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in 한화]①그땐 '무리수' 이젠 '신의 한 수'

정재웅 2022. 12. 2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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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금융 위기로 인수 실패
14년 만에 '더 좋은 조건'에 새 주인으로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품었다. 14년 만이다. 한화는 지난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기회를 얻지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로 그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무리라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지금의 평가는 다르다. 한화의 주력인 방산과 에너지 등에서 시너지를 낼 요소가 많다는 평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한화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망해 본다. [편집자]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아시잖아요. '의리'. 저희는 무조건 고용 승계합니다. 인수 자신 있습니다.

2008년 당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의지는 강했다. 반면 업계와 시장의 시선은 차가웠다. 인수전에 뛰어든 포스코, GS그룹, 현대중공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조선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인수 이후 청사진도 '뜬구름 잡기'라는 비판이 많았다. 인수 자금 조달 방법도 무리스럽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의지는 1등이었지만 실제 인수는 '무리수'라는 평가였다.

당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가장 앞서 있는 곳은 포스코였다. 조선용 후판을 제조 공급하는 만큼 '철강-조선'으로 이어지는 수직 계열화가 가능했다. 누가 봐도 말이 되는 시나리오였다. 실제로 포스코도 이런 계획에 맞춰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준비했다. 당시 국내 조선 업체들의 위상은 높았다. 포스코로선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다면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 그래픽=비즈니스워치

현대중공업의 경우 논란이 많았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 인수 의지가 있는 지에 대한 의심이었다. 인수를 핑계로 실사에 참여, 경쟁업체인 대우조선해양의 내부와 기술 등을 살펴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분석이 많았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인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하지만 시장과 업계는 끝까지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한화는 GS그룹과 함께 인수 가능성이 낮은 곳으로 점쳐졌다. 두 곳 모두 조선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해서다. GS그룹은 이런 약점을 포스코와 손을 잡는 것으로 보완했다. 인수전 막바지 GS그룹은 포스코와 컨소시엄을 이루며 단번에 유력 인수 후보로 떠올랐다. 반면 한화는 끝까지 혼자였다. 한화는 인수 후보군 중 늘 맨 마지막 자리였다.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뜻밖의 반전

당시 업계 등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이미 끝났다는 분석이 많았다. 포스코와 GS그룹이 손을 잡은 만큼 여타 인수 후보군은 관심 밖이었다. 워낙 강력한 인수 후보인데다, 시너지도 확실했다. 포스코로서는 인수 자금을 줄일 수 있었다. GS그룹은 포스코와 손을 잡으면서 조선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 비교적 안정적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이제 관심은 포스코와 GS그룹이 얼마에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느냐에 쏠렸다.

하지만 순탄할 것만 같았던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갑자기 돌발 변수가 등장했다. 견고해 보였던 포스코와 GS그룹 연합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사달은 입찰제안서를 제출하는 날에 벌어졌다. 포스코와 GS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협상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양측의 의견차가 컸다. 입찰제안서 제출 당일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한 포스코와 GS그룹은 컨소시엄 파기를 선언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돌발 변수에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다시 크게 요동쳤다. 업계와 시장도 혼란에 빠졌다. 포스코는 결국 단독으로 입찰제안서를 제출했지만 이미 힘이 빠진 상태였다. 가장 유력한 후보들 간에 균열이 발생한 만큼 이제 시선은 다음 차례에 있던 현대중공업과 한화로 쏠렸다. 일각에서는 포스코가 단독으로라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할 것으로 보는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김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였다.

현대중공업은 인수전 내내 앞서 언급했던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탓에 포스코와 GS그룹 컨소시엄 결렬에도 불구 차기 인수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대신 한화가 급부상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해야 했던 산업은행으로서는 이제 한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산업은행의 입장에서도 포스코와 GS그룹 컨소시엄보다 무게감은 떨어지지만 한화의 인수 의지가 강했던 만큼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지만

포스코와 GS그룹의 컨소시엄 파기로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의 최종 승자가 될 수 있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참여를 결정하면서 "제2의 창업이라는 각오로 대우조선 인수에 총력을 기울여달라"며 " 대우조선 인수를 한화그룹 재도약의 마지막 기회로 알고 반드시 M&A를 성사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결국 그의 이런 의지가 한화를 최종 승자로 이끈 셈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의 최종 승자가 된 한화는 인수를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한화의 인수 의지와 달리 시장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당시 전 세계를 강타했던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로 한화의 인수자금 조달에 차질이 생겼다. 안 그래도 한화가 제시한 6조3000억원이 '오버 페이'라는 지적이 있었던 데다, 생각보다 많은 자금을 끌어들여야 했던 한화에게는 악재였다.

한화그룹 본사 / 사진제공=한화그룹

한화는 산업은행과 지루한 줄다리기를 했다. 약 2개월에 걸친 줄다리기의 결과는 좋지 않았다. 한화는 마지막 카드로 대우조선해양 지분 분할 인수를 제시했지만 산업은행은 거절했다. 결국 한화는 확고한 인수 의지에도 불구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뜻을 접어야 했다. 한화의 퇴장으로 대우조선해양은 또다시 선장 없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시에도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을 찾기는 한동안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만큼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은 치열했다. 세계 3위 조선 업체 인수를 둘러싼 국내 기업들 간의 경쟁은 치열했다. 업계에서는 "한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만큼 모든 인수 후보들이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치열했던 경쟁과는 달리 결과는 허무했다. 그 누구도 승자가 되지 못한 전쟁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그렇게 14년을 표류했다.

'무모함'에서 '전략적 선택'으로

인수자금 조달 실패로 아쉽게 인수 의지를 접어야 했던 한화는 14년 만에 대우조선해양의 새 주인으로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정부의 요청에 따른 인수였다. 당초 한화는 대우조선해양의 특수선 사업부만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되면서 정부는 한화에 대우조선해양 전체를 매각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한화가 이를 받아들였다. 매각안은 산업은행이 짠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가 이번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투입하는 자금은 약 2조원이다. 14년 전에 비해 3분의 1로 줄었다. 해양플랜트 부문의 부실로 부침을 겪었던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4년간 구조조정 등을 단행, 부실을 털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여전히 그때의 여파가 남아있다. 실적도 부진하다. 하지만 14년 전에 비해 훨씬 슬림해졌다. 한화는 훨씬 저렴한 가격에 부실을 상당 부분 털어낸 대우조선해양을 품게 됐다.

업계 등에서는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따라 가장 큰 시너지가 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로 방산을 꼽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공장에서 항공 부품을 조립하고 있는 모습 / 사진제공=한화그룹

업계에서는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 많다. 2008년 처음으로 인수를 추진할 당시 한화는 자원 개발과 에너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따라서 대우조선해양이 보유한 VLCC와 해양플랜트 관련 기술과의 시너지를 노렸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화는 방산, 태양광, 에너지 등을 주력으로 삼고 있다. 그때에 비해 낼 수 있는 시너지가 더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사실 2008년 당시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은 전략적이라기보다는 무모한 측면이 많았다"며 "하지만 지금의 인수는 다음 수를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으로 보인다. 당장 방산과 에너지 사업에서 가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번 인수는 신의 한 수라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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