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80통 해도 안 받아" 분통 터트린 '빌라왕' 사기 피해자
"당장 거주할 곳 없어…대출 이자 상승으로 피해 증가"
국토부 "행정 절차 개선해 보증금 반환 앞당기겠다"
"하루에 문의 전화를 80통씩 넣고 있는데 단 한 번도 연락이 된 적 없어요. 국민신문고로 요청해도 다시 전화로 하라고 하는데, 피해자를 우롱하는 것 아닙니까." 전세 사기 피해자 B씨
22일 오후2시 국토교통부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전세보증금 피해임차인 피해자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빌라왕' 사망으로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참석했다.
일명 빌라왕은 보증금 반환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갭 투자 방식으로 수도권 일대에 빌라와 오피스텔 1139채를 매입한 인물로 지난 10월 사망했다. 그는 매매가보다 높은 금액의 보증금을 받아 차액을 챙겼다.
임차인들은 집 주인이 사망하면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HUG 전세금 반환보증보험에 가입한 세입자들마저도 그의 사망으로 보증금 반환 절차가 중단됐다.
임차인들이 HUG로부터 보증금을 반환받기 위해서는 집주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 뒤 임차권 등기를 해야 한다. 하지만 빌라왕의 사망으로 계약 해지를 통보할 대상이 사라졌다.
인천 남동구 만수동에 거주하고 있는 A씨는 전세가와 매매가가 1억5000만원으로 같다는 사실을 계약 이후에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HUG로부터 전세보증금 대위변제 절차를 준비하던 중 빌라왕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A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세 대출자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며 "대출금을 변제하지 못하니 다음 집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피해자들은 빌라왕이 사망한 지 두달이 지나도록 정부에서 아무런 조처가 없었다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B씨는 "HUG 서울 서부 지원센터에 문의 전화를 하루에 80통씩, 메일은 10통씩 넣고 있지만 답이 없다"며 "아무리 인력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전화 한 통은 받으셨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울분을 토했다.
설상가상으로 전세대출 금리마저 상승하면서 피해 규모가 커지고 있다.
'빌라왕 피해임차인 모임 카페' 임원진 C씨는 "피해자들은 지금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도 전세대출 이자를 갚고 있는 상황"이라며 "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도 크게 올랐지만 피해자들이 모두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압류로 인한 경매 절차가 시작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인 피해자도 있었다.
중소기업 청년 전세대출을 받아 빌라에 입주했다는 D씨는 "집에 15억원가량 압류가 걸려 있어 경매로 넘어갔다"며 "경매 낙찰자가 집을 비워달라고 요구하면 당장 어디서 지내야 할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당장 쫓겨나지 않아도 되는 피해자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집주인의 사망으로 사실상 주택을 관리할 사람이 없어져서다.
'빌라왕 피해임차인 모임 카페' 대표를 맡은 E씨는 "당장 집에 비가 새고 수돗물이 끊겨도 피해자들은 손쓸 방법이 없다"며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이사를 하면 안 된다고 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임대차 계약이 끝난 후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임차권 등기를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임차권 등기 전에 이사를 가게 되면 보증금 우선변제권이 상실된다.
권혁진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상속인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면서 "임차권등기 전에는 절대로 이사를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토부는 행정절차 개선 등을 통해 HUG 보증보험에 가입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보증금 반환 기간을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서울 강서구에만 있는 전세피해 지원센터를 인천에도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가구당 최대 1억6000만원을 연 1%대 저금리로 금융 지원을 하기로 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세 사기가 아예 발붙이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제도를 잘 만들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아직은 허점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전세 사기와 관련된 가해자·중개업소·건축업자 등을 뿌리부터 뽑을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송재민 (makmin@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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