놀게 놔뒀다는 거에요. 이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 종료를 알리자 A그룹 아이들은 할 것 다했다는 듯이 미련 없이 퍼즐을 돌려주고 나갔지만 B그룹 아이들 같은 경우 ‘조금만 더 놀면 안돼요’라는 등 아쉬워하는 반응 일색이었다고 해요.
똑같은 퍼즐게임이었는데 왜 반응이 달랐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타의에 의해서 뭔가를 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할 때 더 흥미와 재미를 느낀다고 합니다. 똑같은 퍼즐이라도 선생님이 시켜서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마치 수업을 듣거나 숙제를 하는 기분이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자신들이 골라서 마음대로 할 경우 말 그대로 게임이나 놀이로 여겨졌을테니 같은 게임을 해도 느낌은 천지 차이였겠죠.
네 맞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선택해서 가는 길에 더 흥미를 느끼고 스스로 책임감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구를 하다가 부상을 당해서 일본에서 치료받던 시절 저는 스스로의 의지로 코트
를 떠났습니다. 작은 부상은 아니었지만 사실 아예 복귀가 안될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제가 이를 악물고 다시 뛰었다면 충분히 돌아갈 수 있었죠. 하지만 저에게는 그렇게까지 해야 할 목적의식? 그런 게 없었습니다. 순전히 제 의지로 농구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로까지 농구를 사랑하지도 않았어요. 좋아하기는 했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의 무엇까지 다 끌어올려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거죠. 더욱이 부상치료를 위해 떠났던 일본에서 더 크고 다양한 세상을 보았던지라 미련이 남지 않더라고요.
1남 1녀의 남매 관계라는 점에서 현중이와 제가 어린 시절부터 엄청 붙어 다녔을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물론 가족이니까 남들보다는 많은 시간을 보냈겠죠. 하지만 저희는 일반적인 남매들과 비교해서 함께한 시간은 적은 편에 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거기에는 나이 차이도 살짝 나는 상태서 서로 농구를 한 이유가 큽니다. 누나인 제가 농구를 시작했을 때 현중이는 너무 어렸습니다. 농구를 하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도 짧았고 등교도 따로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어요. 이후 현중이도 농구의 길을 가게 됐고 그때는 서로 바쁜지라 더 그랬죠.
제가 농구를 그만두었을 때 역시 현중이는 농구하느라 바빴습니다. 더불어 부상치료차 일본에 있었던 저의 시간, NBA를 꿈꾸며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현중이의 시간까지 겹치며 직접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매우 적어졌죠. 아, 그렇다고 우리가 서로 낯선 사이는 절대 아닙니다. 멀리 있으니 오히려 사이가 더 좋아지는 것 있죠(웃음). 일단 보고 싶고 서로가 걱정도 되고 하니까 연락을 자주하게 되요. 서로 바쁜 시간대가 다르고 심지어 시차도 다르다 보니 전화보다는 카톡을 하는데 싱거운 말이라도 매일 주고받는 등 횟수는 잦은 편입니다. 물론 부모님께도 그러게 되고요. 신앙을 믿는 집안분위기상 좋아하는 성격 구절 같은 것도 자주 주고받습니다.
사실 제가 현중이 누나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에요. 아마도 농구계에 계신 분들 혹은 가까운 지인들 정도 빼고는 대부분이 모른다고 보는게 맞을 거예요. 구태여 말하고 다닐 필요를 못 느끼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직 동생은 자리를 완전히 잡지 못한 상태인데 괜스레 제가 여기저기 누나다고 하고 다니면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은 노파심이 큽니다. 오버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누나된 입장에서는 그 조그만 변수조차도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어린 시절의 현중이는 굉장히 머리가 좋고 집중력이 강했습니다. 4, 5살 때 이미 수학, 과학 영재스쿨을 다녔을 정도니까요. 운동이 아닌 공부를 했어도 한가닥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낯선 미국 대학을 다니면서 운동과 병행하며 수업진도를 따라갔다는 자체가 머리가 좋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에 상응하는 노력도 많이 했겠지만 그런 노력적인 부분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으니까요. 더불어 현중이는 꽂히면 하나에 몰두해서 정말 그것 밖에 안보는 성향을 가지고 있어요.
어린 시절 농구장을 가면 저는 체육관 주변 탐방도 하면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그랬거든요. 현중이는 일체 그런 것 없었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본인이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집중해서 지켜봅니다. 엄마도 말했다시피 응원팀이 지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승부욕도 일찍부터 대단했어요. 현중이의 저런 부분은 커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경우 선수보다는 경기 위주로 즐길 때가 많은데 현중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가 확실했고 거기에 딱 빙의해서 보고는 하죠.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와 스테픈 커리가 대표적입니다. 슈팅에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현중이 입장에서는 그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팀과 선수가 동경의 대상으로 다가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글_이리나
#정리_김종수 컬럼니스트
#사진_본인 제공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