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겨울의 빛

2022. 12. 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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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동 문학평론가, 서강대 명예교수

겨울은 죽음의 계절 아니고

미래 준비하는 성숙의 계절

눈은 차갑지만 따뜻한 느낌

욕망과 좌절을 동시에 품어

겨울 벽난로서 타는 장작불

어둠 밝히려는 희생의 불꽃

어느덧 금년 한 해도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저물어 간다. 굳게 닫힌 들창문을 열고 봄의 교향악을 듣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눈이 오는 겨울이 찾아왔다. 겨울은 일 년 사계(四季)를 두고 생각하면 죽음의 계절처럼 느껴진다. 라이나 마리아 릴케가 ‘듀이노의 비가(悲歌)’에서 ‘덧없이 지나가는 이 세상은 이상한 방법으로 /우리를 계속 부른다. 모든 것 가운데 가장 덧없이 지나가는 우리들을.’이라고 노래했던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세월은 1년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을 향해 계속 흐른다. 그래서 우리는 금년 한 해를 마감하는 이 겨울을 상징적으로라도 우리 삶의 끝을 장식하는 시간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현상학자 에드문트 후설에 따르면, 자연적 시간 즉 ‘객관적 시간’도 인간 의식의 힘으로 우리가 목적으로 하는 의미 있는 ‘주관적 시간’으로 만들 수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저무는 금년 한 해는 성숙해 가는 우리의 삶에 또 하나의 나이테로 축적될 뿐이다.

그렇다. 더 큰 우주 차원에서 보면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 아니라 성숙의 계절이고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휴면기다. 여름에 무성했던 나뭇잎들이 대지에 떨어져 이듬해 나무가 더욱 무성하게 자라도록 뿌리의 밑거름이 되는 것도 엄연히 성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겨울이 성숙의 계절인 것은 겨울의 빛에서도 잘 나타난다. 겨울 풍경을 가장 잘 나타내는 ‘동천(冬天)’과 흰 눈은 미성숙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날씨 좋은 날의 코발트 빛 겨울 하늘은 창백한 거울보다 투명하며 높고 깊다. 겨울이 되어 하늘에서 내리는 하얀 눈은 수증기가 언 것이지만, 그것은 빗물처럼 애상(哀傷)에 젖지 않고 차갑다. 겨울이 지나 날씨가 풀리면 따뜻해서 좋다고 하나, 지붕 위의 눈이 녹아 흐르는 낙숫물 소리가 싫을 때도 있다. 봄이 되어도 눈 덮인 북악산 산정(山頂)을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이 때문이리라.

우리가 겨울에 오는 눈을 좋아하는 것은 그것이 눈부시게 희고 깨끗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차가우면서도 따스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눈은 흰색의 스펙트럼처럼 모든 것을 안고 감싸주는 따뜻하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농부의 말처럼, 보리밭에 내리는 눈은 땅속에 묻혀 있는 봄의 씨앗인 밀알을 따뜻하게 감싸준다. 그래서인지 모르나, 신세계를 꿈꾸는 것 같은 눈은 멀리 보이는 교회 지붕에도 내리고 묘지에도 내린다. 늪이 있는 갈대밭에도 내리고 얼어붙은 강물 위에도 내리고 파도치는 겨울 바다에도 내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달동네 사람들의 지붕에도 내리고 실향민들의 고향인 북녘땅에도 내린다.

이렇게 겨울 하늘에서 꿈을 꾸듯 쏟아져 내리는 흰 눈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주기에 그리움이 짙게 묻어 있지만, 절제 있는 사랑의 미학에 대한 이미지로 사용되어 우아한 아름다움을 창조하기도 한다. 시인 황동규는 ‘엽서’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꿈을 꾸듯 꿈을 꾸듯 눈이 내린다.

바흐의 미뉴에트

얼굴 환한 이웃집 부인이 올갠을 치는 소리

그리하여 돌아갈 때는 되었다.

모퉁이에 서서 가만히 쌓인 눈을 털고

귀 기울이면 귀 기울이면

모든 것이 눈을 감고 눈을 받는 소리

여기서 눈의 이미지는 시 속의 화자(話者)가 애처로운 마음의 풍경 속에서 욕망과 좌절이라는 양극적인 현상을 포괄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눈발 속에 서 있는 그가 만나려는 여인을 만나지 못함을 오히려 진정한 사랑의 표현으로 생각하고 역설적인 만족을 구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그는, 눈이 차갑지만 흰빛을 하고 부드럽게 내려 쌓이는 것을 사랑의 극대화에 대한 상징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꿈이 담겨 있는 사랑을 생각하고 그 속에서 안으로 펼쳐지는 우아하고 절제된 삶의 숨결을 풍금으로 치는 바흐의 조곡(組曲), 미뉴에트로 듣는다. 마치 죽음과도 같은 침묵의 시간 속에서 삶에 대한 사랑이 소리 없이 잉태하는 것을 느끼는 화자는 애인을 만나 뜨거운 사랑을 불태우진 못한다. 하지만 차갑고 따스한 미학적 거리에서 자신의 감정을 눈 속에 해체시켜 인고에서 오는 보이지 않는 실존적인 빛과도 같은 즐거움마저 느낀다.

하지만 겨울의 빛은 맑고 높은 차가운 겨울 하늘과 하얀 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벽난로에서 타는 장작불과 검은 제복을 입은 구세군의 자선냄비, 그리고 겨울에 빛을 발하는 포인세티아에도 있다. 태고(太古)의 전설을 전하는 듯한 매서운 바람 소리와 노변(爐邊)의 정담 속에 타는 나무의 불꽃은, 구세군 자선냄비의 뜻과 포인세티아 꽃 모양처럼 이기적인 욕망이나 정념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태워 암흑과도 같은 어둠을 밝히기 위한 희생적인 불꽃이다.

그러므로 겨울의 빛은 죽음의 빛이 아니라 지적인 성숙과 어둠을 이기고 지나간 시간에 못다 이룬 미완성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차갑고 치열한 절제 속에 스스로 불태우는 백야(白夜)와도 같은 아우라이다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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