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나당전쟁은 복수심에서 시작? 문무왕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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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최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한일통을 이루고 나당전쟁까지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오는 25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신라 문무왕, 당나라에 복수의 칼을 갈게 된 사연은?'을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675년, 천성전투에서 당의 보급로를 막은 신라군은 이어지는 매소성, 기벌포 전투에서도 승리를 이어가고 끝내 문무왕은 삼한일통의 대업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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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장우영 기자] 삼국시대, 최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삼한일통을 이루고 나당전쟁까지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오는 25일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신라 문무왕, 당나라에 복수의 칼을 갈게 된 사연은?’을 주제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 복수심에서 시작된 나당전쟁?
삼국 중 가장 힘이 약했지만, 당대 최강대국이었던 당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룬 신라. 그런데, 나당전쟁이 시작된 이유가 다름 아닌 문무왕의 복수심 때문이었다고 알려졌다. 문무왕이 당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게 된 사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당전쟁을 승리로 이끈 문무왕의 뛰어난 외교술의 뒤에는 사실 아버지 김춘추의 남다른 조기교육이 있었다고 한다. 떡잎부터 달랐던 외교의 달인 문무왕의 외교 비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 문무왕, 당을 향해 선제공격을 감행하다
665년 8월, 당 황제는 패망한 백제 의자왕의 아들 부여융을 옛 백제 영토를 다스리는 웅진도독으로 임명하고 문무왕으로 하여금 강제로 화친하게 한다. 큰 희생을 치르며 어렵게 정복한 백제와 다시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 신라. 굴욕적인 상황 속에서 차오르는 분노를 삼켜야 했던 문무왕은 당과의 전쟁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
고구려가 패망시킨 뒤,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서슴없이 드러낸 당. 더 이상 상황을 두고 볼 수 없었던 문무왕은 670년, 고구려 부흥군과 함께 당을 향한 선제공격을 시작한다. 압록강 너머 요동의 오골성으로 진격한 신라 장군 설오유와 고구려 부흥 세력 고연무의 부대. 과연 신라와 문무왕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 외교의 달인, 두 얼굴의 문무왕
갑작스러운 신라의 공격에 분노한 당 고종은 신라를 징벌하기 위해 장수 설인귀를 보낸다. 이때 설인귀와 문무왕 사이에 ‘설인귀서’와 ‘답설인귀서’가 오간다. 문무왕이 ‘답설인귀서’를 통해 밝힌 전쟁을 벌인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평양 이남의 백제 토지를 신라에 주기로 한 당 태종의 밀약을 23년 만에 공개하며 전쟁의 명분을 제시한 문무왕. 하지만 최대강국 당과의 전쟁은 쉽지만은 않았고, 석문전투에서 궤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하며 신라는 수세에 몰린다. 위기에 빠진 신라, 신라를 위한 문무왕의 선택은 다름 아닌 기만전술이었다고 알려져 궁금증을 자아낸다.
▲ 반복되는 역사, 끝나지 않은 외교
675년, 천성전투에서 당의 보급로를 막은 신라군은 이어지는 매소성, 기벌포 전투에서도 승리를 이어가고 끝내 문무왕은 삼한일통의 대업을 완성한다. 압도적인 전력 차에도 남다른 기지와 판단력으로 결국 신라를 최후의 승자로 만든 문무왕. 문무왕의 외교를 돌아보며 오늘날 우리나라가 문무왕에게서 배워야 할 외교 비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본다.
이 모든 이야기는 오는 25일 밤 9시 40분 KBS1 역사저널 그날 390회 고대 동아시아 외교전쟁 ④ ‘복수혈전, 나당전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elnino8919@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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