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화가’ 김현우 “기억은 창작활동의 원천” [人터뷰-픽셀 드로잉 아티스트 김현우 작가]

2022. 12. 23. 11: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물·도시풍경·자연에 이름까지
빼곡한 ‘픽셀’안에 특유의 색 채워
수학공식·음표 기록한 노트 수백권
발달장애인 예술가? 현대미술가!
아들 건강 챙기다 전시 기획자로...
엄마의 소회 “작품 이해하려 공부”
14번째 개인전 ‘픽셀의 기억’을 개최한 픽셀 드로잉 아티스트 김현우 작가가 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에어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작업량을 매일 규칙적으로 쏟아내는 김 작가의 창작활동 원천은 ‘기억’이다. 그가 보는 주변 사물, 도시의 풍경, 자연의 모습부터 어렸을 때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추억은 빼곡한 ‘픽셀’ 또는 ‘수학공식’으로 폭발적으로 표출된다. 임세준 기자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거침없이 면 위를 펼쳐 나가는 특유의 색감이 때로는 강렬하고, 때로는 따뜻하며, 때로는 안정감을 준다. 그 위에 규칙적인 듯 불규칙적인 수학공식에 시선을 두고 따라가 보았다. 문과였어도 나름 수학을 좋아했다는 자신감이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켰다.

그것도 잠시, ‘공식’이라고 떠올릴 때 흔히 쓰이는 기호와 도형, 숫자는 익숙하지만 그 향연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선율로 흐르고 있다. 공식이 있다면 분명 답이 존재할 텐데, 답은커녕 무엇을 향하는 공식인지조차 헤아릴 수 없었다. 도록을 급하게 열어보았다. ‘수학드로잉’ 시리즈의 작품명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신들의 이름이다.

여기서 안도감을 느꼈다. 신을 표현하는 공식이라면 인간인 내가 감히 해석하려 들 수 없겠다. 한 걸음 더 들어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인간의 형상을 한 그리스로마신화 속 익숙한 모습을 해체해 수학 공식으로 표현되는 신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마침내 결론에 도달한다. 여기저기 꼬이고 정답이 따로 없는 인간사와 다를 바 없다.

▶ “현대미술을 기본적으로 (하는) 작가입니다”=22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갤러리 hoM에서 만난 김현우 작가(27)는 자기소개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 갤러리 입구에 놓인 김 작가의 명함에는 ‘픽셀 드로잉 아티스트’라고 적혀있다. 이번 개인전 ‘픽셀의 기억’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 “픽셀이란, 므네모시네입니다. 기억이란, 예쁜 테마입니다”라고 주저 없이 말했다. ‘므네모시네’는 ‘기억’이 인격화된 신으로,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9명의 ‘무사이’들을 낳는다. 9명의 무사이는 음악, 미술, 문학, 철학, 역사 등 다양한 지적 활동을 관장하는 여신들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김 작가에게 ‘기억’은 창작활동의 원천이자 지속하는 힘이다. 그가 보는 주변 사물, 도시의 풍경, 자연의 모습부터 어렸을 때 같은 공간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과 선생님의 이름은 빼곡한 ‘픽셀’ 안에 작가 특유의 색으로 채워졌다. 그의 픽셀 작품을 보면 김 작가의 ‘기억’의 양과 질감이 다르다는 점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는 범인(凡人)보다 더 많은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번 전시는 ‘수학드로잉’ 시리즈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전의 작은 픽셀은 현미경으로 바라보듯 크게 확장됐고,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수학공식이 너울거린다. 김 작가는 학창 시절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업을 들으며 떠올린 수학공식들과 떠오른 음표들을 빼곡하게 노트에 기록했다. 그렇게 기록한 노트만 수백 권이다. 다만 이 노트가 습작은 아니다. 그저 자신의 영감을 기록해 놓은 역사다. 그는 직관적으로 작품을 창작한다. ‘아트 브뤼’(Art Brut·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형태를 지닌 미술)의 특징이다. ‘픽셀’의 모양으로 기억을 저장해온 작가의 공간은 기하학과 만나 ‘수학공식’이라는 또 다른 형상으로 기록되고 있다. 김 작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지금 표현되고 있다.

▶尹대통령, 잠행 시절 찾아간 전시에 ‘매혹’=김 작가의 ‘수학드로잉’ 작업량은 최근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해 9월19일 SBS 예능프로그램 ‘집사부일체’가 방영된 시점으로 올라간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의 서초동 자택 거실에서 촬영된 프로그램에 김 작가의 그림이 걸려있었던 것이다. 특유의 색감과 수학공식은 스쳐 지나가는 화면에서도 한 눈에 띄었다.

지난해 5월 중순 픽셀, 수학드로잉, 음악, 설치작업 등 김 작가의 5년 동안 작품을 총망라한 개인전 ‘픽셀: 무한한 공간’에 한 관람객이 약 40~50분간 전시를 감상했다. 누구인지 인지하지 못했지만 김 작가는 자신의 그림 하나하나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는 관람객에게 작품을 설명했다. 수행인원 1명을 대동해 전시장을 찾은 윤석열 당시 전 검찰총장의 눈에 들어온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은 그렇게 자택 거실에 자리했고, 프로그램에 등장한 사실이 추후에 조명되면서 김 작가도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취임 후 윤석열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 걸린 김 작가의 또다른 작품 ‘퍼시 잭슨 수학드로잉’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윤 대통령이 직접 그림을 소개해 화제가 됐다. 김 작가는 당시를 떠올리며 “기분이 너무 좋았고 신기하고 즐겁고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작품을 팔게 되면 ‘영영 나를 떠난다’고 생각했던 김 작가는 ‘작품이 나를 떠나도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현우 작가가 걸어온 길 ▷1995년 인천 출생▷서울방산고등학교▷ ‘픽셀 킴’ 현우 전시 투어 in 캐나다 등 14회 개인전▷서울국제공연예술제 등 11회 프로젝트▷‘Spirit of ART’ 등 18회 단체전

▶학원 광고용 노트에 빼곡히 적힌 수학공식들=김 작가와의 인터뷰 내내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던 모친 김성원씨는 “현우가 이렇게 인터뷰를 잘하는 것은 처음 봅니다. 오늘 역대 최고네요”라고 환하게 웃었다.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아들이 지금의 아티스트로 활동하기까지 부모의 입장에서 어떠한 마음고생을 했을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모친 김씨는 “저를 교육시키느라 현우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라며 “‘이게 필요하다’, ‘왜, 언제 주문하냐’ 그렇게 서로 맞춰갔지요”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심장이 좋지 않았고 여러 수술을 했던 아들을 위해 아동간호학책을 보며 공부하고 평생을 ‘간호사’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던 엄마는 이제 어엿한 작가로 성장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아들의 건강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

엄마는 학창시절 아들이 다른 사고가 나지 않을까 늘 노심초사했지만, 김 작가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으며 집중력이 좋았고 얌전하고 예의가 바른 학생이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은 ‘영국 신사’. 기능시험을 보고 취직을 하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시험에도 떨어지고, 김 작가 자신도 원하지 않았다.

그 무렵 다양한 활동 중에서도 유독 미술 시간을 좋아한다는 선생님의 말에 미술을 시작하게 됐다. 김씨는 그때 김 작가가 적어 온 노트를 떠올렸다. ‘현우가 좋아한다’며 친구들이 모아 준 학원 광고용 노트에도 김 작가의 공식과 음표가 가득했다. 김 작가는 2015년 서울시립북부병원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4번째 개인전을 하며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아들 건강 챙기는 엄마로, 작품 전시 기획자로=김씨는 “현우 작업은 당시는 저도 모르고 그냥 묻히는 것도 많은데 후에 어떤 인연이나 계기를 통해 서서히 얼개가 풀리는 것이 있다”고 말했다. 아들의 작품을 이해하고 의미를 찾아 대중과 연결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김씨는 “지금도 계속 진행 중이고, 또 찾아지고, 여전히 묻히기도 하는 것이 우리 인간사와 같다”며 “모든 예술에서 장애 예술의 존재도 그렇고, 우리 개인도 모든 것을 다 풀 수 있고 모든 것이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통해 발달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인 인식의 장벽은 존재한다. 김 작가에게 어떤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부분을 물었더니 “지원을 거부하겠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평소 김 작가는 자신이 ‘발달장애인 예술가’보다 ‘현대미술가’라고 불리기를 바란다. 처음 기자를 만나 자기소개를 강조했던 것도 그런 이유일 터다. 김 작가는 모든 예술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수혜의 대상’이라는 시선보다 ‘차별 없는 예술가’로 인식되기를 원한다. 기사에서 김 작가의 장애를 늦게 소개한 것도 이러한 이유다.

김 작가의 향후 계획은 “전시”다. 목표는 “미국에서의 전시”다. 내년에는 한-캐나다 수교 60주년을 맞아 캐나다에서 전시 계획이 있다. 이번 ‘픽셀의 기억’ 개인전은 오는 26일까지 진행된다. 최은지 기자

silverpaper@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