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검사에서 유전자 검사까지…논란 커지는 ‘신체 공정성’[몸의 정치경제학]
신체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을 본 이들은 모두 느꼈을 것이다. 전후반과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간 지속된 신들린 듯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의 민첩하고 정밀한 퍼포먼스. 이에 반해 후반 30분 지점까지 프랑스팀 선수들은 살충제를 과다 흡입한 모기처럼 생기 없이 흐느적거렸다. 단순히 정신력 차이였을까.
펄펄 난 아르헨티나 팀의 신비에 대해 해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와 언론은 공히 예르바 마테(Yerba Mate)차를 주목한다. 마테는 리오넬 메시 선수가 늘 끼고 산다는 남미의 대표적 차다. 메시 선수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선수들 모두 경기 전 혹은 경기 중에도 끊임없이 이 차를 마셨다고 한다. 카타르 본선에 아르헨티나 팀이 수송해 온 예르바 마테차 잎의 무게만 무려 550kg이다. 아르헨티나 못지않게 예르바 마테차를 국민 차로 숭상하는 우루과이 팀이 수송해 온 양의 두 배에 달한다.
공교롭게도 예르바 마테차와 함께 남미를 대표하는 코카(Coca)차는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규제 대상에 속한다. 코카 잎에서 추출되는 코카인 성분 때문이다. 실제로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에 출전한 페루 팀 주장 파블로 게레로 선수는 코카 차 복용 후 실시한 도핑 테스트에 적발돼 FIFA로부터 14개월 출전 정지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하지만 페루를 여행해 본 이들은 잘 알 것이다. 페루 내 대부분의 호텔은 코카 차를 무료 제공한다. 길거리 카페에서도 커피보다 흔하게 접할 수 있다. 페루뿐인가. 볼리비아·우루과이·파라과이·아르헨티나·에콰도르·콜롬비아 등 다수의 중남미 국가에서 코카 잎을 씹거나 차로 마시는 것은 합법적이고 일상적인 풍경이다. 코카 차는 안데스 산맥의 잉카 문명과 함께 수천년간 이어진 의료·건강·음식 문화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지역의 편견과 선호를 반영한 국제 표준이다. 마약으로 몸살을 앓는 미국과 일부 서유럽 국가들이 코카인에 질색하는 탓에 남미 지역 섭생 문화의 특수성을 고려할 여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어찌됐든 스포츠계에서 금지 성분 복용을 검사하는 도핑 테스트는 북미·서유럽 주도의 세계반도핑기구(WADA : World Anti-Doping Agency)가 제정한 세계 표준에 따라 올림픽·월드컵·대륙 예선 등의 운동 경기에 일률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규율에 따라 2022년 1월부터 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FIFA 테스트는 약 2846건에 달한다. 그중 이번 월드컵 본선 토너먼트에 참가하는 선수를 대상으로 한 941개 샘플에서 5명의 선수들이 적발됐고 각각 4년에서 2년간 출전 정지 명령을 받았다. 남성호르몬인 테스타스테론(testosteron) 과다 함유 물질, 신체 기능 향상 효과가 있다는 클로스테볼(clostebol), 협심증이나 어지럼증에 효과가 있는 트라이메트아지딘(trimetazidine) 등 금지 약물이 검출된 사례들이었다.
트라이메트아지딘은 혈류 개선 효과가 큰 성분인데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러시아 출신 15세의 피겨 스케이터 카밀라 발리에바 선수가 받은 도핑 테스트에서 검출돼 세계적 이목을 끈 바 있다. 그 결과 그녀가 참가한 종목에서 러시아팀이 획득한 금메달에 대한 효력 상실 여부가 현재까지 검토 중이다.
하이테크 장비와 도핑 테스트의 한계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몸을 이용한 경쟁이므로 신체와 관련된 공정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도핑 테스트는 신체에 투여된 특정 성분이 기능 향상이라는 부당 이익으로 작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따라서 이런 공정성 감시는 신체에 흡수되는 특정 물질에 국한되지 않으며 신체 외부에 착용되는 도구에도 엄격히 적용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특정 운동 장비가 신체 기능 향상에 과도하게 기여하는 ‘약물 효과’가 있는지를 판명하는 이른바 테크놀로지 도핑(technology doping)이 부각된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수영 종목에서 나왔다.
베이징 올림픽 기간 중 수영 종목에서 총 25개 세계 신기록이 수립됐는데 그중 23개의 신기록이 놀랍게도 스피도(Speedo)가 만든 LZR 레이서(Racer)란 수영복을 입은 선수에게서 나온 것이다. LZR 레이서는 상어의 피부를 모형으로 한 소재로 만들어져 부력을 향상시키고 유체 역학적 (hydrodynamics) 자세를 유지도록 디자인됐고 근육에 제공되는 산소의 흐름을 개선하는 효과를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올림픽 후에도 각종 국제 대회에서 이 수영복을 착용한 선수들에 의한 세계 신기록 경신이 지속되자 국제수영연맹(FINA)은 급기야 신체 전면을 가리는 수영복 착용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남성은 허리에서 무릎까지, 여성은 최대 어깨에서 무릎까지 가리는 수영복만 허용하되 소재는 직물로 한정하고 지퍼 같은 조임 장치가 없어야 한다는 규정을 2010년부터 발효했다.
장비에 대한 논란과 테크놀로지 도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이키가 만든 베이퍼플라이(VaporFly) 러닝화 시리즈는 2017년 출시 이후 테크놀로지 도핑이라는 오명을 받으면서도 오히려 역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바닥 깔창에 사용된 합성수지 페벡스(Pebax, 이후 나이키가 ZoomX라는 이름으로 변경함)가 최대 4.2%의 장거리 런타임 단축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 깔창 안에는 지면 접촉 시 상당한 반동 탄력을 제공하는 탄소 섬유판이 삽입돼 있는데 이 또한 장비에 의한 불공정한 기능 향상이란 제소가 발생했다.
현재 세계육상연맹은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를 착용한 일부 육상 선수들의 기록 결과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상태다. 하지만 수많은 국제 육상 대회의 거물 스폰서인 나이키를 상대로 한 테크놀로지 도핑 테스트에서 과연 공정한 결과가 도출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맨발 육상이라는 급진적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 이상 기능성 장비 착용의 보편화라는 현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결정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트랜스휴먼 시대의 잡종 신체와 공정성 딜레마
신체와 장비(혹은 테크놀로지)의 경계가 모호한 패럴림픽(Paralympics)을 떠올리면 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진다. 페럴림픽 참가 선수 다수가 보철물을 착용하고 있고 그들에게 보철물은 단순 장비 혹은 테크놀로지가 아니라 신체의 연장이자 일부이기 때문이다.
오스카 피스토리어스 선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2012년 런던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모두 참가한 육상 선수다. 의족을 단 선수가 정규 올림픽 육상 경기에 출전한 것은 사상 처음으로 기록된다. 이를 위해 그는 5년간 법적 공방을 이겨내야 했다. 그는 유전적 결함으로 인해 절단한 양다리에 일명 ‘치타의 다리’로 불리는 탄소 섬유 소재 보철물을 장착하고 달린다.
패럴림픽 남자 200m 경기에 출전한 그는 브라질 출신 라이벌에게 뒤처진 결과에 대해 상대방 선수의 의족 길이가 훨씬 길어 부당한 이점을 가졌고 따라서 경기 자체가 공평하지 않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회 측은 상대 선수의 의족은 기술 기준에 부합했고 아무런 불공정 사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반전은 올림픽이 끝난 후 발생했다. 일부 전문가들이 그가 고성능 치타 다리로 정규 올림픽 육상 종목에 출전한 것이야말로 부당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의 탄소 섬유 소재 다리는 ‘정상’ 다리를 가진 선수들에 비해 약 25% 정도 근육과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는 이점을 가졌고 따라서 일반 육상 경기 출전 자격이 영구 정지돼야 한다는 과학자들의 견해도 전달됐다.
물론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각기 상이한 장애와 이에 걸맞은 특수 보철을 제2의 신체로 여기는 장애 선수들로는 석연치 않은 구석도 발견된다. 나아가 ‘정상’ 또는 ‘자연’ 신체라는 단순 이분법으로 부당 이익을 측정하는 WADA의 고전적 인식론이 첨단 소재를 두르고 유전 공학적으로 디자인된 인체를 지닌 트랜스휴먼 스포츠 시대에도 유효할지 의문으로 번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호르몬 조작이나 세포 이식 등으로 운동선수들의 우수한 근육 생성은 물론 에너지 대사량의 향상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폭넓게 수용되는 21세기 스포츠계의 딜레마 앞에 WADA는 어떤 공정성의 해법을 제시할까.
물론 전례는 있다. 2006년 미국 반도핑기구(USADA : U.S. Anti-Doping Agency)가 인라인 스케이팅 선수인 10대 소년의 출전 자격을 정지시킨 사건이 그것이다. 그의 아버지가 성장 호르몬과 스테로이드를 열두 살 때부터 투여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화들짝 놀란 WADA는 ‘치료 목적이 아닌 세포·유전자 또는 유전적 요소의 변경을 통한 신체 기능 향상’을 금지하는 규정을 2008년 신설했다.
하지만 인류는 현재 자연 인체와 인공 기술이 합성된 ‘잡종 신체’ 시대의 초입에 서 있다. 어디까지가 인체이고 어디서부터 테크놀로지인지, 무엇이 자연이고 무엇이 인공인지 혼탁한 경계의 시대…. 과연 스포츠계의 공정성이란 낡은 포대에 트랜스휴먼 신체라는 새 술이 온전히 담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최정봉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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